아, 그놈의 나이, 나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숫자에 불과한 것, 맞지요. 하지만 숫자는 그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감당해야 하는 무게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20살이 감당하는 무게는 분명 40살이 감당해야하는 무게와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만은 결코 아닙니다.
그 무게라는 것이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변화에서 무겁게 느껴집니다. 무릎 관절이 아파와서 감당할 수 있는 배낭 무게와 걷는 거리가 차이나기 시작합니다. 슬리퍼버스에 시달리고 나서도 잠깐 눈 붙이고 쌩쌩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은, 20대는 당연한 것이라 아무런 느낌 없겠으나, 중년의 나이에는 버거운 무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망할 광고 같으니!
그렇게 억울한 것이 늘어갑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래분께서 느끼셨듯, 꽝시폭포에서 에메랄드 빛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해 억울합니다. 여행지에서 낯선 이에게 초대받아도 몸이 따라주지 못해 따라나서지 못하면 억울합니다. 어릴땐 아무 것이나 걸쳐도 봐줄 만 했는데 이제는 신경쓰지 않으면 한없이 후줄근하고 초라한 모습이 되어 억울합니다. 나이 먹는 것이 억울합니다. 한없이.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보니 어느 순간 더 이상 억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무게에 적응한 것이겠지요. 꽝시폭포에 뛰어들어가는 비키니들이 더이상 부럽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나이아가라의 장대함에는 미치지 못할지 모르나 꽝시폭포 나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알게 되는 때가 오더라구요. 지금 다시 나이아가라를 가면 그때 발견하지 못했던, 장대함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 같습니다. 10년후에 꽝시를 다시 가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겠지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40에 20처럼 행동하려하면, 억울할 뿐만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되어도 할말이 없을 겁니다. 40의 무게를 인정하고 그 무게에 걸맞는 행동이야말로 나이를 숫자에 불과하도록 만드는 길이 아닐까요. 어느 순간부터, 정상에 올라갈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서부터 더 많은 여행의 즐거움을 정상 한참 아래에서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하나 하나 스러져가는 신체적 한계를 퍼뜩 느낄때마다 아쉬움을 씹으며 체념하게 되는 것은, 그 순간 약간의 억울함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이 나이가 가장 행복할 때라고 생각하며 게스트하우스를 누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