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임진년), 기습적으로 조선을 침공한 일본은 초기에는 승승장구하면서 기세를 올렸으나,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들의 강력한 저항과 제해권을 장악한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기세가 꺾였다. 조선을 돕기 위해서 온 명나라와 화의를 진행하다가 결렬되자 1597년(정유년), 일본은 다시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그런데 조선의 바다에는 여전히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버티고 있었다.

이순신은 조선시대 최대의 국란이었던 임진왜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장수였다. 1592년 5월 7일의 옥포(玉浦)해전부터 1598년 11월 18일의 노량(露梁)해전까지 20여 차례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이순신이 거둔 승리들은 패색이 짙었던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엎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임진왜란 발발 1년 뒤에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올라 조선의 수군을 통솔하게 된 이순신은 공격과 방어, 집중과 분산을 효과적으로 적용한 작전을 치밀하게 수행해서 제해권을 장악했다. 그리하여 왜적의 보급 루트를 완벽하게 차단함으로써 전세를 유리하게 이끄는데 기여했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만 해도 이순신은 전라도 정읍의 현감이었다. 현감은 작은 고을의 수령으로 종6품직이었다. 평소 이순신의 뛰어난 능력을 염두에 두고 있던 류성룡은 일본의 동태가 심상치 않자 그를 전라좌수사로 발탁했다. 좌수사는 정3품직이므로 이순신은 단번에 7단계나 승진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여서 반대파의 반발이 심했지만 류성룡은 밀어붙였다. 결국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만약 이순신이 정읍 현감으로 있는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맞이했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순신의 뛰어난 능력과 업적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겠지만, 이순신을 발탁한 류성룡의 안목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튼, 이순신이 버티고 있는 한 조선 침략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일본은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계략을 꾸몄다. 대마도 출신으로 부산을 왕래하면서 장사를 한 덕에 조선어를 잘 알고 있던 요시라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과 조선군 사이를 오가며 이중간첩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일본의 지령을 받은 요시라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중대한 정보를 흘렸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모월 모일에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쳐들어 올 것이므로 조선의 수군이 기다리고 있다가 습격하면 전멸시킬 수 있을 것이니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김응서는 당장 조정에 이 내용을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있던 이순신에게 가토를 공격하기 위해서 출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은 왜적의 계략이라고 판단하고 출정하지 않았다. 어떤 기록에는 이순신이 수군을 이끌고 출정했으나 이미 가토가 바다를 건너와서 싸우지 못했다고 되어 있다. 조선을 이간질시키기 위해서 요시라가 엉뚱한 날짜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어명을 어긴 죄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한 다음 서울로 압송하여 국문을 했다. 당시 조선의 국문은 너무나 혹독해서 1차 국문을 받으면 죽거나 병신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순신은 1차 국문을 받고 반죽음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자 2차 국문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이때의 상황이 얼마나 엄중했는지는 선조가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전교한 내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순신이 조정을 기망한 것은 임금을 무시한 죄이고, 적을 놓아주고 공격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버린 죄이며, 심지어 남의 공을 가로채고 모함까지 한 것 또한 엄중한 죄이다. 이렇게 허다한 죄상이 있으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니 법률로 다스려서 죽여야 함이 마땅하다. 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에 정탁이 나서서 저 유명한 「논구이순신차(論救李舜臣箚)」라는 글을 올렸다.

“이순신은 진실로 장수의 재질을 지녔으며 해전과 육전에서 뛰어난 재주를 겸비했습니다. 이러한 인물은 쉽게 얻을 수 없을 뿐더러 백성들이 의지하는 바가 무척 크고 적이 매우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죄명이 엄중해서 조금도 용서할 구석이 없다고 판단하여, 공과 허물을 서로 비교해 보지도 않고 앞으로 더 큰 공을 세울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또 그간의 사정을 천천히 살펴볼 여유도 가지지 않고 끝내 큰 벌을 내린다면, 공 있는 자와 능력 있는 자들은 앞으로 국가를 위해서 더 이상 애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정탁을 필두로 류성룡, 이원익 등 여러 대신들이 나서서 극구 반대한 끝에 이순신은 죽음 직전에서 백의종군을 명령 받고 가까스로 풀려나게 되었다. 이후 전세가 급격하게 악화되자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선조는 임명 교서에 다음과 같이 적음으로써 이순신을 위로했다.

“지난번에 그대의 지위를 바꿔서 오늘 같은 패전의 치욕을 당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때 조선 수군에게 남아 있던 배는 겨우 13척이었다. 한 달 뒤, 이순신은 명량(鳴梁)해전에서 133척의 왜적을 맞아서 스스로 “천행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기적과도 같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순신이 명량해전 하루 전에 남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게 행동하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글귀는 오늘날까지도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시점부터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순신은 몹시 초췌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장면도 등장한다.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 선조에 대한 배신감, 모략을 일삼는 동료에 대한 환멸, 이런 것들이 이순신을 무척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할 정도로 그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을 구해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 예고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명량>에도 어렴풋이 그려지고 있지만, 이순신이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끌어 모아 왜적을 무찔렀던 것은 오로지 이 땅의 민초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제 저녁, 오랜만에 광화문 광장에 가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바라보았다. 몸과 마음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에서 13척의 배를 거느리고 133척의 왜적과 마주한 장군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어제, 100만 명이 넘는 민초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광경을 굽어보는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