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8년, 당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경북 안동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독서에 전념하고 있는데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는 전남 나주에 사는 기대승으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가던 중 퇴계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당시 58세의 나이였던 퇴계는 비록 한참 아래였지만 학식이 뛰어나고 인품도 훌륭한 기대승을 정중하게 대했다.

얼마 후, 기대승은 문과에 급제했고 그 소식을 들은 퇴계는 축하와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이때부터 시작된 퇴계와 기대승의 우정은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 동안 편지 왕래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학술사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뛰어난 논쟁의 하나로 꼽히는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도 바로 이 편지 왕래로 이루어졌다.

‘사단’은 인간이 지닌 네 가지 도덕적 감정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뜻한다. 인(仁)에서 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며, 의(義)에서 나오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옳지 못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며, 예(禮)에서 나오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겸손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이며, 지(智)에서 나오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다.

‘칠정’은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 등 인간이 지닌 일곱 가지의 자연적 감정을 뜻한다.

퇴계는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지만,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므로 선과 악이 함께 있다.”라고 주장했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을 선악으로 대립시켜서는 안 됩니다. 사단을 칠정 안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원리인 이와 질료인 기는 따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하나로 봐야 합니다.”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퇴계는 기대승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손수 쓰신 논설을 보여주시고 잘못을 깨우쳐주시니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으므로 몇 말씀 적겠으니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기대승의 답장은 이랬다.

“감히 보내주신 글에 제 생각을 아뢰오니 부디 끝까지 가르쳐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명확하게 후학을 깨우쳐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사단칠정 논쟁’이 오늘날에도 모범적이고 뛰어난 논쟁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주장의 이론적 근거와 입장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 성리학의 수준을 높였다. 둘째, 논쟁이 진행될수록 자신의 주장만을 강조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셋째, 나이와 지위를 초월해서 서로가 끝까지 상대방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며 논쟁에 임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각자의 취향이나 생각도 다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양태는 어떠한가. 아니, 제대로 된 논쟁이라도 있기는 한 것인가.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반대부터 하거나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일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행하고 있다.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일들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1%의 국민이 99%의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거야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니까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런데 무고한 시민들이 테러로 희생되고 있는데 위로의 말은 고사하고 항공요금 내려가는 것부터 궁금해 하는 심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는 발전하고 문명도 발달해왔는데 왜 사람들의 의식이나 행동은 퇴보한 것처럼 느껴질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