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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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수의 고백...

필리핀 9 920

아래의 글은, 어떤 인터넷 언론에 실린 기사로

지난 6월에 모 대학교 강의실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이라고 합니다.

해당 교수가 직접 쓴 긴 글을 기자가 간추렸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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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 대학 영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6월 1일, 학과 강의실에서 전공 수업이 있었다. 학생들이 팀별로 영화분석을 PPT로 발표하는 시간인데, 강의실에 설치된 컴퓨터에 문제가 있었다. 발표할 학생들이 가져온 노트북도 빔 프로젝트와 연결이 잘 안되어 발표가 늦어졌다.

그래서 나는 얼른 연구실로 가서 내가 쓰던 노트북(맥북프로)을 가져와 연결해 줬다. 학생들 PPT 발표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자, 내 담당 지도 학생들 몇 명에게 면담하러 오라하고는 강의실 바로 앞에 있는 연구실로 갔다.

나는 연구실에서 학생들 면담을 끝내고, 볼 일이 있어 건물 밖에 나갔다 2시 반쯤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때야 내 노트북을 안 가져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강의실로 갔다. 사실 내 강의 바로 다음 시간인 2시부터 다른 교수의 다큐멘터리 워크숍 수업이 있었기에 강의 중일 줄 알았는데, 학생들 몇 명만 잡담을 하고 있을 뿐, 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가 얼른 강의 탁자 위를 보니, 빔 프로젝트 리모컨만 달랑 놓여있을 뿐 내 노트북이 없었다. 다큐멘터리 수업을 듣거나 좀 전에 내 수업을 들었던 아이들이 있어서 물었다.

"얘들아! 여기 놔둔 내 노트북 못 봤니?"
"못 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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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이 사라진 강의용 탁자 강의용 탁자에 노트북을 사라지고 빔 프로젝트 리모콘만 놓여있다.
ⓒ 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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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누가 조교실에 맡겨 뒀나 하고 얼른 가보았으나, 거기에도 없었다. 그때부터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13년 전 잃어버린 노트북 생각이 났다. 당시에 누군가 내 연구실로 열쇠를 따고 들어와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새 노트북을 훔쳐 갔던 것이다.

결국 그 노트북도 범인도 찾지 못했다. 난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내 바로 다음 수업을 진행한 동료 교수 연구실로 갔다. 학생들 워크숍 지도를 하고 있던 그 교수는 "노트북이요? 아까 수업시간보다 5분 일찍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탁자 위에는 아무 것도 없던데요?" 하고 말했다.

내가 강의실에서 나간 게 1시 35분이고 다음 교수가 1시 55분에 들어왔다면, 20분 사이에 그 노트북이 사라진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 학생 중 누가 가져간 게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영화편집용으로 쓰기 위해 산 맥북프로이다. 신형은 너무 고가라 작년에 중고로 구입했지만, 학생들로선 제법 비싼 고급 기종일 것이다.

나는 일단 수업을 듣던 학생들 명단을 찾아 일일이 전화했다. 발제하느라 내 노트북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학생에게 전화해 보니, "전 발표 끝나고 교수님 노트북 전원을 끈 뒤 덮개를 닫고, 빔 프로젝트 연결 잭을 빼서, 탁자 위에 그대로 두고 나왔는데요"라고 말한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참, 가져가기 편하게 해놨구나. 하지만 전원을 껐다면 비밀번호가 있어서 다시 켜기 힘들텐데..."

면담 순서를 기다리느라 잠시 강의실에 대기하고 있었을 법한 학생들에게 전화해 보니, "전 그때 화장실 갔다 와서요" "전 담배 피우러 나갔다 오느라"라고 얘기한다. 누군가 내 수업 끝나고 다음 수업 시작 직전까지 한 여학생이 강의실에 계속 있었다 해서 전화해 보았다.

"교수님, 저는 그 때 피곤해서 자고 있어서 잘 몰라요."
"그래, 진짜 계속 자기만 한 거야?"
"그럼요. 근데 교수님, 혹시 제가 의심스러워서 전화하신 건가요?"
"야, 아냐, 그게 아니고... 아까 내 수업 들은 학생들 다 전화해 보는 거야. 목격자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널 의심해서 전화한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마."

더 이상 다른 학생들에게 전화해서 노트북을 가져간 범인을 찾으려는 시도는 멈춰야 했다. 자칫하다간 내 수업을 들었던 모든 학생을 용의자로 의심해야 할 판이니 못할 짓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도대체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어떻게 교수의 노트북을? 나에게 무슨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나?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낯선 외부인이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랬다면 우리 학생들이 기억했을 것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처럼 누군가 천장에서 내려와 노트북을 들고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대체 누가 가져간 것이고,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목격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일까? CCTV도 없고, 노트북이 중고품이라 위치 추적 장치 같은 기능도 없어서 가져간 사람이 돌려주지 않는 한 찾을 길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노트북에 암호가 걸려 있어 결국 사용 못하고 다시 돌려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몇 번이나 빈 강의실로 들어가 노트북이 마지막으로 놓인 그 탁자와 그 주변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조교는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학과장에게 얘기했지만 딱히 대책이 없었다. 앞으로 복도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데 공감한 정도였다.

대자보를 붙여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학과 내에서 일어난 부끄러운 사건을 외부 사람이 알까 겁났다. 3일째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까지 내 수업을 들었던 30여명의 학생 중 내 노트북을 잃어버린 걸 걱정하며 관심 가진 학생은 거의 없었다. 딱 한 학생만이 간단한 격려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잃어버린 컴퓨터보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창피해서 노트북 분실 얘기는 내 가족에게도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 노트북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나 스스로 어떻게 그 사건을 마무리할지 고민이 되었다.

나는 마침내 그 사건에서 해방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전체 이메일을 썼다. 서두에는 그동안 노트북 분실경과를 자세히 쓴 다음, 마지막에 내 노트북을 가져한 학생에게 보내는 아래와 같은 편지를 첨부했다. 

내 노트북을 가져 간 사람에게 (쓰는 편지)

어차피 가져간 거라면 유용하게 잘 쓰길 바란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노트북이 너에겐 절실히 필요했나 보구나. 너도 오죽 힘들고 어려웠으면, 그 상황에서 노트북을 가져갔을까 생각하니 마음 아프다. 누군지 안다면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너를 도와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 노트북, 나에게 선물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 잘 써라. 그런데, 내가 그 노트북에 암호를 걸어놓았는데, 어떡하지? 무리하게 열려다 괜히 고장 내지 말고, 지금 가르쳐 줄 테니 열어서 쓰길 바란다. 암호는 'qffw1'이다.

내가 그 노트북 찾으려고 애쓰지 않을 테니까, 학교에 가지고 다녀도 괜찮을 거다. 나는 돈이 좀 들더라도 그냥 최신 버전으로 새로 사서 쓸 생각이다. 물론 그 노트북 그냥 너에게 공짜로 주는 건 아니다. 추후에 이번 행동에 상응하는 좋은 일을 어디서 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시는 남의 것을 절대 허락 없이 쓰거나 가져가진 말길 바란다.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정직하게 살기 바란다.

그리고 미안하다. 네가 피치 못하게 그런 행위를 하게끔 상황을 제공한 나도 잘못이 있는 것 같으니까. 나도 앞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할게. 그동안 스승으로서 너에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가지 못한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2016년 6월 4일, 밤 ...........000

오글거리긴 했지만, 그 편지를 보내고 나니 왠지 후련했다. 정말 내가 그 노트북을 우리 학생 중 한 사람에게 정식으로 선물한 것 같았고, 착한 일을 하고 난 뒤의 뿌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나는 비로소 그 사건의 전말을 가족에게 알렸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딸이 놀려댄다.

"아이고, 마음이 바다처럼 넓고 깊으신 교수님 오셨습니까? 남는 노트북 있으면 저도 하나 훔쳐가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선물로 주실 거잖아요?"

평소에 '타인에 대한 사랑도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다'라 믿어온 나는 결국 날 위해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고 멋지게 포기해야 했다. 나로선 어차피 못찾을 노트북을 그렇게라도 해야 불필요한 시간낭비 없이 마음 편하게 바쁜 내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 편지 덕분에 나는 곧바로 이어진 중국 출장을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고, 그 사건을 거의 잊고 지냈다.

믿을 수 없는 반전, 잃어버린 노트북이 돌아오다

노트북을 분실한 지 20일이 지난 날, 그 수업의 기말고사를 치르고 채점을 하는데, 한 여학생의 답안지 말미에 쓰인 추신이 그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아이는 노트북을 분실했을 당시 강의실에서 자고 있었다는 그 여학생인데, 자신은 다른 학생들이 모두 받은 전체 이메일 편지를 못 받았다는 거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단다.

'혹시 자기를 의심해 자기한테만 편지를 안 보낸 것이 아닌가' 되게 신경 쓰인다고 호소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놀라 즉시 그 여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아마 그 여학생은 어떤 알 수 없는 컴퓨터 에러 때문에 못 받은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널 의심한 적 없으니 걱정 마라'고 달래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오후, 내 수업을 듣던 학생 ○○가 연구실에 찾아왔다. 착한 인상을 가진 그 아이는 내 앞에 앉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수님이 잃어버린 노트북 제가 보관하고 있어요."
"뭐라고? 진짜야?"
"실은, 그 노트북, 한 친구가 가져갔다가 직접 돌려주기 곤란하니까, 저보고 대신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놀라움, 반가움, 궁금증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나는 애써 진정하고 그 학생이 왜 그걸 가져갔고, 어떻게 돌려줄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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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자리에 돌아온 노트북 누군가 가져간 노트북이 20일만에 제자리에 돌아오다
ⓒ 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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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는, 그게 다른 학생 것인 줄 알았데요. 뒤늦게 교수님 노트북인 걸 알고 놀라 돌려줄까 고민했는데, 쉽지 않았나 봐요."
"그럼, 원래 가져갔던 강의실 탁자에 슬쩍 돌려놓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려고 했는데, 갈 때마다 다른 학생들이 그 강의실에 있어서 못했다는데요."
"그래? 없을 때도 종종 있었을 텐데..."
"솔직히 노트북이 비싼 거라 욕심 나  갖고 싶기도 했데요. 근데 교수님이 보낸 편지를 받고..."

○○의 말로는 그 학생은 내 편지를 전체 이메일로 받아 읽은 뒤, 죄의식을 느끼고 돌려줄 생각을 여러 번 했단다. 그런데 내가 편지를 보내고 난 후, 중국 출장을 가버리자 바로 돌려 줄 기회가 없었고, 그 사이에 다시 갈등했다는 것이다.

형편이 궁해 중고 사이트에 그 노트북을 팔아 버릴까 하고 인터넷을 뒤져 보기도 하고, 가르쳐 준 암호로 노트북을 열고 사용도 해봤지만, 도저히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계속 못 쓰겠더란다. 본인이 직접 나를 찾아오기도 어려웠고. ○○가 좀 편하게 보였는지 찾아간 모양이다. 그리고 **은 눈물을 흘리면서 ○○에게 모든 얘길 털어놓더란다.

"혹시 평소 걔가 도벽이나 뭐 그런 게 있었던 건 아니고...?"
"글쎄요. 그런 것도 좀 있긴 했나 보던데...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가정 사정도 좀 어렵고 그래서 주말마다 알바하면서 힘들게 학교 다니나 봐요."
"근데, 이해가 안되는 게, 수업 끝나고 학생들이 나가고, 다음 수업 듣는 학생들이 들어오고 그랬을 텐데, 언제 그 노트북을 들고 갔지?"
"걔 말로는 강의실에 아무도 없었을 때 가지고 나왔다 하더라고요"
"아, 그런 순간이 있었구나. 45분경, 아마? 근데 △△가 거기서 자고 있었다던데?"
"그래요? 못 봤나 보던데요. 전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교수님 편지가 그 친구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것 같습니다. 지금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나는 더 이상 그 학생이 누구냐고 따져 묻진 않았다. 그저 돌려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학생의 정체가 궁금하긴 하지만, 본인 스스로 나서지 않는 한, 결코 찾지 않을 테니 걱정마라고 했다.

갑자기 누군지 모르는 그 학생이 너무 측은해 보여, "걔가 노트북이 그렇게 필요하다면, 아예 새 노트북을 하나 사줘 버릴까?" 했더니, 아마 그 아이는 받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내가 괜히 오버했나 싶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 나는 다시 편지를 써서 ○○에게 보내, **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노트북을 돌려준 00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

안녕, **야! 난 아직 네가 누군지 모르니까 그냥 **이라고 부를게. 지난 월요일에 네가 가져간 노트북을 ○○이를 통해 잘 돌려받았다.

정말 고맙다. 남의 소유물을 몰래 가져간 건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뒤늦게나마 후회하고 이렇게 돌려주다니, 난 너무 감동받았다. 문득 소크라테스의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명언이 생각났다.

우리 사회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적당히 합리화하며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니? 그들은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증스러운 인간들에 비하면 넌 정말 양심적이다. 적어도 반성을 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줬으니 말이다. 이제 너의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안다. 보통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슬쩍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잘못된 행위를 깨닫고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할 때는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근데 다행히 너는 그 용기를 가졌다. 경의를 표한다.

네가 직접 나에게 찾아와 사과할 수 없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난 서운하게 생각 안 한다. ○○을 통해 너의 입장을 충분히 들었고, 나도 용서 했으니 다 털어버리고 앞으로 남은 학교생활 잘 하길 바란다. 앞으로 네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도, 찾지도 않을 것이니 걱정마라.

네가 믿고 모든 걸 고백한 ○○이도 절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대신 혹시라도 그 전부터 너도 모르게 안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아예 고치길 바란다. 나쁜 습관은 결국 생활이 되고, 그 생활이 어느새 너의 가치가 되어 버린다면 단 한번 주어지는 소중한 너의 인생이 끝장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에게도 얘기했지만, 혹시라도 네가 경제적으로 정말 어렵다면 언제라도 ○○을 통해 나에게 얘기해라. 열심히 알바해도 네 생활을 감당 못할 정도라면 조금이나마 도와줄 수 있으니까. 암튼 우리 학생들, 아니 더 나아가 우리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준 이번 너의 용기 있는 행동, 정말 고맙다.

지금은 아니라도 먼 훗날 네가 멋진 어른이 되었을 때 날 찾아와라. 그때 만나 이번 사건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회상하면서 같이 웃을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럼, 이번 여름방학 보람차게 잘 보내고 개학 때 보자.   

2016.6.20. 너의 부족한 스승 000

그날 20일 만에 돌아본 그 노트북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나를 시험하느라 그런 일을 벌인 것 같았다. '그래, 네가 얼마나 인간을 믿고 신뢰하는지 한번 테스트 해보고 싶었어'라고 말이다.

내가 그 노트북 잃어버린 문제로 온갖 난리를 치고 모든 학생들을 의심하며 학과를 뒤집어 놓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더 많은 것을 잃었을지 모른다. 하여간 사건이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나니, 상쾌한 기분으로 내 일에 다시 몰두할 수 있어 좋았다.

또 다른 시험, 선의가 정말 정의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며칠 후 ○○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오늘 그 노트북을 돌려준 **을 다시 만났는데, 굉장히 사정이 어려운 것 같아 안쓰럽다고 한다. **이 건강도 안 좋고, 가정형편도 힘들고 그래서 자기도 도와주고 싶지만, 본인도 어려운 처치라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마 편지 말미에 '어렵다면 언제라도 ○○이를 통해 도와주겠다'고 한 문구를 보고 전화를 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물질적으로 **을 도와주길 바라냐?'고 물으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얘기한다.

끝난 줄 알았던 시험이 아직 남았나? 내가 무슨 예수라고, 괜히 오버해서 도와주겠다고 한 거 아닌가 하는 짧은 후회와 약속했으니 휴머니즘을 발휘해 당연히 도와야지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갈등을 하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전에 나는 여러 번 어려움에 처한 제자나 후배 및 동료들에게 물질적인 호의를 베푼 적이 있지만, 보답이 돌아오기는커녕, 그들이 날 피하면서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선의가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킨 경우를 여러번 경험한 것이다.

나는 이틀 동안 고민했다. 내 노트북을 가져갔다 반성하고 돌려준 용기 있는 제자 **에게 당장이라도 버틸 수 있게 물질적인 도움을 줄 것인가, 아니면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나가라고 돈 안 드는 충고 한 마디 한 뒤 외면하고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사실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보았다. 나는 선의가 곧 정의라고 보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나에게 장문의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내는 거의 유일한 경우는 대부분 자신들의 성적 때문인데, 그들은 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성적을 좀 올려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사정한다.

그때 만약 동정심을 발휘해 내가 성적을 올려준다면 그 학생에겐 정말 선의가 되겠지만, 그의 성적이 올라감으로써 경쟁하던 다른 학생이 장학금을 못 받게 된다면 나의 선의는 곧 악의가 된다. 인생은 종종 그런 식으로 아이러니하기에, 그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설픈 동정이 그를 망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일 것 같다. 내가 ○○의 요청대로 **을 돕는다면, 그것은 나의 착한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영화에서 흔히 그렇듯이 그런 캐릭터는 남을 도와야할 때 조금이라도 돕지 못하면, 내내 죄의식을 느끼며 자책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선행이 상대에게 별 의미 없거나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는데도 본인의 만족감을 위해 베풀려고 한다. 일종의 착한 사마리아인 콤플렉스다. 나는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배트맨'보다 악당인 '조커'에 더 매력을 느낀 이후로, 착한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것을 내 인생의 작은 목표로 삼았는데... 이번 기회에?

이런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오가는 가운데, 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다.

 


 

9 Comments
참새하루 2016.07.04 18:07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저같으면 그런 편지를 쓸생각은 못했을것 같아요
그저 욕하면서 세상을 비관하겠지요
한번의 실수는 하는 장발장의 시험이
현실에 있기는 한걸까요
지금이 순수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제정신으로 살아가는게 가능한 세상일까
늘 회의적인 제게는 신선한 글이었습니다

저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고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교수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내일 술깨면 곰곰 생각해보겠습니다
클래식s 2016.07.04 18:33  
맥북프로 어댑터가 택배비 포함 10만원입니다. 가져간지 몇일되도록 켜놨으면 배터리 다 됬겠죠.
 맥북 첨 쓰는 사람이면 어떻게 쓰는건지도 몰라서 버벅였을꺼구요.  중고로 인터넷에 팔자니 인터넷에 정보가 남을꺼 같기도 하고, 시리얼넘버가 있다보니 중고로 사간사람이 as 받으러 갔는데 원주인도 as받은 기록이 있으면 걸릴수도 있고요. 쓸수도 없고, 팔자니 겁난김에 돌려줬을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게 과연 평범한 노트북이었어도 저렇게 돌아왔을까요.
한순간의빛 2016.07.04 22:16  
'타인에 대한 사랑도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너무 동감합니다.
그 교수님은 도와주셨을 것 같아요.
내가 베푼 선의로 인해 상대가 부담을 느껴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하는데,
근데 저 학생은 누군지 모르니까 자신을 위해 도와주셨을 것 같아요. ^^

그리고 '이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 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
'역시 물이 아래로 흐르듯 인간은 결국...'이라고 생각되는 모습들도 있고요.
나이가 들면 뭔가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죽을 때까지 결국 모르겠구나 싶은게 인간사인 것 같아요.
하늘빛나그네 2016.07.05 03:05  
필리핀님. 잘 지내시지요? 오랜만에 태사랑에 들어왔다가 반가운 이름을 보고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저도 올해부터 제 모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글에 나온 사연과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다른점은 제가 강의를 마치고 제 맥북을 놓고 나온것과, 조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조교가 알아서 찾아준 점이지요.

제가 느꼈던 요즘 아이들은, (제가 노트북을 분실한 사건 이전엔) 앞뒤 안가리고 자기 이익(스펙일수도 있고 학점일수도 있고...)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아이들이었었는데, 보잘것 없던 제 편견을 깨 주더라구요.

필리핀님도 교단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계시겠지만,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많은 선함을 갖고 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근데 .... 저 글에 적힌 교수님의 선택이 어떠한 것이었을지는 저도 궁금하네요. 학기말에 밀려들던 성적정정 읍소메일이 아직도 제 메일함에 남아있거든요.
필리핀 2016.07.05 04:58  
오호! 올만이에요~ 교수님이 되셨군요 ^^

저는 이곳 저곳 다니다보니까 여러 학생들을 만나는데요...

평소에도 교수를 스승으로 대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 필요할 때만 교수를 찾는 아이들도 있더군요. ^^;;
Dcinema 2016.07.05 08:58  
솔직히 개오글거림
교수 문장력이 저정도라니
백프로 허구
그냥저냥 억지감동 만들려는 뻔한 글로 보임.

저게 사실이어도 잃어버린 사람 잘못.

그냥 하는말입니다.
맥북도 하드디스크 바꾸고 윈도우 깔아쓰면 그만입니다.
맥북프로 사서 os 두개로 쓰다가 필요없어서 용량 높여 윈도우만 깔아썼습니다
여사모 2016.07.05 16:30  
어쨋거나 필리핀님은 복잡하면서도 기가막히게 단순한 글을  찾아내셨네요
저는 3번읽고이해 했습니다 555
깔로스 2016.07.06 09:49  
요즘 세태를 바라볼 수 흥미로운 글이네요.
(대학 강의실에서도 이런데 다른곳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주 잘 봤습니다.
예전부터 처세를 잘 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주 훌륭한 처세를 본것 같습니다.
마지막 처세술은 안가르쳐줘서 아쉬움이 남지만.........
orbitz 2016.07.13 08:41  
한편의 수필처럼 흥미진진한 드라마처럼 잔잔하게 재미있게 봤어요.
학생의 경제상황이 어렵다면 학과로 리디렉트하는데 기사에 난 분은 대단하십니다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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