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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에 관한 추억...

필리핀 10 881

 

(위 노래를 재생하면서 아래 글을 읽으면 더 좋아요~ ^^)

 


어제는 5.18민주화운동 36주년이었다.

기념식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문제로

언론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이 글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문제를 따지는 글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기대나 관심은 자제하는 게 좋다. ^^;; 

 

2000년 가을부터 2001년 봄까지,

8개월 동안 동남아를 여행했다.

2000년 12월 31일 밤, 싱가폴 클라크키에서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다.

 

그 무렵, 대부분의 국가의 정부와 언론은

2000년 1월 1일이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그건 100% 헛소리였다.

20세기는 2000년 12월 31일까지이므로

뉴 밀레니엄, 즉 21세기의 시작은

2001년 1월 1일부터이다.

매출 신장을 위해 1년이나 앞당겨서 밀레니엄 마케팅을 벌인,

그것을 위해 정부와 언론을 사주한 자본가들의 상술에

우둔한 시민들이 놀아났던 것이다.

 

아무튼, 싱가폴에서 뉴 밀레니엄을 맞이한 나는

말레시아 국경을 넘어서

조호바루-말라카-쿠알라룸푸르-카메론하이랜드를 거쳐

페낭에 도착했다.

 

당시 나는 NGO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페낭에서 NGO 활동을 하고 있던

중국계 말레시아인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분, mr. Chee는, 여행을 떠나오기 전

한국 NGO에서 일하는 분을 만났는데,

나의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자

"페낭에 가게 되면 만나보라."고 소개해준 분이다.

 

미스터 치는 중국계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대신 영어는 아주 능통했다.


말레시아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3개 민족이 어울려 사는 국가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공공표지판은

영어, 말레이어, 한자, 힌두어 등

4개 언어로 표시되어 있다.

 

각 민족 출신은 영어와 자신의 민족 언어에 능통하다.

즉, 중국계라면 적어도 만돌린과 영어는 물론이고

말레이어까지 능통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중국계임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치는 중국어를 전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영국 유학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스터 치는 대단히 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어떤 종류의 NGO 활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저열한 영어 실력 때문이다. ㅠㅠ

대충 눈치와 감으로 때려잡은, 미스터 치의 일에 대한 나의 결론은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대 사업'이었다. ^^;;

 

미스터 치는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태국, 대만, 영국, 미국 등 해외 출장이 잦다고 했다.

우리가 만났을 때도 유럽 출장에서 갓 돌아온 때였다.

내가 며칠 전에 불쑥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난 것은 무척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국 노래가 하나 있다."

페낭의 대표적인 휴양지 바투페링기 해변에 자리잡은

미스터 치의 집에 초대받아서

그의 아내가 차려준 상어커리 요리를 맛있게 먹은 다음

디저트와 차를 마시는데 그가 불쑥 그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한국 노래가 하나 있다."

 

무슨 노래인지 맞추어 볼테니 불러보라고 했다.

미스터 치는 잠시 생각을 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몇 소절 듣다보니 무슨 노래인지 알 것 같았다.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미스터 치에게 물었다.

"이 노래를 어떻게 아느냐?"

내 질문에 대한 미스터 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동남아에서 NGO 활동가들이 모이면 이 노래,

즉 <님을 위한 행진곡>을 꼭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미스터 치는 내게 이 노래,

즉 <님을 위한 행진곡>이

대한민국의 국민가요 아니냐? 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님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찬찬히 설명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의 국민가요가 아니라

민중가요이다...

(국민가요와 민중가요의 차이를 그가 잘 이해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왜냐면 내 영어가 구렸기 때문에... ㅠㅠ)

 

1980년 5월에 대한민국 전라도 광주에서 벌어졌던,

광주사태이자 광주항쟁이자 광주민주화운동인,

그 비극적인 사건으로 희생된 한 쌍의 남녀를 추모하기 위해

영혼결혼식이 벌어졌다. 이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은 

영혼결혼식 때 부르려고 만들어진 노래이다...

 

민중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던 백기완의 시를 토대로

방북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만들었으며 

대학가요제 출신의 김종률이 곡을 지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님을 위한 행진곡>에 얽힌 사연을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설명했다.

미스터 치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내 설명이 끝나자 미스터 치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이 노래가 한국 노래인줄만 알았지

어떤 의미가 담긴 노래인지는 몰랐다...  

광주, 영혼결혼식, 민중후보, 방북 소설가,

이런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 노래의 사연을 알리겠다...

 

어제오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로

세상의 한쪽 구석이 떠들썩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그날, 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던 날,

말레시아의 페낭의 바투페링기의

어느 낡은 아파트에서 난생 처음 만난 외쿡인과

<님을 위한 행진곡>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 낯설고도 신기했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10 Comments
참새하루 2016.05.19 14:14  
오늘 JTBC 뉴스룸에 나온 주진오교수의 설문조사에는
이 노래를 들어본적도 없다는 사람이 65퍼센트가 넘네요

심각한 역사 왜곡의 단면을 보여주는게
어느 걸그룹 뿐일까요

총을 쏘라고 한적도 없다는 그 사람은
죽으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겠지요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역사도 그렇게 흘러가는가 봅니다
필리핀 2016.05.19 14:47  
오호! 덕분에 저도 동영상 올렸네요 ^^

근데 자동재생은 왜 안될까요? ㅠㅠ
참새하루 2016.05.20 02:34  
더이상은 ㅎㅎㅎㅎ 묻지 마세요
아몰랑~~
zipper 2016.05.19 15:40  
걸그룹의 역사문제 때문에 나온
어떤 장관의 731 부대를 아느냐의 대답에
독립군인가요?

이건 무식한 거죠.
이렇게 무식한 자들의 지배를 받는 대한민국은......
Pole™ 2016.05.20 15:38  
장관이 아니라 총리였죠
누리uk 2016.05.19 15:19  
동남아 ngo분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알고 계셨다니 신기하고 좋네요.
저도 기회가 되면 mr chee. 같은 분들을 만나서 노래도 가르쳐주고 노래 이야기도 들려주며 한국 근대사를 나누고 싶네요.
하지만 태국에서 요즘같은 정세에 그런다면 조금 무모한게 될 수도 있을까 잠시 맘이 착잡해지네요
세대마다 다를텐데 이곡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다니 조금 놀랐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이해할만도 하네요.
필리핀 2016.05.19 18:57  
저도 깜놀했어요!

한류의 원조는 K-POP이 아니라

<님을 위한 행진곡>인듯요! ^^;;
누리uk 2016.05.19 19:22  
근 몇년동안 여행때 만나는 각국 젊은이들이 K-POP을 많이 알고 한국어도 몇마디씩해서 반갑던데, 아쉽게도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대화가 길게 끌어지지 않았거든요.
'님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라면 할얘기가 많아질테니 그래서 더 반가워요.
sarnia 2016.05.19 21:50  
필리핀님의 글을 읽으니 클락키에서 보냈던 밤이 생각나네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모르는 사람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65 퍼센트라니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통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정말 이상한 일 입니다.
중앙일보 조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시민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문화유산" 이라고 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자세를 비판했는데, 여기서 시민이 광주시민이라는 협의의 의미인지 Korean citizens 라는 광의의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아주 훌륭하게 잘 묘사한 말 입니다. 

그나저나 이희성 씨는 정말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저런 류의 자존심이란 '미친X 머리위에 꽂혀있는 꽃' 과 같은 것이어서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미친X처럼 날뛰는 거라고 하던데, 새까만 후배 전 에게 끌려다녔던 그 때의 비겁함이 이제와서 생각하니 아주 억울한 모양입니다. 그럼 그 때 좀 당당하게 그 후배를 질타하고 제동을 걸지, 왜 이제와서 저런 기자회견을 하는지..
나도갈꺼야태국 2016.05.19 22:51  
자주 듣는 말이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말이죠.
아니 실감하게 되면 이미 너무 늦은건가요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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