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구경하고 왔어요!
얼마 전 영화관을 갔다가 기분을 잡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집에서 영화를 감상하기로 했다.
극장 개봉할 때부터 보고싶었던 영화였는데
영화관 트라우마 때문에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ㅠㅠ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서
노트북으로 영화 감상을 시작한지 1분만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이 영화야말로 극장에서 봤어야 해!"
1980년대 중반, 이 땅에 민주화 운동의 바람이 몰아칠 무렵
청춘남녀들의 마음을 달뜨게 한 책이 있었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도 아니고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도 아니었다.
바로 이태가 쓴 <남부군>이었다.
6.25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이태 선생은 회고록을 남겼다.
그러나 내용의 볼온성(?) 때문에 책으로 출간되지 못한 채
원고 상태로 떠돌면서 지식인들 사이에 은밀하게 읽혀졌다.
내용 중 일부는 작가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러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남부군>은 출간 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단번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최진실, 임창정 등이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해 여름, 전설로만 전해지던 지리산 빨치산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남부군>의 영향으로
지리산 일대는 추석 명절 때 서울역 대합실보다 더 북적였다.
나도 그 무렵 <남부군>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한 겨울에도 짚신으로 동여맨 고무신만 신은 채
눈 쌓인 지리산 일대를 훨훨 날아다녔다는 빨치산의 자취를 좇기 위해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얼마나 싸돌아다녔던가.
1990년이 되기도 전에 지리산 종주를 10여 번은 했지 싶다.
봄에도 가도 여름에도 가도 가을에도 가고 겨울에도 갔다.
대부분은 혼자서 갔지만 여럿이 갈 때도 있었다.
텐트에서도 자고 산장에서도 자고 비박을 하기도 했다.
지리산에 갈 때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어김없이 맞이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지리산이 차츰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에베레스트가 내 가슴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
1987년까지만 해도 한국인은 해외여행을 지금처럼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유학이나 업무상 출장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그것도 남산의 모처에서 정신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후에야 겨우 허락되었다.
그러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비록 정권 교체에는 실패했지만,
대국민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해외여행 자유화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그리하여 그 이전에는 그림의 떡으로만 존재하던 에베레스트가
"이제 나도 갈 수 있구나!"로 바뀌었던 것이다. ^^
그러나... 그러나... 사는 게 뭔지...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아직도 에베레스트에 가지 못하고 있다. ㅠㅠ
그래서 이렇게 영화로나마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ㅠㅠㅠ
어쨌든, 산을 좋아하거나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
특히 저처럼 마음은 굴뚝 같지만 에베레스트 못 가는 분들에게
초강추하는 영화입니다~ ^^
이 영화의 원작인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산악도서의 전설과도 같은 책입지요.
<히말라야>라는 한국영화와 비교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