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한 맛이 없어, 뭔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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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한 맛이 없어, 뭔 인생이......

다동 7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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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해답도 선언할 수 없던 날들이었다.

 


작업실 문을 닫고 어스름 저녁으로 던져지면 막막한 불안이 새카만 수렁으로 안내했다습지를 걷는 걸음은 질척거려 어느 때 무릎이 꺾여도 하나 이상할 것 없었다폐가에 다름 아닌 흉참한 거처도 돌아가는 거리엔 소주병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담배곽이 버석거렸다간간히 고개 돌려 석양의 마지막 흔적을 무망히 쫒기도 했다상황은 전에 없이 처절했다.

 


음주 더하기무면허 플러스차량 완파 사고는 고스란한 마이너스로 기록되었다. 2년이 남은 자동차 할부는 일단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벌금을 마련할 길이 난망했다그와 더불어 달뜬 구상은 채 시작을 이루지도 못했다인생 한번 아니더냐 하며 무리해 밀어붙였던 전환에 대한 열망은 스물여섯 청년의 치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단호하게 등 돌렸다곡예와도 같은 상태에서 한 걸음 아래계단은 곧장 나락이었다그렇게 암흑을 걷던 날들이었다.

 


헌데 우습지때에 생애 가장 심각히 결혼에 대해 고민했다가장 어처구니없는 처지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앞날을 상상했다이유라면 단 하나그 나락의 결정적 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핸들은 잡은 것은 내가 아니었기 때문그렇다고 책임을 나누자고 말할 배짱도 없었던 까닭이었다대신 나는 시답잖은 농담을 지껄였다당신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니까 내가 더 어쩔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불안에 나는 농담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거라나 뭐라나 하는 능청을 가장했다.

 


단지 가장한 것이었다고로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리고 우리는 얼마 후 헤어졌다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그녀가 그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어쨌거나 역시 그렇게 검은 봉지에 세 병의 소주와 두 갑의 담배를 들고 털레털레 귀가하는 길이었다소주와 담배는 현금에 다름 아니기에 형편에 관여 없이 넉넉히 쟁여둔다던 자에게 그 조촐한 모양새는 처해진 입장을 대변하기에 더없이 적절했다그날 또한 혼백이 달아난 양 맥 빠진 몸이 저주처럼 무거웠다짙어져가는 어둠 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 슬픔......

 

 

이러다 죽겠네.

 


저승처럼 아득한 장탄식...... 그때였다어라가만...... 잠시만 가만돌연 걸음을 멈추고 희롱하듯 설핏 스쳐가려던 사유 하나를 낚아챘다무엇이 도약이었는지 금세 사그라질 것처럼 미미했던 어떤 가능성은 이내 역동성을 띠며 혈관을 타고 도는 혈액이 되어 체내에 적극 분산되기 시작했다그러다 쉬이 확신으로 치달았다그랬다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내가 내 엄마 놔두고 어떻게 죽나겨우 스물여섯에그렇다면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었다그렇게 살아가다 보면뭐 당연지사 나아지겠지.

 


고통의 날들이 축조한 그 저물녘의 짧은 자각 이후 나의 슬픔이 장난처럼 끝났다...... 면 좋았겠지만 현실이란 게 어디 그렇게 녹록한 것이던가육체는 생활의 숨을 삼키고 또 뱉느라 적잖은 시간 볼모로 구금되었지만 등짐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사실결국 늪지를 벗어나 대지를 밟는 일은 예견처럼 자연스레 진행되었다그렇게 수렁을 벗어나고자했던 몸부림이 후일 더 큰 수렁으로 인계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게 이 요망한 생의 난감한 블랙코미디지만 어쨌거나,

 


모든 것은 끝난다고통 또한 그렇다는 루이제 진저의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단언을 접하고서 나름 체험으로 관통했다 믿던 내게 그 문장이 주는 감흥은 작지 않았다더불어 고통이란 어떠한 것으로 인한 실패의 결과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을 향하고자 하는 응전의 과정임을하여 고통이 지속되는 한 완전한 절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이따금씩 그날을 생각한다.

무겁게 내려앉았던 서른여덟의 이 가을 요 며칠이 그러했다거기에 이견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저 바다 건너 거기에 계신 그대가 자주 그리웠다.


7 Comments
jindalrea 2015.10.06 21:51  
중학교 때.. 창 밖에 가로등이 언제 켜지나.. 궁금해서 기다리다 하염없이 쓴 "행복해지자"
그런데.. 막상 살다보니, 행복하기위해 사는게 아니라.. 살아 있기에 산다는 걸 안 순간..

더이상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 걸 피하기보다는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
멘붕이 온 지금 상황이 몇 달 후면, 저를 나락으로 이끌지도 모르지만, 그저 오늘하루 바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 아쉽고, 아까운.. 이러다 지치면, 또다시 미치도록 그 곳이 가고 싶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열심히 일하고, 떠들고, 웃고.. 한 숨으로 여럿과 나누고.. 그렇게 보냈지요..

문득.. 떠난 이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 어제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오늘에 내가 있음에..
내일이 있을지는 내일의 해가 떠봐야 아는게 삶이라면.. 그냥 이렇게.. 내 안에 우주를 만들었다.. 고슴도치의 가시를 숱하게 만들었다 하며.. 살아가는게 그다지 서글프거나 무료하지 않아진다는..

얼른 가서.. 녹여 놓은 오리나 양념하겠어요.. 발도 좀 닦고.. 근데.. 저도 소주 마시고 싶어요..
여긴 바람이 찬데.. 계시는 곳은 어떤가 모르겠는데.. 그래도 건강하고, 많이 웃는 날 되시길 바랍니다.
다동 2015.10.06 23:21  
산다는 것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라던 이소룡 형님의 말씀 받들어 그 어떤 지랄같은 돌발과 우발에도 필생, 반드시 살아가련다 합니다.

여직 한국 남도땅입니다. 머잖은 출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도 및 몇 나라를 거쳐 빠이로 돌아가 또 한참을 지낼 때, 그 때에 마주할 수 있어 일잔 나누면 좋겠다 합니다. 여전히 소주 마십니다. 또 웃습니다.
jindalrea 2015.10.07 00:42  
ㅌㄷㅌㄷ.. Carpe-diem..
안녕히 주무세요~~ 꾸벅..
어랍쇼 2015.10.07 02:38  
소주세병,담배두갑이 든 봉투에 사랑도 같이 담았더라면..
좀 덜슬퍼졌을텐데..
사랑하지만 책임은 부담스럽고 내것을 포기하기엔 하고싶은것이 ,해야할것이  너무많아 떠난 나쁜남자~

어서 떠나시어 방랑자,한량,범국제적 호구로써의 역할에 충실하며 대책없이 놀아주세요~
그리고 써주세요..
p.s:책 잘읽었습니다^^
다동 2015.10.07 09:17  
제가 좀 나쁜 남자 스타일에 어울...... 하하(하핫:;).

책은 내년에 나오기로 하고 원고 넘어간 게 두엇 있습니다.
잡스런 문장더미를 읽어주신 수고스러움에 융숭한 감사드립니다.
죽바우 2015.10.13 11:02  
심상찮은 제목에 클릭을 했고 확인해 보니 꽤 긴 글이라 스크롤을 내릴 새도 없이 빽 버튼을 누르려던
그 찰라에 본능적으로 눈은 첫 문구를 핧아버리고 기냥 빨려 들어 가 정독을 해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 쓰신 글까지....빠이에 대한 환상을 일구며.
다동님이 빠이에서 잉여를 즐기시는 가까운 미래 즈음에 웬 중년 남자가 슬며서 다가가 멋적은 웃음으로
술잔을 짠 한다면 제발 티껴운 눈으로 보지나 말아 주시길....책도 함 사볼까 심각히 고민 중(패션 아이템이니까)
다동 2015.10.13 18:13  
요사이 취향이 바뀌어 첫 문단을 한줄 단문으로 쓰는데......
그 변화가 첫번째 직접적 반응을 얻어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나란한 잡문을 읽어주셨다니 더욱 기껍습니다. 적어도 다음해 봄이 올 때까진 빠이에 머물지 않을까 합니다. 뵙고 일잔 나눠도 좋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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