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시장 반찬가게 할머니...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골목 시장이 있다.
사람 두어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나가기에도 벅찬 골목에
두부와 콩나물을 함께 파는 청과물 좌판 몇과
반찬가게 서너 군데가 그 골목시장의 전부이다.
짐작컨대 예전에는 제법 그럴듯한 시장이 있었을 텐데
도심 개발로 이리 밀리고 저리 쫓겨난 끝에 지금처럼 작아졌으리라.
그 골목의 좌판을 지키고 있는 분들은
60이 훌쩍 넘은 백발의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그 할머니들은 어쩌면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년의 외로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그 골목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가끔 두부나 콩나물이나 김치 따위를 사기 위해 그 골목 시장에 갔다.
비슷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지라
누가 어느 가게에서 무엇을 사는지 할머니들은 훤히 꿰차고 있었다.
두부나 콩나물은 이집 저집에서 번갈아 사는 것으로써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 골목시장의 평화(?)에 기여했다.
그런데 김치의 경우는 반찬가게마다 손맛이 확실하게 다르므로
내 입맛에 끌리는 집으로만 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단골로 가는 반찬가게 할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처럼 등이 몹시 휜 분이었다.
그분은 내가 갈 때마다 김치 값을 다르게 말했다.
어떤 때는 1킬로에 5천원이었고 어떤 때는 1킬로에 7천원이었다.
김치도 늘 내가 주문한 양보다 훨씬 많이 담아주었으며
어떤 때는 새로 만든 반찬이라면서 맛보라고 한 봉지씩 건네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올 여름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무렵,
여느 때처럼 골목시장에 갔는데 내 단골 반찬가게의 문이 닫혀 있었다.
옆집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더위를 자셨는지 몸이 편찮아서 며칠 쉰다고 했단다.
주인 없는 반찬가게의 진열장 안에서는 김치가 푹푹 익어가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모처럼 만에 26일 동안의 장기여행을 떠났다가
지난 9월 19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전, 김치를 사기 위해 골목시장으로 갔다.
그런데... 내 단골 반찬가게는 여전히 문이 닫혀 있었다.
문만 닫혀 있는 게 아니라 반찬 진열장이 싹 치워져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잠시 쉬는 게 아니라
어디로 이사를 했거나 아예 장사를 그만 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되어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반찬가게에 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골목시장 자체를 가지 못하고 있다.
옆 가게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반찬가게 할머니의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가 나를 알아보고 그 할머니의 소식을 알려줄까 두렵기마저 했다.
그래서 그 골목시장에를 다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반찬가게 할머니의 구부정한 등과 감칠맛 나는 김치를
그리워만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