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손님 이야기 3
제 가게가 있는 곳의 입지여건은
큰사거리에 M사와 S사가 서로 마주보고 있고
가게 건너편에 옛날건물의 구청이 있고
고깃집과 술집들이 있는 먹자 골목 뒤쪽으로
작은 사무실들이 있고
그리고 오래된 아파트, 빌라, 다가구들이 섞여 있는
옛날냄새 물씬 풍기는 동네입니다.
전철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오면
입구에 10년 넘게 토스트를 하는 아주머니가
새벽 6시쯤 골목의 아침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침 7시 반이 되면
로스팅을 시작하면서 잠이 덜 깬 골목을 깨웁니다.
토스트의 고소한 마아가린 냄새와
커피의 뇌쇄적인 향기는 지난밤 골목을 가득 채웠던
광란의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맞이 합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잠이 덜 깬 듯한 표정의 사람들은
토스트하나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기도 하고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합니다.
그녀도 아침 손님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녀는 골목안쪽 어딘가 살고 있었고
제가 커피콩을 볶고 있을 때
그녀는 전철을 타러 가기 위해 커피집을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특별히 이쁜 얼굴은 아니었고
턱선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를 굵게 웨이브파마를 하고
얼굴은 좀 까무잡잡한 작은 체구의
중학생 아들을 둔 직장맘이었습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언제나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느린걸음으로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음...오늘은 뭐가 맛있을까...
메뉴판을 올려다 보며 그녀는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로스팅에 온통 집중하고 있는 저는 그녀가 빨리 주문하길 기다리지만
그녀는 제 마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메뉴를 고르는 여유를 최대한 누리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한참씩 메뉴를 고르던 그녀는
대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그녀는 우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맛있는 아메리카노 주세요
좀 진하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면 저는
네...맛있게 뽑아드릴게요.
그리곤
그녀가 주문한 진한커피가 아닌
25초동안 1온스를 황금색의 풍부한 크레마가 있는
완벽한 샷을 뽑아 아메리카노를 주면서 말하곤 합니다.
진~~하게 맛있게 뽑았어요.
그러면
그녀는 크레마가 살아있는 아메리카노 한모금을 마시면서
얼굴가득 미소지으며 행복해 하곤 했습니다.
어느날
그녀가
아메리카노 두잔을 주문하길래
저는 그녀에게 물어 봤습니다.
오늘은 두잔? 왜요?
궁금해 하는 제게 그녀는
아...
사무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 한잔 줄려구요.
그럼 커피 받은 사람이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하지 않을까요...
아..
그녀는 온화한 표정 만큼이나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이 부자인,
아니 부자로 살 줄 아는 진정 참부자였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다른손님은
너무 괜찬다며 자기도 두잔 사서 사무실에 자기보다 먼저 출근한
다른 사람에게 한잔 나누겠다며 좋아라 했습니다.
요즘도 어김없이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커피를 사러 옵니다.
그리고 두 번중 한번은 누군가를 위한 커피한잔을 더 사갑니다.
제 가게 가득 그녀만의 향기를 남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