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있던 카오산의 밤
화투패를 쪼듯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문득 고개 돌려 마주한 시퍼런 하늘을 통해 그날의 그 여자가 생각난 건 무슨 놈의 자유연상이냐?
두 번째로 만난 그 여자와의 그날 밤엔 지상 최대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의 D&D 호텔에서 섹스를 나눴다. 적절히 걸친 술발에 도움닫기 되어 꽤나 그럴싸한 정사씬을 펼쳤지만 디테일한 묘사는 참기로 한다. 말하고자 하는 요체는 그게 아니니까.
격정의 동물적 교접을 마치고 난 후 우리는 그제야 우리 사이의 한바탕 어울림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항 하나가 어긋나 있었음을 발견했으니 콘돔이 찢어져 있었던 것.
음...... 전남 담양의 시골 약방에서 콘돔을 찾는 고객이 많지 않을 것 같아 내 유통기한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샀건만...... 허리하학적 모세혈관 덩어리의 팽창력에 있어 어디가 주눅 든 적은 없다고 하나 내 무슨 포르노 스타급의 기량을 지닌 것도 아니건만 아무래도 유통기한 밑에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여 있었지 않았나 하고 이제와 의심해본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 라기보다는 추궁에 가까운 문답은 그러했다.
“너 에이즈 예방 주사 맞았어?”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에이즈 주사란 내게 타워 팰리스 만큼이나 거리감이 있는 단어였다. 당연히 안 맞았다.
“그럼 에이즈 검사는 해봤어?”
타워 팰리스에 살 것도 아닌데 모델하우스 구경은 해서 뭐하겠나. 역시 안 해봤다.
그러자 그녀는 울상을 짓더니 불안에 떨기 시작했고 잔뜩 미안해진 나는, 에이즈 검사도 안 해봤고 에이즈 주사도 안 맞아본 파렴치한 그런 나는 고해성사라도 하듯 진정성 넘치게 내 지난날들의 연애사와 그에 비롯된 섹스사를 나열해야 했다. 아무 문제없었고 차후에도 그럴 확률이 농후하다. 심지어 난 콘돔이 없으면 절대로 섹스를 하지 않으며 새벽 세시 반에도 로비에 전화해 콘돔을 가져다달라고 하는 그런 인간이다. 나 청렴결백하다.
그러한 끝에 그녀는 조금이나마 불안이 덜어진 것 같았고 그러면서 내게 새끼손가락을 요구했다. 나는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통사정하며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손가락과 마주 걸었다. 약속한다고.
그녀와의 그날 그밤을 떠올리면 종종 하나의 물음이 새겨진다. 그녀는 나란 놈을 뭘로 봤던 걸까?
그녀는 창녀였고 나는, 음...... 나는 그냥 나였다.
담배 하나 빼어 물고 다시 올려다본 하늘은 오지게도 시퍼렇다. 돈 한 푼 못 버는 날백수인 내게 일감을 안겨주신 편집장님, 시퍼런 하늘보다 더욱 고귀해마지않는 편집장님의 원고 수정요청에 모니터를 쏘아보다 잠시 그녀를 생각했다.
아무래도 소주를 너무 마셨다. 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