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로빈
끔찍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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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위가 약하신 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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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제가 끝내주는 김치찌개를 끓였어요.
물론 한 사람이 한 번 먹을 양으로 맞추진 못했지요.
그래서 오늘 저녁에도 또 먹었어요.
단톡방에 자랑사진을 올렸다가
고기가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을 듣고 나서
오늘 저녁 퇴근길에 어제 산 고기의 두 배를 사들고 집에 와서 다시 끓였지요.
혹자는 이것 때문이라고도 하시던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숟가락을 뜰 때 마다 한 가득 들어있는 고기가 비린거에요.
그래서 두 숟가락 겨우 먹고 못먹었어요.
사실, 좀 비려도 전 잘 먹어요.
고기니까요.
이미 먹방아이디로 각인된 듯 하니 숨기지 않을게요.
근데 오늘은 참.. 못먹겠더라구요.
낮에, 직업적 특성상 굉장히 끔찍한 일을 했거든요.
사실 전에도 많이 했던 일이라 오늘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었어요.
실험동물을 처분하는 일이었어요.
오늘따라 수가 많았어요. (개인적인 경험 기준. 지금 하는 일 기준.)
평소에는 실험을 하고 남은 수만 처분하면 되었지만,
오늘은 실험 할 지도 몰라서 미리 준비해둔 애들을 처분해야 해서
좀 많았거든요.
투명한 안락사 챔버..
이산화탄소를 주입해서 안락사 시켜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도 권장되는 방법 중 하나에요.
가장 단시간내에 고통스럽지 않게 안락사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건 하는 사람이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산화탄소 챔버 방법을 좀 더 선호(?) 했었어요.
이것도 굉장히 빨리 끝나거든요.
손 끝으로 전해지는 느낌도 없고...
여튼, 지금 있는 곳에서는 이 방법으로 해요.
근데 이 이산화탄소 챔버라는 것이 투명한 통이에요.
그래야 실험동물이 완전히 안락사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거든요.
근데, 얘네들도 알거 다 아는 애들이에요.
가지고 나갔던 케이지가 되돌아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해해요.
그러니, 이 투명한 통 안에 친구들을 넣고 차례로 나오는걸 보는 애들은 얼마나 공포에 떨까 싶은거에요.
소설에서 가끔 나오는 죽음의 냄새라는거.. 진짜 있는거 같아요.
사람이 못맡을 뿐이지, 애들은 다 알더라구요.
그래서 좀 많더라도, 한 번에 모든 개체를 다 넣고 안락사 시키는게 낫겠다 싶었어요.
보지 않고는 모르실거에요.
케이지에 과도하게 많은 개체를 넣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쩌면 그 방에 베어있는 불길한 냄새를 맡아서 일수도 있겠지만요.
그렇게 불안해하는 애들을 한꺼번에 챔버에 넣었어요.
밸브를 잠그고, 이산화탄소를 넣었어요.
그 순간 제가 실수했다는걸 알았어요.
개체수가 너무 많아서 안락사 될 때 까지의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던거죠.
물론 큰 차이는 없었어요.
20초냐 1분이냐의 차이일 뿐이었죠.
그렇게 오늘 60마리의 작은 생명을 안락사 시켰어요.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요.
일을 마치고 나와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60번 했어요.
불교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절에 다니시니까 매년 제가 죽인 애들을 위해 등을 달았거든요.
그렇게 점심시간 직후의 일을 끝내고 저는 다른 일을 하며 그 모습을 잊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김치찌개의 고기를 씹는 순간, 제가 그 마우스를 씹는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정말로 먹을 수가 없었어요.
퍼놓은 밥을 오래된 김을 반찬삼아 꾸역꾸역 먹고 나서도
뭔가 개운치 않아서
지금은 술을 마시고 있어요.
쏘주를 추천받았는데, 집에 없어서 평소 마시던 달달한 와인으로 대신하고 있어요.
전에는 달달한 와인이라서 마셨는데,
지금은 술이라서 먹어요.
어제까지만해도, 술은 기분이 나쁠 땐 먹으면 안되는거라고 생각했어요.
기분나쁠때 먹는 술은 독이고, 그렇게 마시고 취하면 추하게 주사를 부릴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알겠어요.
왜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시는지를.
이 씁쓸한 뒷맛이 왜 이리 달콤하고 개운하게 느껴지는지..
취하려고 마시는 것도 아니고, 잊으려고 마시는 것도 아닌데..
지금 이 순간 제가 가장 거부감없이 목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이 이 술 한 잔 이네요.
직업적 특성상, 트레이닝을 받을 때도 죽은 동물을 많이 봤고,
돼지 잡고 저녁에 돼지고기 파티를 한 적도 있었어요.
트레이닝 첫 해, 첫 번째 경험 이후엔
죽은 동물과 먹을 것을 잘 구분하여 입맛이 상하는 일은 전혀 없었죠.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오늘 왜 이리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네요.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 이젠 좀 더 정확히 알 것 같아요.
덧붙이기) 이 글로 인해 실험동물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일어난다거나, 쟁점화되어 큰 파장이 일어나는걸 원하지 않습니다.
업계 종사자로서, 저희도 생명 귀한줄 알고, 재미로 죽이지 않습니다.
생명이 아무리 평등하다고 한들, 인간의 생명 >>>>>>>>>>>>> 동물의 생명 이라는 것은 현실입니다.
화장품업계에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원료로 이름만 바꿔서 신제품으로 내놓으면서 시장판매 허가를 위해 하는 소비적인 동물실험 이외에,
신약개발 등을 위한 동물실험까지 반대하시고, 저를 비난하시려는 분들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백신 한 번 맞지 않고, 알약 하나 드시지 않은 분들이라야 떳떳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