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수 없는 공주병의 무거움
내 주위에는 공주가 한분-_- 살고 계시다.
(그 아해의 프라이버시 보호차원에서 이름대신 '공주'라 칭한다)
어제 낮에 있었던 일화를 먼저 소개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기대하시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그냥 그런 일상의 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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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을 먹은 후에, 이쁜 여자아니면 절대로 옆에 태워주고 싶지않는 내 옆자리에 공주를 태우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아까 흰둥이 오빠(가명)랑 가다가 지인ㅉㅏ 진 짜(진짜를 아주많이 강조하는 어투로) 잘생긴 사람 봤어요..."
하길래
딱! 말을 자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나한테 잘생긴 남자 본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마라. 이쁜 여자 본 이야기는 해도 된다, 되도록이면 자세하게 묘사해서."
"왜요?"
"잘생긴 남자이야기따위는 내 관심 밖이니 하고싶지않을 뿐이야."
여기에서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을뻔했다.
공주왈.
"어떻게 사람이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수 있어요?"
어이없는 우문이었다. ('_';)
순간 공주의 뒷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강항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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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디어디에서 이쁜여자 봤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해석하면
그 어디어디라는 곳은 이쁜여자가 나타날 확률이 많은 곳이다라는 유익한 정보-_-가 될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잘생긴남자를 어디서 봤다는 류의 이야기는 들어봐야 나에게는 도무지 아무런 감흥도 느낄수가 없다.
그리고,
잘생긴 남자 보기가 얼마나 쉬운데...
(거울을 들여다 보기만 하면 된다는...쿨럭;;;;;;)
아무튼 평소에
"어제 TV에서 정말정말정말정말 잘생긴 남자 봤어요"
"어머, 쟤 잘생겼다(@_@)"
"가수 A군은 노래는 잘하는데 얼굴이 너무 못생겼어(A군 이렇게 부르니 꼭 사건과 실화 같군요^^)
등등의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는 그 아해와의 대화에서 오는 짜증이 그 한계치에 막 다다르려 할 무렵이었나 보다.
그래서 마치 정원10명에 770KG까지 수용할 수 있는엘리베이터에 9명의 사람이 타고있고 그들의 총 무게가 720KG 정도였는데 평균몸무게인 77KG보다 7KG나 가벼운 내가 마지막에 타자 정원초과 벨이 삐~하고 울리듯,
어제의 그 사건(뭐 사실 사건이랄것도 아닌 일입니다만)으로 그 아해의 공주병에 대한 나의 인내력을 지탱하고 있던 끈이 전래동화 햇님달님에서 호랑이가 매달려서 올라가던 썪은 새끼줄마냥 싹뚝 끊어지고 만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TV를 보다가 "어? 내스타일이네"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같이 사는 흰둥이형으로부터 구박을 받긴 하지만.
"TV에 나오는 여자애들은 다 니스타일이냐??"
라고
-_-;;;
역시 남에게는 너그럽고 자신에게 엄하라는 옛성현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니
군자가 되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는걸 새삼 느낀다.(뭔소리지??)
이랬든 저랬든
나는 평소에 눈이 낮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이 공주는 그런 나의 눈에도 아무리 이쁘게 봐 줄려고 해도 도저히 이쁘게 보이지 않는다는 둥의 글을 쓰면
평소에 사람 생긴거랑 이름 가지고 놀리면 못쓴다 라고 가르치신 국민학교 6학년때의 담임선생님이 생각나서
그런 표현은 쓰지않겠다. -_-v
키도 작고 몸매도 별루란 말을 쓰면
그러는 너는 잘났냐 라는 류의 비난섞은 리플이 올라올까봐 역시 쓰지않겠다. -_-v
다만.....
매일 everyday
자기 주변의 모든 남자들이 자기를 좋아하고
예전에 남자친구들이 모두 잘생기고 돈많고 - 시쳇말루 킹카였다는 둥
그 남자친구의 친구들이 또 자기를 좋다고 해서 난처했다는 따위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정말 진지한 얼굴로 하는 걸 보면서
이대로 가만히 들어줘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도록 강한 어조로 부정을 해줘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면서도 그냥 묵묵히 들어줄수 밖에 없었던 용기없던 나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의 첫 실행으로서 이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첨엔 자해개그-_- 차원에서 이해를 하려고도 해봤고...
니 주위에는 취향 참 특이한 사람들만 있었나보구나..하며 너털웃음을 짓다가
갑자기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식는걸 느낀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아해(공주)가 독기를 품고 째려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만 손을 떨어야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눈빛만으로 살인을 할 수 있었으면 나는 그 날 갈기갈기 찢어져 죽었으리라)
에필로그.....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무척 떨린다.
그 아해가 이 글을 볼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며, 만약 본다면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챌수 있을것이며.
가뜩이나 평소에 많이 갈궈서 나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을텐데, 만약 그 아해가 이 글을 본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확신이 서지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와 그 아해는 같은 회사? 조직? 조합?에 소속되어 있으며 나는 그 아해의 직속상사의 위치에 있기때문에 평상시 일부러 조금은 사무적이고 무뚝뚝함을 얼굴에 쓰고 그 아해를 대한다)
하지만 그 아해의 면전에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정신차려 이 공주야"라고 말할 용기가 도저히 없는 소심한 나는 이렇게 게시판에서라도 하소연을 할 뿐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다만 그 아해가 위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에서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면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