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에 대하여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바이블에 대하여

짤짤 15 400

<바이블>은 고대 희랍어로 <The Books>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의 전통에 대해 열려 있고

앞으로도 새롭게 해석되어질 열린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처한 역사적인 상황 아래서

그들의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그들의 신인 여호와(혹은 야훼)께 묻고 있습니다.

성서는 중동 지방과 유럽, 북아프리카의 설화, 역사, 정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집대성한 유대의 사제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물론 성서는 현대적인 의미의 역사서는 아닙니다.

그 저자들이 현대 고고학 기법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연대를 설정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방식이 현재와 달랐으며,

역사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판단하는 기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성서의 주된 관심은 기본적으로 가나안이라는

작은 지역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역사서들은 이 지역에 상대적으로 작은 지면만을 할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성서는 오늘날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고대사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역사서보다 오히려 폭넓게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가 무대 저편으로 사라진 후 그의 가르침은

기억과 구전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가 살아생전 자신의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건 석가모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구전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늘 논란의 소지를 남기게 마련입니다.

예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말씀을 인용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같은 내용일지라도 사람의 입맛에 따라

다른 형태로 전달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옹호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고요.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해당사자의 입장에 따라

진술이 전혀 달라지는 경우 말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단순히 유대교의 개량으로 받아들이는 쪽과

유대교의 급진적 변경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전자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도 모세 율법의 우위를 주장했을 것이고,

후자는 이를 부정했을 것입니다.

 

거의 동일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4대복음서>를 비교하면서 읽다 보면

이런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 중에서 유대적인 색채가 가장 짙은 마태는,

예수를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서 율법의 자구를 능가해야 한다고 가르친 인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간통을 삼가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정욕을 품는 것조차 용납해서는 안 된다,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모세 율법은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했을 경우 동종의 보복을 허용하고 있지만

예수는 아예 보복을 않는 것을 높이 샀습니다.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쉽다,

그것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도 다 하는 자연스런 경향이다,

도덕적 완성을 원하는 사람은 그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 세리도 이같이 하지 않느냐?”

 

여기서 세리는 최악의 예로 제시되었습니다.

세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로마의 세금 체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던 로마는 세금징수에 필요한 조직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부자들에게 조세징수권을 도급으로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거액을 상납하고 특정 식민지의 조세징수권을 샀습니다.

로마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받은 돈이 세금이었던 셈입니다.

징수권을 구입한 사람들은 식민지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서

자기들이 지불한 금액을 벌충해야 했습니다.

이것도 사업이므로 많은 이익을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그들의 토색은 가혹할 수밖에 없었고, 유대인들에겐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예수가 말한 세리는 그 부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말단 고용인들을 지칭한 말이지요.

어떤 면에서는 이들이 훨씬 악독했습니다.

죽어가는 아이의 옷도 벗길 만큼 무자비했으니까요.

이들 대부분은 생계수단을 위해 세금 징수원으로 나선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일제로부터 36년의 지배를 받는 동안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도 로마인은 맞서 싸워서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로마인의 존재를 용인하고 그들에게 세금을 내는 것도 나쁘지만,

그들 대신 세금을 거두어 바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였던 겁니다.

 

성서도 이런 식으로 접근해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책이랍니다.

역사, 문화, 정치, 사상이 망라되어 있거든요.

선입견도 문제지만 모르면서 용감하게 외치는 것도 옳바른 태도는 아니겠지요.

참고로 저는 신권주의와 인본주의는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15 Comments
참새하루 2014.10.03 05:04  
짤짤님.

온라인에서 종교적인 입장표명은
미묘하고 논란의 소지가 있어서 늘 조심스럽습니다

저도 한때 젊었을무렵
성서고고학이나 영지주의에 관심을 가진적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종교에 대해서는 오픈 마인드이고
진행형입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짤짤님 글을 보면
경쾌하거나 무겁거나
둘중 하나인듯 합니다^^
sarnia 2014.10.03 10:31  
대한민국의 종교이야기는 대한민국방에서 하는 게 좋겠지만, 종교일반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나누어도 무방하겠지요. 사실 종교 이야기는 무겁고 부담스런 이야기가 아니라 즐겁고 경쾌한 이야기입니다.

특정 종교를 비난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냥 소소한 생각을 ‘경쾌하게’ 말하는 것이니 혹시 이 댓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그렇게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종교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통기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서른 세 살에 사형당한 어떤 유대청년의 부활과 재림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는 이상한 이야기를 정통교리로 확립하는 순간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는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부분은 생략하고 본문 제목이 ‘바이블’ 이니 바이블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바이블이라는 명칭을 한국어로 번역하지만 경전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의역하자면 기독교 경전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 경전을 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서라고 부르겠지요. 한국에서는 가독교경전을 그다지 성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저같은 사람도 습관처럼 성경 또는 성서라고 부릅니다. 반면 영어권에서는 보통 그냥 바이블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라도 ‘홀리 바이블’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바이블을 신약 과 구약으로 나누어 부르는 데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 용어 자체가 배타적이고 무례하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유대교가 다 없어진 종교가 아니라 엄현히 존재하는데요. 굳이 나누어 부르려면 유대교경전(구약) 과 기독교경전(신약) 으로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어쨌든 바이블 중 기독교경전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편집된 책일 가능성이 압도적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라 이 분야에 대해 깊이 연구하신 분들께서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겁니다.

사실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 온 초창기 기독교는 오늘날의 불교사상과 흡사한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천당 지옥 부활 재림 같은 미신스럽고 황당스런 이야기가 아니라. 영적존재로서의 참나가 과연 무엇인가를 추구하려는,, 그야말로 우주와 '나' 라는 존재의 본질, 그리고 나와 대상전체의 관계를 추적해보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지요. 기독교와 불교가 딱히 서로 교류를 했거나 영향을 주고 받아서 유사성이 있다기 보다는 사실 이런 게 고등종교의 본질이기 때문에 서로 각각 고립된 시기와 공간에서 발생했다고 해도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고차원적인 진리추구는 문맹률이 거의 백프로에 달했던 고대시대로서는 대중들을 종교담론장으로 끌어들이는데 명백한 한계가 있었을 것 입니다. 당시 문맹대중들에게는 좀 더 쉽고도 확실하게 현세에서의 축복과 사후세계의 보장이 필요했겠지요. 비록 그것이 쌩구라라고 할지라도 고대시대 일반대중에게는 강한 위안이 될 수도 있었을 것 입니다.   

철학 이야기보다는 역사 이야기가 이해하기 쉽고, 역사 이야기 중에서도 한 번 들으면 까먹지 않을만한 기적 이야기 같은 것이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데 더 유용했을 것 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신약이라고 부르는 기독교 경전 입니다. 기독교경전 중 제일 앞에 나오는 마태-마가-루가-요한복음을 사복음서라고 합니다. 이 네 개의 문서들 중에서 제일 먼저 쓰여진 문서는 마가복음이고, 조금 후대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첨삭되거나 창작해서 새 버전으로 나온 것이 마태와 루가복음입니다. 구라도 하면 할수록 늘고 세련되어 지듯이 마가-마태-누가 순으로 새련되어지다가 요한복음에 와서는 매우 철학적인 수준으로 진화합니다.  놀라운 질적 변화로 말미암아 요한복음을 앞의 세 복음서와 구분해서 분류하기도 합니다. 앞의 세 복음서는 구형폰의 여러 모델이고 요한복음은 스마트폰이라고나 할까요?

근데 바이블 (신약) 중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은 이 사복음서가 아닙니다. 바이블의 맨 앞에 나온다고 나오는 순서와 쓰여 진 순서가 같은 것으로 아는 분들도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경으로 채택된 기독교 경전 중 제일 먼저 기록된 문서들은 바울의 편지들입니다. 예수가 실재로 존재했던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바울이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인 것 같습니다.

예수와는 거의 동시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를 만난 적도 없고 그의 삶의 궤적, 즉 사복음서에 나오는 여러가지 예수의 인생사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아니, 모른다기 보단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 유명한 주기도문조차도 모릅니다.

‘예수 생각’ (철수 생각이 아니고)에 대해 가장 먼저 기록한 바울이 몰랐던 것을 한참 후에 쓰여진 마가-마태-누가복음의 저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안 것 일까요? 어디서 갑자기 동시대인들도 몰랐던 예수의 역사 이야기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것일까요?

바이블에 나오는 바을의 편지는 14 개인데 이 중 일곱 개 정도가 날조되거나 위조된 것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만 쉬쉬하고 있을 뿐 입니다.

도대체 바을의 편지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여섯 개 또는 일곱 개 씩이나 위조 또는 날조해서 정경에 끼워넣었을까요?

경쾌한 바이블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고,, 나머지 이야기들, 즉 앞에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관심이 있는 분들만 관련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건 그렇고,,,,,,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님께서 법정구속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요샌 교도소 밥도 잘 나오고 난방도 뜨뜻하게 해 준다고 하니까, 군대 동계훈련왔거니~~ 생각하시고 겨울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본문과 별로 관계없는 댓글을 달아 짤짤님께는 미안합니다
참새하루 2014.10.03 10:54  
짤짤님이 젊잖게 지뢰를 매설해 놓았다면
sarnia님은 아예 직사포를 날리시는군요
 
댓글은 잘읽었습니다
sarnia님의 다양한 쟝르의 지식과
그 이해도, 명쾌한 결론에 저로서는
그저 감탄할뿐입니다

무거운 주제라고 말씀드린것은
분란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말씀인거 아시잖아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사기액수에 비해
2년이라는 짧은 징역형을 받았으니
항고하면 또 감형
노인네라고 감형
한국 기독교계에 공헌한 공로로 감형
이래 저래 병원입원실에서 징역살다가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특사로 나오겠지요

소식도 빠르네요^^
sarnia 2014.10.03 12:32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혹시 내장산에 가 보셨나요?
전 지금까지 그 산 이름도 맘에 안들고, 왠지 관광버스타고 노래부르면서 가는 산이라는 뚱딴지같은 선입견 때문에 그 산에 안 갔었는데,, (마치 홍콩에 안 가듯이..)
코리아 여행 사진 보니 단풍이 참 이쁘더라고요.
마침 제가 한국에 머무는 마지막 주가 그 산의 단풍이 절정인 시기라고 해서,,
가 볼까 합니다.
무궁화호타고..
motu 2014.10.03 13:54  
내장산 단풍놀이 적극 추천합니다.
백양사라는 아주 크고 웅장한 절이 있는데 단풍과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홍콩도 정말 추천합니다.
지금 홍콩이 많이 시끄러워서 안정되면 꼭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새하루 2014.10.03 16:12  
단풍시기에 내장산을 방문할수 있는것도
큰 행운입니다
저도 딱 한번 갔었는데
20년전이라 지금은 기억도 가물 가물하네요

그래도 단풍하면 내장산이지요
단체 관광객들이 쓰나미처럼 휘몰아치는데서
살아남을 능력만 되시면
정말 추천드리고 싶은 산입니다

꼭 한번 가보세요
Robbine 2014.10.03 20:26  
저도 드라이브로 살짝 들린 적 있는데, 참 이쁘더라구요. 달리는 차 안에서 보니 위치에 따라 산세가 요리조리 변하는게 참 예뻣어요. 병풍을 두른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짤짤 2014.10.03 11:56  
불교의 연기법이 완성되기까지 1500여 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내세에 대한 구원 역시 마찬가지지요.
초기 유대교 사상에서는 상벌이 기다리는 내세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홍복으로 보상받고
파렴치한 인간들은 가난과 질병과 불행 등의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세에 대한 구원이라는 것이 도입된 것은 기원전 5세기 무렵입니다.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온 직후였습니다.
어느 순간 그들은 이렇게 자문했을지도 모릅니다. 
“보잘 것 없는 잡신들을 믿는 저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왜 이 개고생을 해야 되는 거야?”
이때부터 유대의 사제들은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게 되지요.

사도 바울은 바리새파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인이면서 로마 시민권자이기도 했던 그는 예수 사후 개종을 합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가 오늘날과 같은 성장은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기회가 된다면 바울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sarnia 2014.10.03 12:29  
저는 바울에 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만큼 그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부족합니다. 다만 짤짤님이 하신 말씀, 바울이 없었으면 기독교의 세계전파는 어려웠을 것이다,, 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현재의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바울의 종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래 예수는 종교적 캐리그마에 관심이 별로 없던 사람이었고, 그를 따라다녔다고 알려진 제자라는 사람들 또한 유대의 문화적 언어적 장벽 안에 머물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예수 의 삶과 생각’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해요. 헬라문화와 언어에 능통하고 로마시민권자이기도 했던 바울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을테니까요.

제가 대민방인지 어딘지에 종교 이야기를 하는 도증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조직과 이론 투쟁에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 분명한 것 같다고요. 그는 그가 쓴 편지인 로마서 (로마서는 바울이 쓴 진짜 편지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요) 1 장 1 절에서 부터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선언을 하고 들어가는 것 짤짤님께서도 잘 아시겠지요. 사실 이 말은 예수를 3 년 동안이나 따라다녔다는 제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을텐데말이죠..

디아스포라를 대표하는 바울이 예수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히브리 국내파를 제압하고 빠른 속도로 교회조직을 접수해 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기옥교의 초기역사를 구성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기원후 1 세기 이야기고 기독교가 결정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 건 (아, 이건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4 세기 초, 특히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325 년 이후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하긴 진리를 탐색하는 종교담론을 제국주의 권력이 주도하기 시작했으니 삐뚤어지는 게 당연한 결과겠지만 말이죠..
짤짤 2014.10.03 16:09  
바울이 4차례에 걸쳐 기나긴 장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사후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공동체가 결성되었습니다.
사유재산이라는 개념 없이 모두가 똑같이 먹고, 일하고, 나누던 집단이었지요.
1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바울이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려는 이방인들에 대한 승인을 요청했을 때
지도부 내에서는 반대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세율법을 따르는 유대인이 아니라
헬레니즘 문화에 익숙한 이방인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엄격하게 계율을 지켰습니다.
할례부터 식문화까지 전혀 이질적인 이방인들에게 개종을 승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그때 바울의 손을 들어준 것이 공동체의 수장인 베드로였습니다.
지금은 질이 아니라 양으로 승부해야 할 때다, 하는 논리였겠죠(물론 비약입니다).
이후 헤게모니를 쥐게 된 바울은 전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게 되죠.
예나 지금이나 집단의 세력이 커지면 권력다툼이 일어난다는 사실...
참으로 씁쓸합니다.
한쑤거덩 2014.10.03 15:47  
모두들 대단들하십니다. 몇 수 배우고 갑니다.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대해 별 관심 없이
이렇게 깊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지요.

인문학적인 관심이라고 이해 하기에는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네요.
나는 그동안 뭐했나 하는 자책과 동시에 최고의 칭찬이니 오해 마시길...

근데 말이지요,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다 좋은데 그거 하나 딱 걸리네요.
성경도 읽어 보면 좋은 내용도 참 많은데....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개신교 분들은,
요즘 애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좀 '나댄다'는 생각이 가끔씩은 들더라구요.
얼마전에 인도의 어떤 사원내에서 찬송가를 부른 사건이 있기도 했고

저도 성경책 2권을 가지고 있는데... (소장용은 아니랍니다 ^^)
그때 어떤식으든 처리를 해야겠다 싶었다가....
아직도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motu 2014.10.03 15:59  
유일신! 즉 오직 하나의 신만 믿는 종교가 기독교와 이슬람교입니다.
그리고 이 두 종교의 신은 같은 신이고 민족도 같은 민족인데도
싸움니다.
같은 신을 믿는 같은 민족끼리도 죽이는데
다른 신을 믿는 종교를 가만히 둔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죠.
짤짤 2014.10.03 16:20  
저는 무신론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종교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다분히 인문학적인 접근이죠.
그리고 모든 종교에 대해 오픈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 등쳐먹는 사이비종교는 빼놓고요.
종교라는 단어는 으뜸 종자에 가르칠 교자를 씁니다.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얘기죠.
그 안에는 최고의 도덕률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가르침을 행하기보다 삿된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Robbine 2014.10.03 20:31  
유일신을 주장하는 종교가 타 종교를 인정하면 자기모순에 빠지죠.

도올 김용옥 선생이 그러시더군요
'기독교의 교리는 논리로 설득하기엔 모순이 너무 많은데, 오랜 기간동안 세력을 유지하면서 그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고 대강 저런 의미였어요.
Robbine 2014.10.03 20:32  
불교와의 유사성을 이야기 하시니 '맨 프럼 어스'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재밌게 봤었어요 ㅋ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