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신병훈련소 교관, 꼴통 아들 이야기
6년 전,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있는데, 공무원 공부 열심히 하던 아들이 슬그머니 자기 방에서 나와 식탁에 마주 앉는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저 해병대 부사관 지원했습니다. 보내 주세요.”
“아빠가 상이군인이라 군대 안 가도 되는데, 뭐하러 그런 개고생을 사서 하려는 게냐?”
“노량진에서 해병대 부사관 4년 하면서 4천만 원 모으고, 제대해서 소방서에 특채로 들어간 형이 있는데, 그 형이 자기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저도 고생은 되더라도 그 형처럼 결혼 비용 벌어서 아빠 짐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그로부터 3년 후.
동기생 중에 제일 먼저 중사로 진급했다기에 다소 마음을 놓았는데, 다시 또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아버지! 제가 장기 지원한 게 사단에서 통과됐어요. 80대1이라는데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기가 막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제대해서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러더니 얼마 전, 또다시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아버지! 저 해병대 DI에 지원했습니다.”
“DI가 뭐야?”
“해병대 신병들을 진짜 해병으로 만드는 훈련교관입니다.”
아무래도 아들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 해병대 준위로 있는 아우에게 전화했다.
“아들이 DI에 지원했다는데 그게 뭐야?”
“DI는 Drill istructor(송곳교관)의 줄임말로 미국 해병대에서 유래됐는데, 훈련 기간 중에는 완전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훈련의 하나입니다. 난다 긴다 하는 해병대 지원자들 중 절반은 훈련 기간 중에 자퇴하고, 또 그중 절반은 임용 과정에서 탈락합니다. 그만큼 훈련 강도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든다는 거지요. 조카도 탈락할 공산이 크니 괜한 걱정 마세요.”
그러더니 5주 후, 훈련 무사히 마치고 신병훈련단에 배치됐다며, 사진을 한 장 보내온다.
다른 집 아이들은 공부 잘해서 판검사도 되고, 재벌회사 취직해서 돈도 잘 벌어온다는데, 얘는 왜 이렇게 부모 맘 고생시키는 일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또 무슨 일을 저질러서 내 속을 뒤집어놓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