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감상하세요...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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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08:29
신월동의 눈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있다
이곳은 강서의 끝, 몇 대의 버스 종점과
번지수보다 더 많은 가구들이 사는 곳
날마다 불도우저 삽질 소리 요란하게
남부순환도로의 한 끝이 파헤쳐지고
확인할 수 없는 서울의 한 끝이 허물어지고 있다
누구인가, 오랜 친구처럼
내 어깨 위에 쌓이는 이 눈은
또 어느 슬픈 죽음이 삐라처럼 휘날리고 있는가
언제부터인지 가난한 이웃은
도시의 외곽으로만 밀려다니고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땅을 위하여
이곳의 아이들은 종이배를 접지만
그들이 가닿을 꿈의 항구는 눈발에 가려 아득하고
밤이면 저 먼 샛강 위로
휘황한 서울의 생애가 떠내려 간다
오늘 하루 눈이 내려
강남과 강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히고
우리들 삶의 귀가길도 아득한데
지친 하루를 살고 돌아오는 젊은 가장이여
이제 당신들의 서울은
어디로 시린 발목 뻗을 것인가
인간이 사는 마지막 동네를 찾아 떠나온
집배원 우편낭 속으로 눈발이 날려
기억할 수 없는 몇몇의 주소가 지워지고
매운 바람에 코를 씻으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한쪽 어깨가 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