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한 기내난동사건
sa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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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2 02:17
포스코에너지(주) 왕X성 신재생에너지개발실장 기내난동사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 지상에 있을 때부터 명백한 ‘workplace harassment’ 가 발생했는데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이륙한 거부터가 문제다.
담당승무원 근무일지만을 참고로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첫 번 째 사건은 왕씨 탑승 직후 일어났다. 왕씨가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옆자리에 승객이 앉아있었다. 왕씨는 즉시 승무원을 불러 “씨발씨발” 하며 옆자리에 승객이 앉아있는 것을 불평했다. 통상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옆자리를 블럭해 준다. 비게 해 준다는 말이다. 승객이 많을 경우 후순위 승객 (마일리지나 스카이패스 등급 등) 순으로 옆자리를 채워나간다.
포스코는 대한민국 재계순위 8 위다. ‘재계순위 8 위기업의 임원급 간부가 외국항공사도 아닌 대한항공을 탔는데 감히 옆자리 블럭도 안 해주다니’ 하는 괘씸한 마음에 다짜고짜 승무원에게 씨발씨발 욕설을 퍼 부어 댄 모양이다.
이 때는 비행기가 지상에 있을 때였다. 승객에 대한 workplace harassment 경고조치는 그가 승무원에게 반말과 욕설을 한 직후에 시행했어야 옳다.
두 번째 사건은 약간 이상하다. 1st meal service 때 “왜 아침식사가 죽이 아니냐”며 메뉴판을 약 7 분 간 응시했다는 것이다. 왕씨가 탄 비행기는 오후 비행기였으므로 첫번째 식사는 아침식사가 아니라 저녁식사였을 것이다. 저녁 식사메뉴에는 죽이 없다. 왜 죽타령을 하며 메뉴판을 7 분간이나 응시했다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간다. 근무일지에 착오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세 번째는 밥이 덜 익었다고 불평한 사건이었다. 기내식은 조리된 음식을 마이크로웨이브에 가열해서 제공하는 것이므로 수분증발이 발생한다. 젓가락으로 휘저어서는 밥이 설었는지 익었는지 알 수 없는데 왕씨는 젓가락으로 밥을 휘저으며 “니가 먹어봐” 하고 승무원을 닥달했다.
이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아홉가지 사건이 더 발생했다.
네 번째는 라면이 설익었다는 불평이었다. 다섯 번째는 라면이 짜다는 불평이었다. 여섯 번째는 냅킨과 린넨을 통로에 집어던진 사건이었다. 일곱번 째는 면세품 주문 시비사건이었다. 여덟번째는 적정기내온도에 대한 논쟁사건이었다. 아홉번 째는 기내환기를 2 분마다 하지말고 1 분마다 하라고 명령한 사건이었다. 열 번 째는 안전벨트착용 거부 사건이었다. 열 한 번 째는 독서등 밝기에 대한 불평사건이었다. 열 두 번째는 ‘단발머리 애’ (담당 승무원)을 갤리까지 쫓아가 말아 쥔 잡지로 안면부위를 가격한 사건이었다.
인천에서 LAX 까지의 eastbound 비행시간은 10 시간 50 분 이므로 대기시간에 발생한 첫 번 째 사건을 포함 평균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이 중 가장 길었던 것은 7 분간에 걸쳐 진행된 기내식 메뉴판 응시사건이었다.
마지막에 발생한 열 두 번째 사건에 대한 왕씨의 주장은 다르다. 가격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들고 있던 잡지와 ‘단발머리 애’의 눈두덩이 무질서하게 왔다갔다하다가 서로 충돌했다는 것이다.
이 열 두 번 째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 연방수사국이 개입했는데, 이 사건이 미국 영공 진입 후에 일어난 사건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일단 사건이 일어난 비행기가 외국영토라고 인정했는지 왕씨를 그냥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일부 국내언론은 왕씨 (당시 보도에는 그냥 모 대기업 임원)가 FBI 에 의해 미국입국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는데 명백한 오보다. FBI 는 수사기관이지 입국심사기관이 아니다. FBI 에게는 외국인 입국자를 공항에서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입국심사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은 USCIS (미국시민권및 출입국담당 서비스)다. FBI 는 법무부 지휘를 받는 기관이고 USCIS는 국토안보부 소속이다.
싸르니아 짐작으론 아무래도 LAX 의 FBI 가 일단 신고가 접수된 이 귀찮은 사건을 떠맡지 않기 위해 왕씨가 입국심사를 받기 전에 한국으로 되돌아갈 것을 권유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왕씨가 “입국심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증언을 했는데,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입국심사를 받은 적이 없으니 입국심사에 문제가 있었을 리 없다. 교묘하게 진술된 fact 인 셈이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한항공측의 초등조치다.
어제 뉴스1 보도에 따르면 대한항공측은 “해당 승객에 대한 고소를 검토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업무상 벌어진 일이니만큼 해당 승객이 소속한 회사 등의 입장도 감안해 신중히 일을 진행할 생각"이라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이 사건은 기내폭행사건이다. 민사차원의 고소대상이 아니라 항공보안법상 형사고발대상이다.
포스코에너지 (주)의 감사결과따위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지만 대한항공의 향후 법적대응 방식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주 궁금하다. 두 회사 모두 이 사건을 조용히 덮어버리고 갈 생각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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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오늘 이 사건에 대한 연합뉴스 민X락 기자의 기사역시 미스테리하다.
이 기사는 “특정 인물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가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어 마녀사냥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는 지적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왕씨에 대한 신상정보는 이름 나이 소속회사 직위 정도다. 무분별한 신상털기가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다고 규정을 내릴민한 증거는 해당 기사 어디에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민X락 기자는 칼럼을 쓴 게 아니라 사실관계를 취재해서 알리는 보도기사를 작성했다. 보도기사를 작성하면서 기자 스스로 “……무분별한 신상털기가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어” 라는 규정을 제멋대로 내리면서 한 문장에 형용사를 두 번이나 남발하며 증거도 없이 주관적 판단기사를 쓰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학보사 수습기자도 이런 식으로 기사를 작성하지는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