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예의범절이 좋은 것일까?
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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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16:18
예의 [禮儀,銳意,禮義]
사회생활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 어떤 일을 열심히 잘 하려고 단단히 차린 마음
범절 [凡節]
규범이나 도리에 맞는 모든 질서나 절차
예절 [禮節]
예의와 범절을 아울러 이르는 말
출처 : 다음 사전
어느 나라에나 그 나라의 고유한 예절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예절이 발달해서 그 형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꽤 발달해서 일견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도 있다.
자칭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을 정도였으나, 현대화되면서 그 형식이 많이 간소화되고 있다.
예의나 범절, 상기 사전의 의미에서 보듯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을 위한 상호간의 작용 방식을 규범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예절은 수직적인 질서를 중시해온 문화 속에서 태동하고 성장한 것이라, 상호간의 관계에서 아랫 사람만에게만 그 의무를 지우는 경향이 강하다.
어릴때는 선생과 부모 그리고 동네 어른과 몇몇 친척 외에는 윗사람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남자의 경우 군대에 가게 되면 비로서 사회관계가 열리는데, 군이라는 조직 역시 형식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는지라 그 예절이 사회와 다른 부분이 있으면서 또한 까다로운 면이 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고참 몇몇이 나보다 나이 어린 경우가 있었다. 아마도 군역을 경험한 분들은 동일한 경우가 있었으리라.
어차피 군대는 계급 사회고, 나이가 어린 고참이라고 해보아야 고작 한두살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데 고참들이 한다는 말이 '사실은 너랑 동갑인데 호적이 잘못되어서 나이 어린걸로 나온다.'라는 말을 한다.
나이도 어린데 고참이라고 반말하고 때로는 구타까지 하는게 맘에 걸려서일까?
취직을 하고 나니 회사내나 회사외 사람을 만날때마다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끼리 꼭하는 질문이 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그리고 그 나이를 따져야 비로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남자들.(여자들은 모르겠다.)
얼굴 액면가가 확연히 차이나는 사이에는 그런 질문이 거의 없다.
있다면 언제나 액면가 높은 쪽이 낮은 쪽에게 묻지,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아마도 예의 없는 경우라고 생각해서인듯 하다.
예절이 문제가 되는건 나이를 기준으로해서 위아래를 구분하고 아랫사람은 꼬운 처지를 자동으로 감당하게 만드는데 있다.
또 그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직장내 직위이다.
군대에서 나이어린 고참이 문제가 되듯 직장내 나이 어린 상급자와 나이 많은 하급자의 갈등도 어지간하다.
그래서 기수문화가 있는 조직은 후배 기수 중 한 명이라도 "장"자리에 올라서면 선배기수들은 용퇴라는 알흠다운(?) 문화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게 불가능한 조직은 알아서 나이 많은 하급자들은 권고사직 또는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은 그럴듯한 종말을 준비해두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갑을 관계가 맺어지는 회사간의 관계에서도 나이 많은 을의 사장이 갑의 대리에게 일을 떠나서도 피곤한 관계가 형성된다.
예절은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전통적인 예절은 그 효력을 이미 다했음에도 그 잔재가 사람들을 상처주고 상처받게 한다.
영미 문화권에서 유학이나 어학 연수를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중의 상당수가 이 문화적 족쇄에서 자유로웠던 시절의 후유증을 귀국후에 겪는다.
그저 한국이라는 사회에 있는 것만으로 갑갑해지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예절을 기초로 한 사회관계가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지를 갑작스레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본에는 예절이 근본적 매커니즘...상호간의 관계가 아닌 을의 입장에서만 관계 조율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애쓰는 이유나, 실속을 떠나 허명만인 자리라도 감투싸움이 벌어지는 건 결국 예절에서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차나 옷 등의 외양에 신경쓰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너보다 더 "위'라는 것을 은연 중에 암시할 수 있기 때문.
명절이 피곤해지는 것도 이런 탓이다.
예절이 상호간의 관계라면 서로간에 말조심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근데 갑과 을의 관계가 되다보니 일년에 몇 번 만나지도 않는 사이임에도(즉, 서로간 또는 저간의 사정을 모름에도) 막말(?)을 아랫사람에게 부담없이 하고 아랫 사람은 썩소로 맞이해야 한다.
취직은 언제하냐? 결혼은 언제할꺼냐? 애는 언제 가질꺼냐? 너 아직도 과장이냐? 집은 언제 살꺼냐?
매일 또는 자주 보는 가족간에도 상당히 껄끄러운 얘기다.
일년에 몇 차례 보는 사이에 상대편 입장은 고려안하고 자신이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척이나 생각해주는 척 아랫사람 가슴에 비수를 찔러댄다.
예절 자체는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예절은 현대 사회에서 그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을 보인다.
그럼 이를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할까?
하나는 우리 말에서 존대말을 폐지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이미 겪고 있다. 알게모르게 존대말을 줄여가고 있다. 또 오용하고 있다.(오용의 예는 다른 글에서 다뤄볼 생각이다.)
사람 사이가 평등해질수록 존대말은 불필요해지고 존대말의 사용빈도가 줄어든다.
말이 사회 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사회 관계가 말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상인데, 총기 자유화다.
무례하기 그지 없는 상대방임에도 그저 그 사람이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경의를 표시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대 때려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싸가지 없는 자식으로 매장 당한다.
우리 나라 사람이 가끔 착각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동남아에서 그 나라 사람들을 아랫사람으로 보고 함부로 까불다가 총맞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남을 때리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한 것도 아닌데 총을 맞는다? 바로 이 경우이다. 예절에서 자유로워졌다가 이승에서 자유로워진 경우 되겠다.
우리나라도 총기 자유화가 된다면?
상당히 예절바른 사회가 될거다. 좀 높은 자리 있다고 아무데서나 거들먹거리지는 못하게 될거다.
물론 개인적인 상상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만, 점점 내게 존대말을 쓰는 이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비례하여 점점 방만해지고 위만 쳐다보는 습성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별로 바람직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미국의 엔지니어와 함께 일하다보면 그들의 나이가 이미 부장급이 된것을 보며 놀랍게 느껴지는데(우리나라는 부장이 볼트 조이고 현장 기계를 점검 하는 모습이 거의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러한 모습이 그들의 평등한 대인관계에서 일부분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 인구 고령화 속도를 볼때 나이에 따른 대접은 이제 물건너 갔다고 보아야 한다.
조속히 새로운 예절이 자리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