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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

혜은이 13 552
기분이 꿀꿀해서 그냥 반말로 쓰겠습니다
태국이랑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긁적거릴 데가 없어서요.. 죄송..
그냥 패스하셔도 됩니다 -.-;;
 
나는 고향이 대구이고, 대학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해서.. 이제는 그럭저럭 주변 사람들한테 능력을 인정받고 사는 노처녀이다.
설연휴에 부모님 모시고 2박3일 제주도에 갔다가 좀전에 집에 도착했다
태국에 가고싶었지만.. 프로젝트 진행중이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그대신 뀡대신 닭이라고.. 오래 전부터 한번 가고 싶었던 신라호텔을 예약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혼자 방 쓸려니 남는 침대 하나가 아깝다는 생각에.. 최근 몇년간 명절마다 태국 놀러가느라 고향에 안간 것을 만회(?)도 할겸 부모님과 같이 가기로 했다 -.-;
 
그러다 보니..
수페리어에서 디럭스로 방을 업그레이드 해야했고,
조식도 추가해야했고, 
대구-제주 비행기 표도 끊어드려야 했고
나는 호텔에서 시체놀이 스타일이니 공항버스 왕복티켓이면 충분하지만 부모님은 안그러시니까 차를 렌트해야 했고,
초행길이고 연휴 내내 날씨도 안좋다니 혹시 무슨 일 생길까봐 자차보험인가 full로 들고.. 등등..
먹는 것까지해서 3명이 2박3일 여행하는데 200만원 넘게 들었다 ㅠㅠ
(면세점에서 엄마 화장품 사드린 거랑, 여자가 나이 들면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데 혹시 엄마가 호텔에서 기죽을까봐 1월 첫주에 미리 서울 오시라고 해서 현대백화점에서 쇼핑한 것은 제외)  
 
그런데..
조식부페 먹으면서.. 수영장에서.. 프라이빗 비치하우스에서..
젊은 부부들, 특히 30대나 40대 초반의 가장을 둔 가족들이 너무 부러웠다
특히 형제나 남매들이 3-4팀씩 가족동반해서 온 집들은 정말 부러웠다
나는 내 능력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왔지만, 이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부모를 만났길래, 돈을 얼마나 많이 벌길래, 설에 이렇게 가족들이 때거지로 여행을 왔을까..(돈이 얼만데.. -.-;;)
나는 저 나이때 부모님 집 사드리고(항상 따뜻한 물이 나오는 아파트에 살게 해드리고 싶었다), 매달 생활비 보내드리고, 유학간 동생 학비 보내느라(그러나 5년 넘게 뒷바라지한 보람도 없이 실패한 유학이었다ㅠㅠ) 여행 같은건 아예 상상도 못하고 살았는데..
 
노부부 단둘이 여행온 것을 봐도 참 부러웠다
(자식들은 부모님 남겨두고 더 좋은데 갔는지 모르겠지만) 저분들은 당신들 돈으로 오셨겠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호텔에 묵을 만큼 경제력이 있으신 거겠지?
(얼굴이나 옷차림을 보면, 특히 대화 몇마디 주워들으면 답이 금방 나온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저정도의 경제력이 있었다면..
아니 저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남들이랑 비슷한 정도만 됐었다면..
아마 나는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결혼해서..
애낳고.. 가끔 남편한테 바가지도 긁으며.. 아파트 평수 늘리는 재미도 맛보며..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을텐데.. 
사실 내꿈은 현모양처였는데 이제는.. 도저히 이룰수없는 꿈이 되어 버렸다
 
당신이 가진 능력보다 훨씬 더 잘살아온 우리 아빠..
한번도 엄마한테 생활비를 준적이 없으시다
당신 월급은 그냥 혼자 용돈으로 다 쓰셨다
생활비는 커녕 엄마한테 돈 타쓰는 것도 학창시절에 여러번 봤다..
우리 아빠는 왜 다른 아빠랑 다를까.. 그게 철 든 후로 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젊어서는 장남만 편애하는 어머니 덕에, 결혼해서는 황소처럼 일 열심히 하는 마누라 덕에, 늙어서는 능력있는 딸 덕에..
평생 그렇게.. 당신이 가진 능력보다 휠씬.. 눈에 힘주고, 자유롭게 살아오셨다
그랬는데 지금은 나이 들어서(70 넘은지가 벌써 몇년전) 귀도 잘 안들리고, 녹내장도 있다고 하고, 치근이 안좋아서 그 좋아하시는 회도 잘 못드시고, 행동도 느릿느릿..
그래도 그정도인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한라산 중턱을 다른 차들은 다들 옆으로 빠져서 체인 감느라고 난리들인데 엔진브레이크를 이용해서 무사히 공항까지 운전하신 베스트 드라이버이긴 하다 ㅎㅎ..
암튼 고혈압, 당뇨 없으시고 이제껏 큰병이나 수술같은것 받으신적 한번도 없으시니.. 참 다행이다
만약 혹시라도 그런 일 생기면 병원비는 다 내 몫이다 ㅠㅠ
 
이만한 것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아빠를 보면, 특이 이번에 며칠 같이 지내다보니.. 아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자꾸 화가 났다
어째서 마음에 두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건지..
우리 엄마는 왜 저런 남자를 택해서 평생 고생만 한건지..
그와중에도 아빠 눈치보고, 시중들고 하는걸보니 엄마한테도 화가 났다
오래 전부터 했던 생각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그래서인지..
나는 능력없는 남자를 혐오한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도 능력없는 사람은 남편감으로 싫다
근데 내 또래에 나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available한 싱글 남자는 정말 드믈다
돌싱이라도 그정도 능력있다면 젊은 여자 데리고 살겠지.. 나 같아도 그러겠다 ㅋㅋ..
 
사랑도 좋지만.. 내가 데리고 살아야 하는 남자라면 노 땡큐다
지금도 혼자 충분히 잘 살고, 부모님 부양 잘하고, 노후준비도 잘 하고있다
감정에 휩쓸려서 어물게 혹(?) 하나 달고는, 이제까지 했던 고생을 또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구질구질하게.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벌벌 떨며 살기 싫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미래를 충분히 예측하고, 준비할수 있지만 남편이라는 미지수가 나타나서 나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때.. "사랑(내지는 남편이라는 존재)"과 "안정적인, 약간은 여유있는 미래"를 둘다 가질수는 없을것 같다
그러면 둘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나는 미련없이 전자를 포기하겠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공항으로 마중 나오는 사람도 없고, 불 꺼진 빈 집에 혼자 들어가야겠지만 그래도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작년에 결혼한 친구가,
너는 고양이 과니까  혼자 얼마든지 잘 살수있지만 나는 개 과라서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해..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동의한다..
 
이 밤은 약간 쓸쓸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기분을 간혹 느끼겠지만 그래도 나는 잘 살아갈 것이다
뜬금없이 책 제목이 생각나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내용은 기억 안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나는 그 작가를 싫어한다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것이고..(이 대사의 주인공은 좋아한다 ㅋㅋ)
신라호텔 스파는 차마 손 떨려서 지르지 못했지만 내일은 오랜만에 타이마사지나 받으러 가야겠다 ㅋㅋ
 
13 Comments
필리핀 2012.01.24 02:35  
2박 3일에 200마넌...
저는 이번에 와이프랑 태국 가서
열흘 동안 250마넌 쓴 것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ㅠ.ㅠ
고구마 2012.01.24 09:47  
제주도에서 다른 가족 여행자를 보시고 느낌 감정들을...
혜은이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진한 부러움을 느끼게 할거에요.

시즌이 시즌인만큼, 제주의 좋은 호텔에 머무르신거 같은데, 2박 3일에 그정도 돈을 쓸수  있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거니와...
부모님 다 모시고 가셨다는것도 참 말할수 없이 부럽고 부러운 사람들이 많을듯.....
게다가  어디 주변 사람들한테 능력 인정받고 살기가 쉬운가요.
요정인형 2012.01.24 11:08  
제주도가 은근 비용이 많이 들긴 하더라구요.
저도 2009년 엄마와 둘이 제주도 신라호텔 2박3일로 다녀왔는데요, 회도 먹지 않았는데도 엄마랑 둘이서 150정도 들은것 같았어요. 신랑하고 갔다면 그리 많이 들진 않았을지도...
엄마하고 처음 간 여행이였는데요 신랑의 배려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와서 기억에 오래 남더라구요.

지금까지 결혼할만한 상대가 없고 또 능력까지 있으시니 정말 이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결혼 안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님 능력으로 부모님 모시고 여행 떠날 수 있다는게 저같은 전업주부로써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
koman 2012.01.24 12:05  
개인적인 감정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인생이란 한나를 가지면,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하는것....

모든걸 다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봅니다....

비교하면 골은 더 깊어지고, 수긍하면 마음은 애닮지만,  인생은 마라톤이니까요....

맛사지는 시원하게 잘 받으셧나요....새해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또깡이아저씨 2012.01.24 12:31  
내년 이맘에는 부모님의 좋은 여행지(태국?)를 사위가 책임지시길.....기원합니다.
마사지는 단체로...꼭...내년 이맘 때...넷이서..
새해 복 들어갑니다...
desert10 2012.01.24 13:33  
한 집안의 가장역할을 하셨네요 하나를 얻으면 하나을 잃을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소신이 담긴 내공을 보는것 같아 동감합니다. 저는 돌독이지만 태국으로 인연찾아 떠납니다. 항상 건강하고 자신있는 삶 사시기를 바랍니다.
영맨영발 2012.01.24 14:57  
남들과 비교하면 끝이 없죠~
똘레 2012.01.24 20:27  
아직 인생 더 많이 사셔야 될듯........초반엔 응석 부리는것 같고...중반엔 조금 거슬릴 정도로 교만한것 같고..후반엔...참 쉽게 생각하고..편하게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ㅠㅠ
kairtech 2012.01.24 22:10  
우리딸애 보는것같아 안타깝네요
인생은 그렇게 자신만을생각하는게 아닙니다
남을위해 나누어주는  그러한 덕목도  함께하는
그런  삶도  살아볼만하다오
positano 2012.01.25 09:46  
여러군데 동감하며 글 읽었어요..
선택은 내가 한것이니 그에 따르는 것들은 짊어지고 가야겠지요.
명절때마다 여자들이 고생할때 고향에 내려가서인지
부모님도 요즘엔 이렇게 나이들어 결혼해 고생하느니 걍 편하게 혼자 살아라 하시지요 ㅋㅋ
서울에선 타이사람에게 맛사지를 받아도. 태국의 기분이 안나고 몸도 풀리지 않드라구요.
나중에 태국가서 같이 실컷 받아요~
meiyu 2012.01.25 12:51  
글 읽으면서 화가 났어요.
혜은씨와 같은 딸이 있었다면 난 ,미안해서 도저히 같이 못 갔을 것 같아요.

나이 꽉 찬 딸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 아이의 어깨에 놓인 짐을 생각한다면
늘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아요.
물론
부모님도 사양하셨겠죠.

그러나
혜은씨가 쓴 쓸쓸함이란 제목 속의 함축된 의미를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어요.

나는 딸이 없고 장성한 아들만 둘이 있답니다.
결혼 적령기라서 빨리 짝을 찾았으면 하지만 한편으론
요즘 남자들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모든 젊은 남자들이 불쌍해진답니다.
그러나
내가 결혼 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자식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물론 애도 먹이지만^^
혜은씨가 집에 준 도움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좋은 짝이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거라
확신합니다.(아무리 세상이 뭐 같다고 하지만 善함의 끝은 있더라구요.)
그러니 새해엔 눈 크게 뜨고 짝을 찾아보세요.
아현동마님 2012.01.25 20:47  
제목만 보고 반가운 마음에..푸켓에서 살짝 외롭다 느끼시나보다 했는데..다른 모습의 연휴를 보내셨군요..그밤에 느꼈던 쓸쓸함이 ..나를 위한 휴식의 여행에서..가족의 이름으로 봉사만 하다온 헛헛함이 아니였을까요~저역시 요즈음 제일부러운 대상이 4인가족 입니다^^;;;아마도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가라앉을건 다 가라앉고 좋은기억만이 남아서 또다시 가족여행을 계획할거라 확신합니다..님의 깔끔한 태국 여행기를 못읽는 아쉬움은 잠깐 접어두겠습니다.
금자 2012.02.01 21:40  
글 읽으면서 울컥, 동감했습니다.
전 부모님을 버리고 -_-;;;; 태국으로 놀러와서 설 명절을 보냈지만 어떤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쓰셨는지 그 쓸쓸함이 마음에 고스란히 와 닿았어요. 다음 명절에는 온전히 혼자를 위한, 이기적인 휴가를 보내시기를! 그런데 혼자 온 여기도 외롭기는 하군요. ㅎㅎ (-> 이건 태국왔다고 자랑질?-_-;;;)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