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말아먹는 ‘탁신 주식회사’
독점적 정치행태로 드러나는 재벌정치의 진면목… 포퓰리즘의 유령은 총칼만큼 무서워라
“계획대로다. 일당 독점체제 구축해가는 한 과정으로.”
7년 전부터 탁신 족벌체제를 연구해온 우크리스트 빳마난드(출라롱콘대학 부설 아시아연구소)는 지난 10월 초 개각과 군 인사를 놓고 “처음부터 그렇게 출발했는데, 이제 와서 왜 놀랄 일이냐”고 되물었다.
그 항변 “부자라서 정치할 수 없다고?”
“이제 남은 건 예산을 주무르는 일뿐이다.” 라자바트연구소 솜키앗 뽕빠이분 말 마따나, 탁신 시나와트라 총리는 집권 1년8개월 만에 타이 사회 전체를 쥐락펴락하며 정치도 경제도 군도 심지어 언론도 모조리 ‘탁신주식회사’에 편입시키면서 제왕 같은 존재로 우뚝 섰다. 결국 탁신이 말끝마다 외친 ‘CEO정치’의 진면목은 이렇게 독점적 정치행태로 드러났다.
“부자라서 정치할 수 없다고 가난한 이들 심정을 내가 잘 알고 있는데도” 지난해 1월 총선 하루 전날 만난 기자에게 ‘불쾌감’을 숨기지 않은 탁신은 ‘한 마을당 100만바트(약 3천만원) 지원’, ‘30바트(9백원) 의료혜택’ 같은 솔깃한 선거공약들을 내걸고 전체 500석 가운데 249석을 차지한 뒤, 곧장 중·소규모 정당들을 흡수해 340석에 이르는 공룡여당을 건설했다. 그 결과 68% 의석의 탁신 정부는 더 이상 밀고 당기는 협상이나 주고받는 대화 같은 전통적 정치술에 의존할 까닭이 없어졌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케케묵은 이 말을 무슨 대발견이나 대철학이라도 되는 양 외쳐온 지식인들과 중산층이 환상에 빠져 탁신식 포퓰리즘- 이걸 대중영합주의쯤으로 불러도 좋겠고- 에 마비돼가는 동안 “변화도 원칙을 따라가야 한다”는 매우 원론적 비판마저 새나오지 않았다. 물론 우연이 아니었다. 탁신이 언론장악에 심혈을 기울인 탓이었다.
“탁신이 언론쪽에 직격탄을 날린 건 계획한 독점정치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우본랏 시리유와삭 교수(출라롱콘대학 방송학)의 말처럼 탁신은 정권을 잡자마자 노골적으로 언론장악을 시도했고, 한편으로는 ‘말 많은 놈들 길들이기’에 나섰다. 타이 최대 갑부 탁신을 정치적 발판으로 삼아 온 시나와트라 그룹을 앞세워 하나밖에 없는 독립방송인 를 사들였고, 이에 반발하며 눈물로 뉴스편집 독립권을 요구한 방송인들을 줄줄이 잘라내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CEO정치가 탁신은 그렇게 언론 사유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1년 넘게 끈 방송인 투쟁은 법원이 ‘복직결정’ 최종판결을 내렸음에도 아직 사주쪽에서는 아무런 대꾸조차 없다.
언론 길들이기 넘어 군부 장악의 손길
“짐이 곧 법이로다.” 이 껄렁한 초헌법적 경구가 “탁신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신화로 둔갑해 동남아시아 민주주의를 대표한다는 타이 사회에서 지금 통하고 있는 셈이다.
나머지 모든 방송 채널은 정부와 군이 주인 노릇을 하는 구조니 새삼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남은 건 신문인데, 그 동네도 화를 입긴 마찬가지였다. 일간 <네이션> 편집장 수티차이 윤을 비롯해 탁신 정권에 비판적이던 5개 언론사 14명 언론인들과 그 가족들 개인통장이 쥐도 새도 모르게 조사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탁신이 벌이는 무차별 언론 공세에 외신도 피해갈 수 없었다. 탁신에게 비판적인 홍콩발 <파 이스튼 이코노믹 리뷰>는 특파원 추방명령을 받아 한동안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런던발 <이코노미스트>는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어느 신문 가릴 것 없이 탁신을 겨냥한 기사나 논설들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각 신문들은 알아서 기었고, 방송들은 아예 탁신 입으로 전락해버렸다.
재갈 물린 언론을 같잖게 내려다보며 “내가 한 10년은 더 총리를 할 수 있다”고 말한 탁신은 지난 10월 초 개각과 군 인사로 거침없이 나아갈 ‘멋진 신세계’를 향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새 얼굴을 훑어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국가 이익보다는 개인 이익에 맞춘 개각이고 군 인사였다”고 통탄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개각에서는 전문성보다 부리기 쉬운 충성파들과 또 사업 관계에 있는 벗들을 본격적으로 기용하며 족벌주의 성격을 강화했고, 타이락타이당 권력 중매인 사노 티엔통 고문의 부인 우라이완을 문화장관에 임명해 정치적 보상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군 인사는 군 특수성 탓에 시민들이 깊이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치더라도, 비교적 정보 접근이 손쉬운 개각을 놓고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원성이 높았다.
“이대로 가다간 탁신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내각을 차지해버릴 수도 있는데….” 커피숍을 경영하는 솜분 같은 이들은 탁신 부인 포자만이 이번 개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까지 거론하며 불만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타이 사회 전체를 주름잡는 ‘탁신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이제 타이 운명을 가늠하는 중대한 화두로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군인독재정치가 한물간 대신 돈줄을 쥔 이들이 자본독재정치를 해나가는 추세다.” 타이에서 유일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 꼽는 지 웅파콘 교수(출라롱콘대학 정치학)는 촌스럽게 총 들고 독재하던 시대가 간 대신 돈맛을 본 군인들이 자본가 밑으로 기어드는 시대로 현재를 진단했다. 웅파콘에 따르면, 탁신 현상 정체는 포퓰리즘을 바탕에 깔고 자신의 자본축적을 위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지독한 타이식 민족주의를 적절히 활용해나가는 매우 영리한 구조를 지녔다.
실제로 탁신은 대외 경제분야에서 줄기차게 ‘아시아’를 외치는 동안에도 버마 노동자 유입문제 같은 사안이 걸리면 등뒤로 ‘타이’를 외치며 민족주의 기운을 부추기곤 했다.
“전 민주당 정부와 현 타이락타이 정부는 정책이나 부정부패 같은 걸 놓고 보면 전혀 다를 바가 없지만,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를 꼽으라면 현 정부가 지닌 영악한 세련미고 그 출처는 포퓰리즘이다.”
그러나 88%의 지지…
기본적 인권 상황마저 여전히 취약한 상태인데도 노동자와 시민을 포함한 조사에서 88%에 이르는 이들이 탁신을 신뢰한다고 했다니, 가히 ‘유령’ 부활을 외치고도 남을 만한 기운이다. 수없이 명멸해간 포퓰리즘 유령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타이에서 부활한 것이다!
지금 타이 시민들은 탁신이 2년 뒤쯤 있을 차기총선에서 다시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벌써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방콕=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태국 민주주의 역사의 발전으로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는 우리나라나 태국이나 어려운 모양입니다....
“계획대로다. 일당 독점체제 구축해가는 한 과정으로.”
7년 전부터 탁신 족벌체제를 연구해온 우크리스트 빳마난드(출라롱콘대학 부설 아시아연구소)는 지난 10월 초 개각과 군 인사를 놓고 “처음부터 그렇게 출발했는데, 이제 와서 왜 놀랄 일이냐”고 되물었다.
그 항변 “부자라서 정치할 수 없다고?”
“이제 남은 건 예산을 주무르는 일뿐이다.” 라자바트연구소 솜키앗 뽕빠이분 말 마따나, 탁신 시나와트라 총리는 집권 1년8개월 만에 타이 사회 전체를 쥐락펴락하며 정치도 경제도 군도 심지어 언론도 모조리 ‘탁신주식회사’에 편입시키면서 제왕 같은 존재로 우뚝 섰다. 결국 탁신이 말끝마다 외친 ‘CEO정치’의 진면목은 이렇게 독점적 정치행태로 드러났다.
“부자라서 정치할 수 없다고 가난한 이들 심정을 내가 잘 알고 있는데도” 지난해 1월 총선 하루 전날 만난 기자에게 ‘불쾌감’을 숨기지 않은 탁신은 ‘한 마을당 100만바트(약 3천만원) 지원’, ‘30바트(9백원) 의료혜택’ 같은 솔깃한 선거공약들을 내걸고 전체 500석 가운데 249석을 차지한 뒤, 곧장 중·소규모 정당들을 흡수해 340석에 이르는 공룡여당을 건설했다. 그 결과 68% 의석의 탁신 정부는 더 이상 밀고 당기는 협상이나 주고받는 대화 같은 전통적 정치술에 의존할 까닭이 없어졌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케케묵은 이 말을 무슨 대발견이나 대철학이라도 되는 양 외쳐온 지식인들과 중산층이 환상에 빠져 탁신식 포퓰리즘- 이걸 대중영합주의쯤으로 불러도 좋겠고- 에 마비돼가는 동안 “변화도 원칙을 따라가야 한다”는 매우 원론적 비판마저 새나오지 않았다. 물론 우연이 아니었다. 탁신이 언론장악에 심혈을 기울인 탓이었다.
“탁신이 언론쪽에 직격탄을 날린 건 계획한 독점정치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우본랏 시리유와삭 교수(출라롱콘대학 방송학)의 말처럼 탁신은 정권을 잡자마자 노골적으로 언론장악을 시도했고, 한편으로는 ‘말 많은 놈들 길들이기’에 나섰다. 타이 최대 갑부 탁신을 정치적 발판으로 삼아 온 시나와트라 그룹을 앞세워 하나밖에 없는 독립방송인 를 사들였고, 이에 반발하며 눈물로 뉴스편집 독립권을 요구한 방송인들을 줄줄이 잘라내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CEO정치가 탁신은 그렇게 언론 사유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1년 넘게 끈 방송인 투쟁은 법원이 ‘복직결정’ 최종판결을 내렸음에도 아직 사주쪽에서는 아무런 대꾸조차 없다.
언론 길들이기 넘어 군부 장악의 손길
“짐이 곧 법이로다.” 이 껄렁한 초헌법적 경구가 “탁신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신화로 둔갑해 동남아시아 민주주의를 대표한다는 타이 사회에서 지금 통하고 있는 셈이다.
나머지 모든 방송 채널은 정부와 군이 주인 노릇을 하는 구조니 새삼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남은 건 신문인데, 그 동네도 화를 입긴 마찬가지였다. 일간 <네이션> 편집장 수티차이 윤을 비롯해 탁신 정권에 비판적이던 5개 언론사 14명 언론인들과 그 가족들 개인통장이 쥐도 새도 모르게 조사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탁신이 벌이는 무차별 언론 공세에 외신도 피해갈 수 없었다. 탁신에게 비판적인 홍콩발 <파 이스튼 이코노믹 리뷰>는 특파원 추방명령을 받아 한동안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런던발 <이코노미스트>는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어느 신문 가릴 것 없이 탁신을 겨냥한 기사나 논설들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각 신문들은 알아서 기었고, 방송들은 아예 탁신 입으로 전락해버렸다.
재갈 물린 언론을 같잖게 내려다보며 “내가 한 10년은 더 총리를 할 수 있다”고 말한 탁신은 지난 10월 초 개각과 군 인사로 거침없이 나아갈 ‘멋진 신세계’를 향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새 얼굴을 훑어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국가 이익보다는 개인 이익에 맞춘 개각이고 군 인사였다”고 통탄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개각에서는 전문성보다 부리기 쉬운 충성파들과 또 사업 관계에 있는 벗들을 본격적으로 기용하며 족벌주의 성격을 강화했고, 타이락타이당 권력 중매인 사노 티엔통 고문의 부인 우라이완을 문화장관에 임명해 정치적 보상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군 인사는 군 특수성 탓에 시민들이 깊이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치더라도, 비교적 정보 접근이 손쉬운 개각을 놓고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원성이 높았다.
“이대로 가다간 탁신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내각을 차지해버릴 수도 있는데….” 커피숍을 경영하는 솜분 같은 이들은 탁신 부인 포자만이 이번 개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까지 거론하며 불만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타이 사회 전체를 주름잡는 ‘탁신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이제 타이 운명을 가늠하는 중대한 화두로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군인독재정치가 한물간 대신 돈줄을 쥔 이들이 자본독재정치를 해나가는 추세다.” 타이에서 유일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 꼽는 지 웅파콘 교수(출라롱콘대학 정치학)는 촌스럽게 총 들고 독재하던 시대가 간 대신 돈맛을 본 군인들이 자본가 밑으로 기어드는 시대로 현재를 진단했다. 웅파콘에 따르면, 탁신 현상 정체는 포퓰리즘을 바탕에 깔고 자신의 자본축적을 위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지독한 타이식 민족주의를 적절히 활용해나가는 매우 영리한 구조를 지녔다.
실제로 탁신은 대외 경제분야에서 줄기차게 ‘아시아’를 외치는 동안에도 버마 노동자 유입문제 같은 사안이 걸리면 등뒤로 ‘타이’를 외치며 민족주의 기운을 부추기곤 했다.
“전 민주당 정부와 현 타이락타이 정부는 정책이나 부정부패 같은 걸 놓고 보면 전혀 다를 바가 없지만,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를 꼽으라면 현 정부가 지닌 영악한 세련미고 그 출처는 포퓰리즘이다.”
그러나 88%의 지지…
기본적 인권 상황마저 여전히 취약한 상태인데도 노동자와 시민을 포함한 조사에서 88%에 이르는 이들이 탁신을 신뢰한다고 했다니, 가히 ‘유령’ 부활을 외치고도 남을 만한 기운이다. 수없이 명멸해간 포퓰리즘 유령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타이에서 부활한 것이다!
지금 타이 시민들은 탁신이 2년 뒤쯤 있을 차기총선에서 다시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벌써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방콕=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태국 민주주의 역사의 발전으로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는 우리나라나 태국이나 어려운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