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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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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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만찬

오늘도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새벽부터 인력 시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상민이 경기 침체로 인해
공사장 일을 못한지 벌써 넉달,
인력시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가랑비 속을 서성이다
쓴 기침 같은 절망을 안고
뿔뿔이 흩어 졌습니다.

상민의 아내는 지난달부터
시내에 있는 큰 음식점으로 일을 다니며
상민 대신 힘겹게 가게를 꾸려 나갑니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한 초라한 밥상에서
상민은 죄스러운 한숨만 내 뱉었고,
그런 자신이 싫어서 오늘도 거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고 상민은
오후에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목이 긴 작업신발 속에 발을 밀어 넣으면
빠져 나올수 없는 어둠을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주인집 여자를 만날까봐
발소리 조차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벌써 여러 달째 밀려 있는 집세를
생각하면 어느새 고개숙인
난쟁이가 되어 버립니다.

저녁 즈음에 오랜 친구를 만나
일자리를 부탁했습니다.
친구는 일자리 대신
삼겹살에 소주를 샀습니다.
술에 취해, 고달픈 삶에 취해
산동네 언덕길을 오를때 야윈 그의
얼굴위로 떨어지던 무수한 별빛들.....

집앞 골목을 들어서니 귀여운 딸아이가
그에게로 달려와 안겼습니다.
" 아빠, 엄마가 오늘 고기 사왔어
아빠오면 해먹는다고
아까부터 아빠 기다렸단 말이야".

일을 나갔던 아내는 늦은 시간부터
저녁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 사장님이 애들 갖다주라고
이렇게 고기를 싸주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준이가 며칠 전부터
고기 반찬 해달라고 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 집세도 못내면서 고기 냄새
풍기면 주인 볼 낯이 없잖아".
"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지금에야 저녁 준비한거에요.
열한시 넘었으니까 다들 주무시겠죠뭐."

불고기 앞에서 아이들의 입은
꽃잎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내는 행복했습니다.
" 천천히들 먹어, 잘자리에 체할까 겁난다."
" 엄마. 내일 또 불고기 해줘, 알았지 ?
" 내일은 안되고 엄마가 다음에 또해줄게
우리 준이가 고기 먹고 싶었구나 ?
" 응 ".
아내는 어린 아들을 달래며
상민 쪽으로 고기 몇점을 옮겨 놓았습니다.
" 당신도 어서 드세요 ".
" 응 ",난 아까 친구 만나서 저녁 먹었어
당신 배고프겠다, 어서 먹어".
상민은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고기 몇점을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와 달빛이
내려앉은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습니다.
가엾은 아내........
아내가 가져온 고기는 음식점
주인이 준게 아니었습니다.
숫기없는 아내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쟁반의 고기를 비닐 봉지에
서둘러 담았을 것입니다.

아내가 구워준 고기속에는
누군가 씹던 껌이 노란 종이에
싸인채 섞여 있었습니다.
아내가 볼까봐 상민은
얼른 그것을 집어서 삼켜 버렸습니다.
아픈 마음을 꼭꼭 감추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착한 아내의 마음이 찢어질까봐....

힘들수록 가정은 소중합니다,
그속에는 사랑이 꽃피며
좌절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용기를 딛고
일어설수 있는 자 만이
가족의 애절한 사랑을 ...
꿈을 키울수 있습니다.
6 Comments
잘살기를 2008.01.22 23:1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ㄳ
하로동선 2008.01.22 23:58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글입니다. 꼭 20년 전이네요. 제가 쉐라톤워커힐에서 내려오면 강변도로와 만나는 길목의 [아리랑]이라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그 시절만 해도 자장면이 700원. 돈까스가 2000원 이었는데 그 집에서 가장 싼 돌솥비빔밥이 5천원이었죠. 거기서 일 하면서 저는 손님들이 먹다남기고 간 해물탕이나 장어구이 뭐 이런 것들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누가 보지 않을까 주위를 살피면서요... 요즘 대학생들 같으면 그런 건 안 먹겠죠? 내가 나중에 언젠가는 이 집에 손님으로 오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지금 그 가게는 없어졌습니다. 가게 자리는 그대로인데 업종이 달라졌죠.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었습니다. 88년은 그 유명한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인데, 그 시절에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꽤 있었나봅니다.
월야광랑 2008.01.23 08:09  
  어려운 살림일수록 어쩌면 가족간의 사랑과 행복지수는 증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ㅠ.ㅠ
midi 2008.01.23 10:26  
  실화라면 가슴이 미어터지는 일이군요.
이분 가정에 행운과 행복이 곳 찾아들거에요.

yui 2008.01.23 13:31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 많이 있습니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 보아도...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제자리 걸음인 사람들...
우린 정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로동선 2008.01.24 00:11  
  어려운 살림에도 가족간의 사랑지수는 높을수도 있겠지만 행복지수가 높을수는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가난은 현실이거든요. 참 지긋지긋하죠... 전 가끔씩 혼자 엉뚱한 상상을 하고 스스로 몸서리를 치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바로 제가 제 자식들을 그 옛날의 내 모습으로 내가 살던 환경에서 살게되는 겁니다. 정말 악몽이죠.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말하고 나니까 꼭 딴죽거는거 같네요. 그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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