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뭘해도 재미가 없어요
전 벌써부터 예전보다 감동이 많이 줄었단 생각이 들어서 좀 섭섭합니다
(늙은걸 확인하는 것 같아서요 뷁 ㅡ.ㅡ)
사실, 이런 생각 든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이미 7,8년 전부터 그러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첫 경험과 추억으로 먹고 사는 동물인가 봅니다
제 나이 일곱 살..
그것도 한겨울에 아빠가 오빠랑 저를 밀탑 빵집에 데려가 사주었던
그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아직도 강렬하게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또, 아는 부잣집 지인의 집(사실은 약간은 심리적으로 거리감 있는 친척집 ^^;;)에서
여름철 내내 수영을 하고..
해외에서 온(미국, 유럽) 교포 아이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아이들과 간단한 영어 몇 마디를 건네며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요 바로 위에 언급한 지인을
이십대초반 파릇한 어느날 압구정동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따라가게 되었던..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 되고만 <고몽>이란 레스토랑도 기억이 납니다
맨날 꼭 한번더 다시 가봐야지..가봐야지.. 하고는 다시는 못간 곳 입니다
그곳에 가서 들었던 생각은..
아 부자란 이런 것 이구나..
물질이 주는 포만감, 편안함, 안락함, 안정감이란 이런 것일 테구나.. 란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제 부자 지인이 아닌..
저와 비슷한 형편의 고만고만한 사람과 그곳을 방문했었다면..
아마 그때의 그런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겠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이후 해외 등지에서 더욱 좋은 곳을 많이 가봤지만..
그때 그 기억에 비할 바가 못되더군요)
제 지인과,
그 예의바르고 예리하고 예민한 느낌의 레스토랑 사장은..
이미 예전부터 잘아는 사이여서인지..
다른 고객과 다르게 더욱 친밀하고 정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게다가 식사를 마치고 나니 돈을 안 받으려고까지 하더라구요
(컥! 나중에 알고보니.. 가난한 서민의 입장인 저로써는
그때당시 식사값이 어마어마 했다는걸 알고 조금 놀랐다는 후문이 ㅎㅎ)
사실은 오줌도 마렵지 않으면서
괜히 화장실에 가서 손도 씻어보고..
변기 물도 내려보고 하며..
화장실에서나마 주변을 두리번 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아놔 이런 촌닭 ㅋㅋㅋ ^^;)
그 사람들에겐 그것이 그저 일상적인 일이었겠지만..
또 저는 당시에..
사촌오빠가 그런 곳에 절 데려가 줘서 정말 고마웠다는 표현조차 제대로 못했었지만..
그런 추억을 안겨준 그 지인(사촌오빠)에게 아직도 마음속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ㅎㅎ 이 글 읽으시는 많은 여러분들이
에잇 <고몽> 그깟것 하고 저를 비웃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
아무튼 십 여 년도 훨씬 전에..
어리고 순진했던(?) 저에겐 분명 럭셔리한 경험이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네요.
또,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
김포공항에서 BA(브리티쉬 에어)를 타고 해외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그 시절엔 어쩌면 그리도 김포 공항이 크고 멋있게만 보였었는지..
머리 노랗고 눈동자가 파란 사람들에게 왜 그리 약코(?)가 죽어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지…ㅋㅋㅋ
별 것 아닌 기내식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신기하고 맛있었는지..
그 긴긴 시간 내내 잠도 안자고..
음료랑, 틈틈히 챙겨주는 간식, 기내식까지..
하나도 안 빼먹고 눈을 *부릅*뜨고 챙겨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하 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땐 정말로 촌스러웠습니다
게다가 항공사에서 챙겨주는 양말, 수면안대, 칫솔, 여권보관지갑 등등을
아까워서 사용도 못하고 몇 년 동안 고이 보관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생애 처음으로 런던 공항에 내렸을 때의 그 느낌.. 그 냄새, 그 분위기..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하늘, 공항 자체의 거대함..
또 여러 인종이 주는 현란한 혼란스러움 등등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저는 그때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입국장에서는(그냥 패키지 여행객이라 질문은 간단했지만)
몇 가지 질문까지 받았습니다
질문 몇 가지에도 저는 마냥 신기하고 재밋었습니다
그 첫 패키지 여행 이후..
저는 더욱 간뎅이가 부어, 그 이후부터는 아예 배낭여행의 길로 들어서버린 것이지요.
두 번째 홍콩 여행에서
별로 잘 생기진 않았지만, 영국 특유의 억양과
(영국에서 유학한 홍콩 사람이었습니다)
특유의 매너로 중무장한..
결국엔 그 멋진 마음가짐에 뻑(?)이 가고야 마는.. ㅎㅎ
그런 남자를 두번째 여행 중에 만나 제 평생토록 간직할 추억을 만들기도 했었지요
전 그때 왜 그렇게 영어를 못했을까요..(지금도 별반 나아진 건 없습니다만 ^^;)
제가 다시 그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더라면 제 인생은 지금 어떻게 되어있을까요..
그 사람이 제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제가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을 주었더라면..
저는 이후로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확실한것은, 저는 당시 너무도 어렸고.. 너무도 겁쟁이였습니다.(지금은 더욱 그러하구요)
그렇게 첫번째 두번째 여행도 강렬했으나..
세 번째 태국, 앙코르왓 여행도 저에게 무척이나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그런 문화적 충격과 감동이
다음 미래에도 내내 동반될 것이라 착각하고 살아온건지도 모릅니다.
세 번에 걸친 해외여행 이후 발병한 <후천성 여행 결핍증>
저는 (일년에 두 세번) 직장생활하며 벌어놓은 피 같은 돈들을 해외여행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니면 여행이 일상이 되어 버려서인가…..
이제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별다른 감흥이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곧 떨어지거나 폭파되어 죽을 것 같은 공포 때문에..
(저는 제가 봐도 좀 미친년 같습니다.
난기류만 만나면 미친년처럼 꽥꽥 되는 광년이라니..ㅡ.ㅡ)
또 이코노미 클래스 특유의,
마치 닭장 속에 갇힌..
잡아 먹히기 위해 사육되는 가축 같은 느낌이 드는..
이코노믹 증후군 등등의 이유 때문에.. 이젠 그저 장시간의 비행이 끔찍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이제는 제 나이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놓고 추파를 던지는 중동계 70대 노인네..
인도계 50대 배불뚝이 중년들이 던지는 추파가 귀찮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행지에 도착 하면 아무도 저의 인간적인 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뭐 제가 지금 관심 못 받아 환장해서 이런 소리 하는 건 아니구요 ^^)
사람들은 이제..그저 제가 챙겨 줄 두둑한 팁에만 지대한 관심이 있는 듯 하더군요
한번은.. 어느 중국계 남자 접대부로 보이는 이십 대 초반 꽃 미남이..
혹시 밤에 당신 숙소에 찾아가도 되냐며..
원래는 4천 밧트 인데 특별 할인해서 2천 밧트에 스페셜로 모시겠다며
저를 사람이 아닌 돈 보따리 보듯 하는 시선으로 유혹한 일도 있었습니다
흐흐흐 젠장..덴장................................
몇 년 전부터는 저에게 이상한 증세도 생겼습니다
사박 오일로 짧게 간 여행임에도 불구,
이틀 정도만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또다시 새로운 세상으로의 여행을 꿈꾸고..
왜 그곳(여행지)에서 좀더 알찬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후회할 것이 불 보듯 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바야흐로.. 안정감 있는 정착이 미덕인 나이가 된 것 입니다.
여행, 폭넓은 인간관계, 옷과 가방.. 등등은
이제 더 이상 저에게 별다른 감흥을 안겨주지 못합니다.
그런 기대와, 흥분, 설레임 대신..
제게 찾아온 것이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안정감 입니다.
맛으로 검증된 오래된 집을 가끔씩 방문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헤메는 거.. 이젠 귀찮아서 못 하겠어요)
제가 아주 가끔 실수로 맛있게 만들어 내는 음식들이 좋고
매일매일 마셔도 전혀 질리지 않는 악마의 땀 같은 커피가 좋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책들이 좋고
웃을 일 없는 저를 웃게 만들어 주는 <무한도전> <지붕 뚫고 하이킥>이 좋고
제 재미없는 인생과 달리 다이나믹한 삶을 짧게나마 대신 살아주는 드라마가 좋고
집안을 나만의 작은 추억들로(사진액자) 채우고 꾸미는 것이 좋고
삼각김밥 싸서 음악 들으며 거니는 <?xml:namespace prefix = st1 />양재천 나들이가 좋고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저 집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상상하며 산책 다니는..
그런 잔잔한 일상들이 좋기만 합니다.
통장 잔고는 얼마 안되지만,
그럼에도 저는 젊은 시절 그렇게 돌아 다닌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그 시절이 아니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감동을 내 안에 새길 수 있었으니까요
사람은 자고로 젊을 때 다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어르신들 가장 안타까운 점이 그것입니다
젊어서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손은 갈퀴가 되도록 평생을 사시다가
정작 연세 드셔서 해외에 나가시면 체력도 체력이거니와..
한국에서 생각 하던 그대로의 행동을 많이 내비치기도 하시고
아무리 신기하고 좋은 것이라 해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주변 상황들이 맞지 않는다 생각되면
별다른 감동이나 감흥이 없는 것이 그 연령대 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자식이 해외여행 보내준 것 자체가 고맙고
이웃에게 그런 자식 자랑하는 것 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것이
우리네 보통(서민)의 아버지 어머니 들이겠지요.
그런 (해외여행)기회가 없으셨던 부모님께는,
그들의 생각에 맞추어..
해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맞춰 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참고로 저는 엄마한테 좀 더 특별하고 사치스러운 기분을 만끽해 드리려는 의미에서
방콕 오리엔탈 호텔 애프터눈 티를 맛보여 드리려 그곳에 모셔갔는데..
엄마의 반응은 ‘돈 많이 쳐 들여서 이게 뭐하는 짓’ 이냐는 의미로
자리에 앉아 계시는 내내 얼굴이 뚱해 있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놓고선 좋은 호텔에서 주무시는 것에는 꽤 만족해 하시더군요 ^^)
그래서 제가 마음 풀어드리려..
쏜통포차나에 모시고 들어가
새우,굴,게 등 해산물을 한상 가득 쌓아놓고 드시게 했더니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그것보다 엄마가 더 좋아하신 일은..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기껏해야 5밧 10밧 짜리 싸디 싼 과일을 잔뜩 사 드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카오산 어느 길거리에서..
5밧 짜리 파인애플을 한입 가득 베어 물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때.. 그때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그 살아있는 밝은 표정들은 제 사진 앨범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돈을 좀 모아서 안정된 느낌의 생활을 잘 지켜 내고 영위해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과거 값진 추억을 가진 대신,
제 미래엔 산동네 차갑고 후미진 쪽방 에서 살아가는 독거노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아닌지…
요즘 뒤늦게야 그런 불안들이 엄습해 오곤 합니다.
사십 대를 코 앞에 둔 지금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어떻게 불혹이란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혹은 대수롭지들 않게 여기는 것일까..
혹은 그 자체에 괜히 너무 많은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려 드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아무래도 결혼하셔서 자녀까지 있으신 분들의 생각은 좀 더 다양할 수도..
아니면 너무나 살아가는 자체에 정신이 없어, 이런저런 생각조차 할 여유조차 없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해를 마감한 지금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재미로 살고 계십니까.
(제가 여행 사이트에서 너무도 당연한 질문을 한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