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nia 의 고딩시절에는......
어젯밤 태사랑에 올라있는 예전 글들을 쭉 읽어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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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주제들을 둘러싸고 토론이나 말다툼한 글들도 많았는데 그런 글들은 더 유익하고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
어느 분이 담배를 끊은 경험이 있는 분 있으면 조언을 해 달다는 글을 올리신 걸 보고 마침 경험담을 써 놓은 것이 있어 잊어먹기 전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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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대 배경이기도 한 이 해엔 나와 우리나라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 아, 참. 여기서는 우리나라 이야기 중 일부는 생략 할랍니다. 대한민국방으로 이사가기 위해 보따리를 싸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해가 이 해군요. (고 1 인데 좀 이른가요?) 이 나쁜 습관은 내가 담배를 끊은 2003 년까지 무려 25 년 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담배를 끊게 된 계기가 좀 색다릅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 하기 전에 이 에피소드부터 잠깐 소개합니다.
끊으려고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뜯은 담뱃갑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걸 모른 채 다른 옷들과 함께 세탁기를 돌린 것 입니다.
엉망이 된 옷가지에서 담배 피스들을 일일이 제거하고 다시 라운드리를 마치는 데 세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젖은 상태에서는 담배 피스들을 제거할 수 없어 우선 dryer에 넣고 한 시간쯤 돌려 완전히 말리기부터 해야 했습니다.
열이 머리 끝까지 뻗친 나는 카튼에 남은 담배 나머지 일곱 갑을 들고 나가 길거리에 있는 어느 홈리스(노숙자) 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당시 담배 일곱 갑이면 70 불쯤 했을 겁니다. 여기 담배 비싸거든요.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내 돈으로 담배를 사지 않겠다고.
그 날부터 지금까지 7 년 이상 담배를 입에 대 본 적이 없습니다. 끊은 것 맞지요?
누구나 그런 건진 모르지만 나는 고딩 시절 추억이 가장 생생하고 즐겁습니다.
우리는 토요일 마다 담배연기 자욱한 학교 앞 튀김 집 골방에서 소주를 마셔가며 쩜 십 짜리 고스톱을 쳤습니다. 막판에는 언제나 ‘섯다’나 ‘짓고 땡’으로 돌렸지요.
한 번은 내가 주동이 되어 여러 명과 어울려 당시 주변이 허허벌판이었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쳐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혹시 그 해 봄에 말썽이 됐던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에 항의하기 위해서 간 것 아니냐구요?
그건 아니고 거기 사는 탤런트 정윤희 씨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지요.
몇 번 갔는데 경비 아저씨에게 쫓겨 난 다음부터는 가지 않았습니다.
대학가요제와 해변가요제에서 주옥 같은 가요들이 쏟아져 나온 해도 1978 년 입니다. (아, 지금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있는 영 사운드의 ‘등불’은 이 해에 나온 노래는 아닌데, 이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노래 중 하나입니다). 1978 년 이전에는 통기타 아니면 남진 나훈아 풍이나 트로트가 주류였습니다.
대통령님이 거의 모든 인기가수들과 작곡가들을 잡아들이고 그들의 노래를 방송금지 시키는 바람에 참 들을 노래가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당시 대통령님은 키가 작고 까무잡잡했는데, 늘 쓸쓸하고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하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비슷한 인상이 갑자기 잘 안 떠 오르는데…… 아, 영화 ‘색계’의 남자주인공이 그 분의 전체적인 인상과 비슷한 것 같군요. 만주국 정보기관의 리장군역으로 나온...... 양조위던가요?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두 주인공의 마지막 정사장면이 아니라, 스파이로 판명된 애인을 사살하는 서류에 서명을 할 때 그의 가라앉은 눈망울에 살짝 비친 이슬이랍니다 *
어쨌든 그 때 그 대통령님이 가수들을 무대에서 쫓아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많은 데 저는 그냥 이렇게 이해합니다.
예술적 소양이 뛰어난 분답게 자기가 손수 ‘새마을 노래’를 작사 작곡했는데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새마을 노래는 안 부르고 대중가요를 더 좋아하는 것에 몹시 서운하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 심정 이해한답니다^^
암튼 그래서 대학가요제와 해변가요제에서 좋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까지는 주로 CM Song (commercial music)이 대중가요 역할을 대신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CM Song 타이틀 매치는 주로 정윤희를 모델로 내세운 해태와 서미경(후에 서승희로 개명)을 모델로 내세운 롯데의 각축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고 멜로디가 좋은 CM Song 가사 몇 개만 소개해 드립니다.
‘멕시코 치클처럼 부드럽게 말해요. 롯데껌 처럼 향기롭게 웃어요
쥬시 후레쉬-후레쉬 민트-스피아민트- 롯데껌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뭔가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카시아 껌”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오란씨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오란씨 오란씨 파인
꿈을 꿨어요 포니 포니 갖고 싶어요 포니 포니
아름다운 포니 포니 나의 사랑 포니 포니
현대 포-니 포니
가사들이 참 순박하고 직설적이지요?
포니는……
현대자동차(지금의 현대차)가 단군이래 처음 제작했다는 대한민국산 자동차 이름입니다.
그 때 어리긴 했지만 제 기억이 맞다면 1976 년 이었을 겁니다.
당시 시판가격이 한 200 만 원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150 원이었고 요새는 4000 원쯤 하나요?
그렇다면 그 때는 제너시스 값을 내야 엑센트 (베르나?) 라도 몰고 다닐 수 있었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