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벌써 2 년 가까이 전 일이네요.
물론 저는 말로만 들었던 촛불시위 때 이야기예요. (여기가 대한민국방 이었다면 촛불시위가 아닌 ‘촛불항쟁’이라고 했겠지만 여기서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할게요)
아시는 분은 알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겠지만 그 때 한 대학생이 이런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反촛불 홀로시위를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도 용서 못했던 조승희를 용서한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그 팻말을 처음 봤을 때 좀 어리둥절했었어요.
순간적으로 ‘조승희가 누구지’ 했던 거죠.
약 1 초 뒤에야 그 조승희가 버지니아텍 총기난사사건의 주역 그 조승희 라는 것을 떠 올리고 약간 어이 없어 했던 적이 있어요.
왜 어이없어 했는지 이유는 말 안 할래요.
그 이유를 여기서 설명하면 저 대한민국방으로 이사가야 하거든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말하자면 적(?)의 심장부 한복판에서 혼자 팻말을 들고 비를 맞으며 오돌오돌 떨고 있는 학생을 보고 저는 동문회 게시판과 제 친구들이 많이 활동하는 어느 단체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어요.
거꾸로든 바로든 역사란 용기와 비판의식을 겸비한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져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처음 하는 얘긴데 나는 ‘묵묵히 자기 맡은 일만 충실히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말은 별로 믿지 않는 편입니다.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사람들, 흩어져 있는 에너지와 상호교감을 조직하고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일단 지금까지 정리한 생각을 과감한 공개발언과 행동을 통해 검증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새 세상을 열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한국 사회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끔은 배가 산으로 올라 갈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역동성이 지난 20 년 간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일단 이X진 씨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품성의 바탕은 싹수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
그랬더니 한국에서 막 국제전화가 오더라고요.
한 후배는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형, 노망났소?”
나는 별 말 한 것도 없는데…… 나는 그저 수 십만 군중 속에서 맞아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 자기 할 말을 하며 서 있는 모습을 한 번쯤은 칭찬해 주고 싶어서 “품성의 바탕은 싹수가 있어 보인다” 는 글을 올린 것뿐 인데……
그 때 저는 대한민국에서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결코 그 품성의 바탕에 싹수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우리 또래가 아닌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오래 전에는 제게 우리 세대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어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시대감각이 뛰어나고 진보적인 동지의식으로 가장 오랜 세월에 걸쳐 연대하고 있는 특이하고 명민한 또래집단’
그런데 요새는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개별주제에 대해 명쾌한 논리와 설명을 담보하고 있더라도 사고가 경직되고 배타적이어서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진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아,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바로 며칠 전에 이 게시판에도 올린 적이 있는 ‘아랑 전설 이야기’
한국에 있는 어느 목사님이 (이 분이 나중에 제게 사과는 하셨음) 자기는 그게 진짜 인 줄 알았다며 막 언짢아 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 천안함 침몰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때 인데 만우절이라도 농담은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요.
속아서 화가 났다는 건지, 아니면 천안함 침몰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데 낫살이나 먹은 작자가 그런 장난을 쳐서 화가 났다는 건지는 잘 구분이 안 갔는데, 어쨌든 그 분에게는 좀 대차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대꾸를 해 주었어요.
농담은 수위조절의 문제고 제가 올린 글은 농담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우절 장르를 빌려서 한 것 뿐이라는 것을 이미 이야기 했다고.
어떤 경우에도 삶의 일상이 정지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극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일어나는 거고 삶의 한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개인 개인이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건 당연한 인지상정이지만 '집단 분위기'를 조성해 무엇을 자제하라고 하는 요구에는 절대로!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 분의 말씀 중 제가 진짜 동의 할 수 없었던 부분은 “온 국민이 슬픔이 빠져 있으니 농담을 자제해 달라”는 말씀이었어요.
이 말은 상식적으로 온당한 것 같지만 지극히 위험한 함정을 내포하고 있는 경직된 집단사고를 강요하고 있는 말이거든요.
농담을 자제해 달라는 말속에 감춰진 판도라의 뚜껑을 열어보면 자제할 사항이 농담 뿐만이 아니라 수 백 가지도 넘을 것이고, 슬픔에 잠겨 있다는 온 국민이 해야 할 단체행동이 '자제' 뿐 만이 아니라 역시 수 천 가지로 번식해 나갈지도 몰라요.
전체주의의 비극은 이렇게 그럴듯해 보이는 상식을 면밀한 검증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마냥 고개를 끄덕 끄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위에 열거한 두 분 (제 후배님과 어느 목사님)의 교조적이거나 경직된 사고의 사례는 그 분들만의 책임은 아닌 것 같아요.
세상을 혼자 통달한 척, 마음이 넓은 척, 예의 바른 척하며 똥 밟은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토론 주제의 핵심을 중심으로 필요한 이야기만 간결한 문장으로 할 줄 아는 능력이 참 중요한데 불행하게도 우리 40 대 이상은 이런 훈련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저 일방적인 지시사항 아니면 전달사항만 주고 받았지 토론이라는 걸 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이견에 대한 존중이라든가 상대에 대한 배려같은 것을 교육받을 기회역시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한 예로 요즘 처지가 참 곤란해 진 어느 교육자께서는 옛날에 교장 선생님을 할 때 교직원들이 발언하고 토론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상명하달 군사문화의 전형’이었다고 하지요.
학생들은 오다가다 교사나 교직원을 마주칠 때마다 군대식으로 구호를 붙이며 거수경례를 하도록 강요받았구요.
그 학교 경례구호가 ‘성!실!’ 이었던 모양인데 조회시간마다 일부 ‘개념 있는’ 학생들은 거수경례를 할 때 ‘실!성!’ 하고 외쳤다네요.
제 친구 이야긴데 그 학교 출신이 하는 말이니 사실일 거예요.
이런 문화에서 자라 온 세대니 어떤 때는 가마떼기처럼 아무 말 못하고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 어떤 때는 욕설과 고함을 지르며 싸움박질을 벌이기 일쑤이지요.
‘싸움’을 말로 하는 법을 배운 적이 극히 적으니까.
그러니 저나 앞에서 예를 든 그 분들이나 경직의 편린들이 남아 있을 수 밖에요.
제가 요 며칠전 어느 댓글에서 태사랑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 건 인사가 아니라 진담 이예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미담만 있는 건 아니고 때로는 싸울 수도 있는 것이죠.
문제는 어떻게 싸우느냐 하는 것인데……
어느 분의 여행기에서, 정중하지만 시비조의 댓글들을 놀라울 정도로 멋지게 순화시켜 넘기거나, 심지어 어느 두 분이 개인적인 문제로 심각한 언쟁을 하면서도 차분하게 선을 넘지 않는 예절을 보여 준 사례는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정치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공세적인 언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면 (심지어 여행기에서 조차) 사과드리구요.
앞으론 조심할게요~
저는 앞으로 말은 아주 조금씩만 하고 (사실 별로 말을 많이 한 것도 없지만) 많이 들으려고 한답니다^^
태국 시위 중 돌아가신 시민과 군경 유가족 여러분께 조의를 표 합니다.
(태국말로 쓰고 싶은데 까막눈이라 쓸 도리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