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차 몰고 록키산맥을 넘어보니......
가라앉은 기분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예약된 도요다 캠리를 취소하고 기아에서 만든 소형차를 선택한 건.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소노스톰이 몰려오고 있다는 일기예보가 나오는 바람에 기분이 좀 그랬거든요.
4 월 말에, 그것도 하필 출발하는 날 대설경보라니...... 염병.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부터 확인. 산에는 여전히 대설경보가 내려져 있었고, 에드먼턴에는 차가운 봄비가 내리고 있네요.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그러나 대설경보 따윈 sarnia 님에게 별 문제가 안 돼요. 길만 막히지 않았다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어요. 생수 두 병 커피 한 컵, 그리고 300 곡 정도 저장돼 있는 iPod 만 있으면 행복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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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어요. Soul 을 만나게 된 건.
렌트회사 카운터에서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무심코 밖으로 시선을 던졌는데, 한 쪽 구석에 주차해 있는 Kia Soul 이 눈에 들어왔어요. 거기서 찬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몹시 슬퍼 보였다고나 할까요.
Budget 주차장에는 도요다 캠리가 나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는데요. 너무 모범생이어서 따분한 차이기도 한 캠리보다는 갑자기 한 번도 운전해 본 적이 없는 Soul 을 몰고 록키산맥을 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더라고요.
직원에게 물었죠.
“저 차 로 바꿀 수 없을까요?”
원래 내가 예약한 차종이 중형차 (intermediate) 였던 만큼 같은 돈을 내고 소형차로 down-grade 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뭐 중형차나 소형차나 렌트가격은 별 차이없지만......
Soul 은 작았어요. 디자인도 생소했고요. 옛날 옛적에 내가 어릴 때 퍼블리카 라는 아주 public 하게 생긴 차가 있었는데 딱 그걸 닮았네요.
대설경보? 아나 떡이라고 하세요. 록키를 넘는 동안 눈 오는거라곤 구경조차 못 했는데...... 15-30 cm 가량의 폭설이 예상된다더니 햇님까지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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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을 보는 순간 이런 느낌이 떠 올랐어요.
한국산 자동차 외장 디자인의 과감한 변화에 대한 경이로움 같은 거.
Soul 의 디자인 컨셉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앙증맞음과 방정맞음, 그리고 깜찍스러움과 체신머리 없음, 이 네 가지 개념의 '지평융합'인데, 어쨌든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지루하게 생긴 한국차' 라는 고정 이미지를 바꾸어 줄 만 한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Soul 라디오에 연결한 내 iPod 에서 이런 노래가 흘러 나오네요. ㅎㅎ
‘차~ 가 있었네.
작은 차가 있었네.
아주 작은 차가 있었네.
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작은 차로는......
떠~날 수 없네
멀리 떠 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밴쿠버 가는 길은 거대한 험산준령 두 개를 넘어야 하는 편도 1200 km 의 머나 먼 여정. 나는 이 먼 길을 그 날 단 하루에 주파해야 했어요. 유람여행이 아니라 일이 있어 간 거거든요.
참, 여행기 비슷한 거 자주 올리니까 sarnia 님이 베짱이처럼 맨 날 놀러만 다니는 줄 아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밴쿠버에 가는 목적은 밴쿠버 사는 누나와 함께 own 하고 있는 비즈니스를 상의하기 위해서예요. 매년 한국에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일종의 '생계형 여행자'인 셈이지요.
sarnia 님은 '돈도 남아 돌고 시간은 더 남아 돌고 희망은 쥐뿔도 없고 자살율은 디게 높은, 그런 불행한(?) 계층'에 속한 사람이 절대 아니랍니다.
Anyway, 게다가 그 날 에디슨-재스퍼-롭슨을 잇는 약 300 km 구간에는 대설경보와 함께 ‘possible extremely dangerous driving condition’ 이라는 RCMP (캐나다 연방경찰)의 무시무시한 경고가 나온 상황이었구요.
정확하기로 이름난 캐나다 일기예보 오늘 대박났군요. 그 대설경보를 믿고 사람들이 록키 산악도로 통과를 포기하는 바람에 sarnia 님 혼자 롭슨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그 바람에 Soul 님은 친구가 없어 심심해 하는 것 같군요. 외로워서 불쌍해 보이는 my Soul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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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경우라면 당연히 여행을 포기했거나 자기가 다루는데 좀 더 익숙한 차량을 선택했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았어요. 익숙하기는 커녕 이름도 생소하고 성능도 검증되지 않은 차를 그냥 처음 운전해 보고 싶다는 충동으로 선택한거예요. 모범생 캠리를 미련없이 차 버리고요.
왜 그랬느냐고요?
나는...... sarnia 님이니까요.
컨트롤 레이아웃은 무난한 편이예요. 헌데 보통 장거리 운전할 때 한 손을 steering wheel 아랫부분에 살짝 걸치고 가는 나에게 손 얹을 공간이 없는 T 자형은 좀 불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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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렌트할 때의 평소 버릇대로 Soul 의 차대번호(VIN)부터 확인했어요. 17 개로 구성된 차대번호 중 고유번호인 마지막 여섯 자리를 빼고 나머지 열 한 개는 그 차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지요. 우선 열 번 째 자리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A’는 이 차의 연식이 2010 년이라는 걸 말해주고요.
장거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체크포인트 중 하나가 cruise control, 즉 자동순항장치예요.
보통 고속도로 (freeway) 에 접어들면 제한속도+ 10 % - 3km를 입력하지요. 도처에 짱박혀 있는 경찰 또는 속도측정 몰래카메라가 봐 주는 초과속도범위가 + 10 % 예요. 이걸 grace limit 이라고 하죠.
근데 이 grace limit 에서 3 km를 빼고 입력하는 이유는 내리막길에서의 속도오차를 고려한 것이죠. 110 km가 제한속도라면 보통 118 km 정도에다 setup 해요.
~지금 창 밖엔 비가 내리죠. 그대와 난 또 이렇게 둘이고요~
심심한 sarnia 님과 외로운 Soul 님 은 이렇게 친구가 되어 빗길을 마냥 달려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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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이 몹시 방정맞아 보였던 my Soul.
그러나 그 방정맞은 Soul 의 자동순항장치는 놀라운 기능을 발휘해 주었어요. 속도오차범위가 0 에 가깝더라고요. 이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SUV는 아니지만 차체가 높아 (high profile) 시계도 좋고 좌석 포지션도 편안했어요. 다만 고급차가 아니라 그런지 seat 의 감촉은 약간 저렴한 느낌이 들더군요.
도로소음(road noise)과 바람소리(wind noise)가 비슷한 크기의 차종인 도요다 메이트릭스나 닛산 센트라 해치백보다 좀 심한 편이었지만 핸들링, 특히 커브길에서의 차체 안정감은 작은 차 치곤 별로 나무랄 데가 없는 거 같았어요.
Hinton 과 Kamloops 간 552 km 구간에서는 연비를 측정해 보았어요. 이 구간은 산악지대와 평지가 반반씩이예요. 따라서 자동순항장치 사용과 수동운전을 번갈아 했어요. 연비측정하기엔 안성맞춤인 구간인 셈이지요.
38 리터(가솔린)를 소비했군요. 리터당 14.626 km를 달린 셈이네요. 연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편이군요. 다만 연비란 그 때마다의 도로사정 운전자의 운전태도 등에 따라 차이가 나니까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어요.
첫 번 째 관문인 록키산맥을 무사히 돌파한 Soul.
캐나다 하이웨이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 그건 졸음과의 끝없는 투쟁이예요.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만큼은 평소 마시지 않는 스타벅스 '탕약' 과 어몬드 초콜릿으로 무장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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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진짜 어려운 두 번 째 관문을 통과해 볼까요?
록키산맥보다는 Kamloops 와 밴쿠버 사이의 코스트산맥을 넘는 코크할라 하이웨이가 은근히 자동차 잡는 힘든 도로죠. 보기에는 멀쩡하게 잘 닦여진 4 차선 고속도로지만 '똥차들의 무덤' 으로 이름난 곳이예요. 사고도 잦고요. 고속도로 양쪽 입구에는 '날씨 경고판'이 설치돼 있는데 이 경고판의 엠버등이 번쩍거리고 있으면 운전자들은 바짝 긴장해야 해요.
록키산맥을 넘는 길이 대개 계곡을 따라 나 있는데 반해, 코크할라 하이웨이는-한국사람들은 코코할라 하이웨이라고 부름^^- 급경사를 이루며 산의 8 부능선까지 올라가요.
게다가 거리가 무려 20 km 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200 km 정도의 구간에 걸쳐 번갈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똥차는 이 freeway 대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계곡으로 나 있는 canyon highway를 따라가거나 과일농장과 와인제조지를 따라 나 있는 97 번 highway 로 돌아가는 게 안전하다고 해요.
이 두 길이 경치는 훨씬 좋아요. 시간여유가 있는 여행자들은 똥차든 새차든 코크할라보다는 계곡길이나 과일농장길을 선택하는 경로를 추천하고 싶어요.
자. 이 죽음의 freeway 에서 my Soul 이 어떻게 활약하는지 기대해 볼까요.
텅 빈 좌측차선을 놔두고 우측 차선으로 쏜살같이 추월하고 있는 저 아지매는 누구죠?
우리는 지금 총 길이 19 km 에 달하는 급경사를 내려가고 있는 중 이예요. 맨 우측 차선은 에어브레이크의 저정 에어를 모두 소모한 대형트럭이 run away lane 으로 피난할 수 있도록 마련된 비상차선인데요.
그러고 보니 현대로고가 선명하게 박혀있는 저 차는...... 빌려 타려다가 거절당한 우리 와이프 차와 같은 거네......흠. 저 재수없는......
...... 근데. 허락없이 남의 차 번호판 나오게 사진 올리는 거 범죄 아닌가요?
쳇, 돋보기 쓰고 잘 보세요. 모자이크 처리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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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룹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코크할라 하이웨이의 악명높은 첫 오르막길이 시작되었어요. 자동순항속도 120 km 에 입력해 놓고 지켜 보았죠. 처음 약 5 분 간은 2800 RPM을 유지하다가 얼마 못가 숨찬 소리를 내며 4000 RPM 으로 헉헉거리기 시작하더군요.
캠룸스에서 보통 17 도를 오르내리던 외기온도가 코크할라 하이웨이 정상 부근에 오르자 0 도 까지 떨어졌어요. 밖에는 눈이 내리는데 조심해야 하는 건 눈 보다도 freezing rain 이예요. 속도를 90 km 까지 줄이고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어요. 이 사진은 돌아 올 때 찍은 건데 갈 때도 마찬가지 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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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전한 Soul 은 배기량 2.0 리터에 142 마력. Heated seat 을 포함해 모든 사양을 다 갖추고 있는 모델이었어요.
차체중량이 얼마나 되는지 제원을 확인해 보지는 않았는데 6 % 정도의 오르막 길에서 가속력이 기대에는 미치치 못하는군요. 110 에서 130 까지 도달하는 반응속도는 보통인데 RPM 이 너무 올라가는 것 같아요. 오르막길에서의 추월 가속력은...... 흠 낙제는 아니고 d+ 정도로 일단 패스.
다음 날 밴쿠버 시내의 어느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Soul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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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턴을 출발한 지 13 시간. 밴쿠버 현지시간 오후 9 시, sarnia 님과 Soul 님은 밴쿠버 프레이저 강 위를 달리는 포트맨스 브릿지를 건너 갔어요. 서쪽 하늘에는 아직 붉은 여명이 남아 있네요.
대한민국 대표선수 KIA Soul 오늘 수고했어요.
Good Nig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