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자의 슬픈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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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자의 슬픈 상상

이런이름 0 296
종이장처럼 얇게 썰은 차돌박이를 불판에서 구워서 디핑소스에 담갔다가 입에 넣는다. 너무 과하지 않은 불향이 입 속에서 감돌고 쇠기름의 고소함이 혓바닥 위로 철퍼덕하고 내려앉는다. 얌전하게 씹어 본다. 한번 한번 씹을 때마다 변하는 변화를 느껴보고자 했던 건데 질긴 듯 하면서도 야들야들한 식감에 농락당해 연이어 몇 번을 더 씹게 된다.

"맛있다!"

이번에는 참기름소금장을 찍어 입에 넣어 본다. 엄청난 기세로 전장을 뒤덮는 소설 속의 영웅처럼 참기름향이 입 속을 통채로 지배한다. 두어 번을 씹고 나서야 참기름향에 가려져 있던 차돌박이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참기름과 차돌박이, 서로 다른 두 개의 고소함이 어우러질 때 살짝 탄 듯한 살코기의 맛이 불향을 안고 쭈뼛쭈뼛 다가온다. 기름이 중첩되어 살짝 느끼할 지경이였는데 살코기는 비계와는 또다른 씹는 감각을 더해준다. 아마도 소금이 고소함과 느끼함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게 조율을 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맛있다."

찢은 상추와 파채 위에 간장드레싱을 끼얹은 채소무침을 조금 집어 입 속으로 넣어 본다. 드레싱에 들어있는 식초의 새콤함으로 인해 까슬까슬한 새 샤워타올로 목욕을 하고 나와 두툼한 목면수건으로 물기를 막 닦아낸 듯한 상쾌함이 입 속에 생겨난다.

"처음 먹는 것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겠는걸."

불판 위에서 잘 구워진 마늘을 양념된장에 찍어 씹어 본다. 마늘향도 없고 알싸한 맛도 없다. 찐 듯 구운 듯한 식감에 된장이 주는 구수함이 살짝 얹혀진다. 마늘 몇 개를 더 집어 디핑소스에도 찍어 먹어보고 참기름소금장에도 찍어 먹어보고 그냥도 먹어 본다.

"앞으로는 밤 대신에 마늘을 구워 먹을까?"

밥을 작게 떠서 입 속에 넣어 본다. 그리고 천천히 꼭꼭 씹는다. 익숙하다. 부드럽다. 달다. 밥은 참 겸손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며 차돌박이 한 점을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입에 넣고 밥과 같이 씹는다. 밥 때문인지 느끼함이 훨씬 덜하다. 그럼에도 땅 속에 묻어 두었던 독에서 갓 꺼내 썰은 시원한 김장김치 한 쪽이 정말 아쉽다. 아쉬운대로 무생채나물을 한 젓가락 집어 든다. 입 안에서는 단맛, 짠맛, 고소한맛, 매운맛이 일렁거리며 섞여져 간다.

"역시 밥이 주는 편안함이란..." 

우거지된장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다. 푹 삶은 후에 한 입에 들어가기 좋게 듬성듬성 썰은 배추잎과 덜 으깨져서 같이 떠진 메주콩 반쪽. 소고기다시다를 넣었는지 달달하다. 다시다를 넣었으면 어떻고 미원을 넣었으면 또 어떠랴. 한 숟가락을 더 떠먹는다.

"구수하다."

내침 김에 폭탄계란찜도 먹어 본다. 차왕무시의 부드러움은 개나 줘버리라지. 약간 성긴 듯하게 씹히는 질감이 오히려 만족스럽다. 저 뚝배기 안의 계란찜을 얼추 다 먹으면 밥을 조금 넣고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젓가락을 다시 불판 위로 가져간다.

"아!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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