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공동묘지에 가서 혼자 있어보니......
오늘은 집 근처에 있는 public cemetery 에 다녀왔습니다. 거기 아는 사람이 묻혀 있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 해질 녘쯤 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무덤들 한 가운데 있는 벤치에 앉아있다 오곤 합니다.
묘지가는 길. 가장 가까운 cemetry 는 집에서 5 분거리에 있답니다.
저는 공동묘지에 가면 왠지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 앉습니다. 공원묘지라고도 부르지요. 요새는 밤 11 시가 넘어야 해가 지니까 공원묘지에서 어둠을 맞기는 쉽지 않은 계절 같습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일반적인 종교유산 중의 하나가 ‘죽음’을 ‘삶’과 대립되는 부정적인 개념으로만 천착시켰다는 점일 것 입니다. 죽음도 삶도 어둠도 빛도 모두 자연의 한 부분일 텐데요. 도대체 인간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걸까요?
공간적 개념으로서의 천당이나 극락, 또는 어떤 사람의 육체적 부활이나 재림 같은 종교적 위안을 위한 도구들이 오히려, -다시말해- 거꾸로 죽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부채질하고 죽음을 더 두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말이지요.
지난 겨울에 읽은 도마복음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제가 그동안 기독교를 참 잘못 알아 왔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4 복음서가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담긴 드라마의 시나리오라면 도마복음은 그 시나리오를 받치고 있는 진짜 귀중한 더큐 자료가 아닐까 합니다. 예수라는 사람의 어록이니까요. 근데 이런 걸 다 아는 기독교 안의 먹물들은 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까요? 왜??
묘지 이야기하다가 왜 또 산으로 가는거지? 그만 하지요. (참, 도마복음이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도 계실텐데...... 1945 년 이집트의 나그함마디라는 곳에서 발견된 초기 기독교와 관련된 문서랍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서인데...... 많은 기독교 교회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문서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전 뭐, 무식해서 자세한 건 모르지만......)
캐나다의 공원묘지는 변두리에 멀찌감치 처박혀 있지 않습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심지어 번화가 바로 옆에 조성돼 있습니다. 소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밤낮 비석을 마주봐야 하는 주택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그 집들이 다른 집들에 비해 집값이 싸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싸기는커녕 앞이 푸른 초장으로 탁 트여있어 더 비쌀지도 모릅니다.
근데 오렌지색 셔츠에 까만 팬츠를 입고 조깅을 하고 있는 저 여자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걸까요. 깜짝 놀라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묘지 입구인데...... 젠장 제 차가 찍혔네요. 구름이 너무 이뻐서 한 번 각도를 잡아봤는데 사진 나온 걸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풍경도 좋고 날씨도 좋고 사진사 실력도 출중한데 카메라가 후지구나......
제 카메라 후지 맞네요.파인픽스 뭔가하는 200 불 짜리 (300 불이었나?)
이번에는 밴쿠버 묘지에 가 볼까요? 토요일이었는데 공항이 한적합니다. 에드먼튼 국제공항은 언제나 주말보다는 주중이 더 붐비는 것 같습니다. 밴쿠버로 고고씽~~
역시 밴쿠버는 사는 사람도 죽은 사람도 중국계가 압도적이군요.
Tony 는 27 세에 죽었네요. 병사했는지 아니면 사고로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비석에 새겨진 문구가 인상적이라 오랫동안 서 있었습니다.
두 개의 하트 안에 들어있는 ‘아빠’ ‘엄마’ 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토니야 너를 엄마 아빠 가슴속에 묻을께’ 라는 문구는 먼저 간 자식에 대한 마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중국사람은 무슨 사연으로 마흔 셋에 홀연히 떠난 걸까요? 좀 더 있다가 가도 되는데......
Canadian goose 는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원래 스타벅스 커피 안 마시는데 밴쿠버 숙소 부근에는 스타벅스 뿐이군요. 그렇다고 커피 사러 다시 차 몰고 몇 킬로미터를 나갈 수도 없고……
스타벅스 커피는 정말 제 취향 아닌 거 같아요.
암튼 여러분도 시간 나시면 해질녘쯤 공동묘지에 가서 명상에 잠겨보세요. 기분이 아주 좋아진답니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내일 아침 축구보려면 일찍 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