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 만한 일을 찾을 수 있다면......
저는 예전에 기자(記者)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출입처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홍보담당자가 전달해 주는 보도자료나 대충 훑어보다가 통밥을 굴려 만들어낸 소설을 덧붙여 자판을 두들기는 couch potatoes journalist 들을 연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편견이었습니다.
어제는 일요일 오전에 늘 가는 스타벅스가 딸려 있는 Chapter’s 서점에서 Kevin Carter의 biography를 읽다가 이런 의문이 떠 올랐습니다. 사실 그때 처음 떠 올랐던 의문은 아니고 아주 예전부터, 그러니까 sarnia 가 20 대 시절일 무렵부터 가져왔던 궁금함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만을 찾아 다니며 목숨을 건 촬영활동을 하고 있는 photojournalist 들에게 그토록 강력한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프로의 매력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점이 바로 그것 입니다.
‘목숨을 건’ 이라는 말은 분쟁지역 photojournalist 들의 활약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되는 것 같습니다. Photojournalist 들은 일반 취재기자들과는 달리,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보다 더 위험한 현장, 가장 아슬아슬한 포지션에서 무겁고 복잡한 촬영장비를 조작하면서 역사의 한 맥을 상징하는 극적인 모습을 프레임에 담아내기 위해 자기 생명을 담보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너무나 유명해진 사진 속의 그 주인공들이 아니라 그 순간을 프레임에 담아낸 photojurnalist 들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싶습니다.
Kevin Carter의 유명한 사진 ‘A Sudanese Girl and Vulture’는 이 사진이 New York Times에 의해 전 세계에 타전 되자마자 그 어떤 명교수들의 명강의들을 합친 것보다도 전쟁과 기아 문제에 대한 위력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시체를 뜯어먹는 습성을 가진 아프리카 독수리가 등 뒤에서 노리는 이 가사상태의 소녀를 보는 순간 이 30 대 사진작가는 고국 남아공에 남겨두고 온, 그 소녀와 비슷한 또래의 자기 딸을 생각하고 가슴이 미어졌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비통함을 삼키면서 차분하게 카메라 장비를 설치하고 독수리가 날갯짓을 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좀 더 기다렸습니다. 사진촬영을 끝내고 독수리를 쫓아낸 뒤 소녀를 구조할 때까지 약 20 여 분이야말로 프로 photojournalist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말 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Kevin 은 남아공에서 인종분리정책이 시행되던 시절부터 photojournalist 그룸인 Bang Bang Club에서 활동하며 인종분쟁의 현장을 누비기도 합니다. 흑인지역인 Bophuthatswana 지역에서 전투중 부상당한 백인인종분리주의자 (AWB 멤버)들을 지역 경찰이 현장에서 사살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은 1994 년 3 월 촬영했습니다. 사진 맨 왼쪽에 무뤂을 끓고 앉아 목숨을 구걸하는 저 백인 사내는 Kevin 의 카메라 셔터가 눌러진 직후 발사된 총에 맞아 즉사합니다.
1968 년 음력 1 월 1 일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의 해방민족전선과 연합하여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을 비롯한 미군거점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무력공격을 감행합니다. 이 전투에서 미군측에서 약 5 천 여명, 북베트남군과 해방민족전선측에서 약 4 만 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합니다.
사진은 이 전투 중 체포돼 해병대원들에 의해 연행 중이던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의 간부Nguyễn Văn Lém 를 당시 남베트남군 육군준장이자 국립경찰 책임자였던 Nguyễn Ngọc Loan이 불러 세워놓고 불문곡직 권총으로 사살하는 그 순간을 잡은 것 입니다. 촬영기자는 AP 통신 Edward Adams 입니다. Edward는 한국전 때 미군 해병대 군인으로서 전투장면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병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의 주인공 총잡이 구엔 능옥 씨는 미국으로 망명한 뒤 슈퍼마켓과 피자가게 등을 경영하다가 1998 년 7 월 14 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Burke 라는 도시에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Nguy%E1%BB%85n_Ng%E1%BB%8Dc_Loan
또 다른 사진은 ‘네이팜 소녀’ 입니다. 얼마 전 구엔님의 베트남 이야기 (대한민국방)에 제가 댓글로 올린 적이 있었던 작품입니다.
이 사진기자는 당시 스물 한 살의 나이로 AP 통신 소속 분쟁지역 사진기자 활동을 하고 있었던 동남아 출신 Nick Ut 입니다. Nick은 이 사진을 찍을 당시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과 미-월 연합군간의 치열한 지상전이 전개되고 있던 Trang Bang 마을에서 그야말로 목숨을 건 취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2 년 6 월 어느 날, 미국-남베트남 연합군은 별 전과가 없는 지상전대신 아예 이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청야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합니다. 곧바로 남베트남 공군소속 A-1 스카이 레이더기 한 대가 이 소녀가 살고 있던 Trang Bang 마을 상공에 투입됩니다. 이 비행기는 마을 상공을 저공비행하며 네이팜판을 투하했습니다. 순식간에 마을은 불바다가 됐고 당시 이 소녀는 두 어린 동생의 처참한 죽음을 뒤로 한 채 전신화상을 입고 마을을 탈출합니다. 사진기자 Nick 은 촬영 후 곧바로 중화상으로 끔찍한 모습으로 기진해 있는 이 소녀를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합니다. 전신 중화상을 입은 채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가던 소녀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네이팜 소녀 Kim Phuc은 현재 47 세의 중년부인이 되었습니다. 두 자녀의 어머니이자 반전평화운동가로 활동하며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살고 있고, 올해 59 세가 된 Nick Ut은 아직도 AP통신 사진기자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3 년 전 무슨 사건으로 패리스 힐튼이 LAPD 닭장차에 실려 법원으로 호송되는 장면을 담은 이 사진 아래 AP 통신 사진기자 Nick Ut 의 이름이 보입니다.
이 두 장의 사진 (각각 1969 년, 1973 년 퓰리처상 수상작)은 베트남전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미 등을 돌린 세계여론에다 베트남전 확전의 결정적인 명분이었던 이른바 제 2 차 통킹만 사건 (미 해군 구축함 매독스호가 북베트남 해군 어뢰정의 어뢰공격을 받았다는 스토리)이 미국 군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었다는 것이 New York Times에 의해 폭로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미국 행정부는 1973 년 1 월 북베트남 정부와 파리협정을 맺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어 1975 년 4 월 30 일 사이공주재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철수작전을 엄호하던 미 해병대원들을 실은 마지막 헬리콥터가 이륙함으로써 전쟁은 완전히 끝이 나게 됩니다.
한 장의 사진으로 역사를 바꾼 photojournalist 들의 작품들 속에는, 진실의 순간들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내 놓을만한 ‘행복한 직업’에 대한 패션과 사랑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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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해(1994 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kevin Carter......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진실의 순간들'을 프레임에 담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하는 photojournalist 들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