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롱 "김대홍"님 이야기
아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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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9 20:27
작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에 갑자기 태국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잠롱 형님이 죽었어.”
“어? 왜..언제..어떻게..?”그의 죽음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에 한번에 여러 질문을 나왔지요.
“몰라 쓰러져 죽었대.”
………….
그러고 푸켓에 들어와 보니 직원이 잠롱이 죽었다는 내용이 적힌 팩스를 건네주었는데요..
그 팩스를 보는 순간 쓰러진 형님에겐 미안했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는지 몰랐습니다.
이유인 즉슨 푸켓 한인회에서는 영사 업무,경조사등의 알림 사항이 있을때마다 각 업소로 팩스로 알려주는데 “잠롱이 쓰러져 와칠라 병원에 입원했으니 병문안을 가거나 도움을 부탁한다”는 내용을 울 직원이 쓰러져 죽었다고 잘못 이해를 한 것이였으니까요..
그래도 죽지 않아서,살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그 사실을 알고도 이래 저래 병문안은 커녕 퇴원한 이후에도 집에 한번 들리지 못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이래 저래 병문안은 커녕 퇴원한 이후에도 집에 한번 들리지 못하였습니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얼마전에 아내랑 같이 집을 찾아가 한 시간 정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답니다.
이야기가 좀 그슬러 올라가면 지금부터 15년 정도 전.즉 제가 푸켓에 처음 들어온게 96년 중반인데요.아내의 회사 신입 가이드로 잠롱 형님이 들어오면서 서로 안면을 터게 되어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정을 쌓았더랬지요.
그런 세월이 자그마치 15년이였으니 아무리 외국에서 살아도 정이 들대로 들었다고 봐야겠지요.
그 당시 우린 어디 근사한데,혹은 불건전한데(?)를 찾아가지 않고 고기나,해산물등을 사다가 집앞 마당에서 숯불을 피워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식사도 하면서,술도 한잔하는게 대부분이였는데요.그런 일들은 자연스레 형님과 나,형수와 저의 아내,그리고 아이들끼리도 정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답니다.
그게 좋은 시간이였고 늘 그리운 추억이 되었더군요.
뇌경색으로 쓰러져 전신이 아닌 신체의 왼쪽 절반의 신경이 마비되어 거동도 재대로 하지 못한채 휠체어에 앉아 찾아줄 이를 기다리는 그는 몸이 아픈것보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더 무섭다며 시간되는대로 놀러오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게 좋은 시간이였고 늘 그리운 추억이 되었더군요.
뇌경색으로 쓰러져 전신이 아닌 신체의 왼쪽 절반의 신경이 마비되어 거동도 재대로 하지 못한채 휠체어에 앉아 찾아줄 이를 기다리는 그는 몸이 아픈것보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더 무섭다며 시간되는대로 놀러오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미리 형수님과 통화하여 집에 재워둔 삼겹살,시골에서 어머님께서 담궈주신 깻잎 절임등등을 가지고 잠롱 형님 마당에서 오랫만에 숯불을 피워 긴 시간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네요.
형님은 막걸리 한잔 하셨구요.저희는 쌩쏨 한잔했습니다.
쓰러진 형님을 죽었다고 오보를 한 회사 직원 “욷”씨도 함께 했습니다.
잠롱님은 2월초에 재활 치료를 위해 한국을 들어가신다고 하네요.
모쪼록 몸은 불편하지만 건강한 정신을 가진 잠롱 형님께서 얼른 쾌차하셔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바른 소리도 하고,이일 저일 참견하면서 잘난체도 하는 모습도 보고 싶네요.
더불어 오래된 태사랑의 열성 회원이던 잠롱님께서 얼런 쾌차를 하여 열심히 싸이트에서 놀 수 있는 모습도 그려봅니다.
잠롱님의 빠른 “건강 쾌차”를 기원해주세요.
잠롱님의 빠른 “건강 쾌차”를 기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