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
혜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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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4 02:12
기분이 꿀꿀해서 그냥 반말로 쓰겠습니다
태국이랑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긁적거릴 데가 없어서요.. 죄송..
그냥 패스하셔도 됩니다 -.-;;
나는 고향이 대구이고, 대학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해서.. 이제는 그럭저럭 주변 사람들한테 능력을 인정받고 사는 노처녀이다.
설연휴에 부모님 모시고 2박3일 제주도에 갔다가 좀전에 집에 도착했다
태국에 가고싶었지만.. 프로젝트 진행중이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그대신 뀡대신 닭이라고.. 오래 전부터 한번 가고 싶었던 신라호텔을 예약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혼자 방 쓸려니 남는 침대 하나가 아깝다는 생각에.. 최근 몇년간 명절마다 태국 놀러가느라 고향에 안간 것을 만회(?)도 할겸 부모님과 같이 가기로 했다 -.-;
그러다 보니..
수페리어에서 디럭스로 방을 업그레이드 해야했고,
조식도 추가해야했고,
대구-제주 비행기 표도 끊어드려야 했고
나는 호텔에서 시체놀이 스타일이니 공항버스 왕복티켓이면 충분하지만 부모님은 안그러시니까 차를 렌트해야 했고,
초행길이고 연휴 내내 날씨도 안좋다니 혹시 무슨 일 생길까봐 자차보험인가 full로 들고.. 등등..
먹는 것까지해서 3명이 2박3일 여행하는데 200만원 넘게 들었다 ㅠㅠ
(면세점에서 엄마 화장품 사드린 거랑, 여자가 나이 들면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데 혹시 엄마가 호텔에서 기죽을까봐 1월 첫주에 미리 서울 오시라고 해서 현대백화점에서 쇼핑한 것은 제외)
그런데..
조식부페 먹으면서.. 수영장에서.. 프라이빗 비치하우스에서..
젊은 부부들, 특히 30대나 40대 초반의 가장을 둔 가족들이 너무 부러웠다
특히 형제나 남매들이 3-4팀씩 가족동반해서 온 집들은 정말 부러웠다
나는 내 능력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왔지만, 이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부모를 만났길래, 돈을 얼마나 많이 벌길래, 설에 이렇게 가족들이 때거지로 여행을 왔을까..(돈이 얼만데.. -.-;;)
나는 저 나이때 부모님 집 사드리고(항상 따뜻한 물이 나오는 아파트에 살게 해드리고 싶었다), 매달 생활비 보내드리고, 유학간 동생 학비 보내느라(그러나 5년 넘게 뒷바라지한 보람도 없이 실패한 유학이었다ㅠㅠ) 여행 같은건 아예 상상도 못하고 살았는데..
노부부 단둘이 여행온 것을 봐도 참 부러웠다
(자식들은 부모님 남겨두고 더 좋은데 갔는지 모르겠지만) 저분들은 당신들 돈으로 오셨겠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호텔에 묵을 만큼 경제력이 있으신 거겠지?
(얼굴이나 옷차림을 보면, 특히 대화 몇마디 주워들으면 답이 금방 나온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저정도의 경제력이 있었다면..
아니 저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남들이랑 비슷한 정도만 됐었다면..
아마 나는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결혼해서..
애낳고.. 가끔 남편한테 바가지도 긁으며.. 아파트 평수 늘리는 재미도 맛보며..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을텐데..
사실 내꿈은 현모양처였는데 이제는.. 도저히 이룰수없는 꿈이 되어 버렸다
당신이 가진 능력보다 훨씬 더 잘살아온 우리 아빠..
한번도 엄마한테 생활비를 준적이 없으시다
당신 월급은 그냥 혼자 용돈으로 다 쓰셨다
생활비는 커녕 엄마한테 돈 타쓰는 것도 학창시절에 여러번 봤다..
우리 아빠는 왜 다른 아빠랑 다를까.. 그게 철 든 후로 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젊어서는 장남만 편애하는 어머니 덕에, 결혼해서는 황소처럼 일 열심히 하는 마누라 덕에, 늙어서는 능력있는 딸 덕에..
평생 그렇게.. 당신이 가진 능력보다 휠씬.. 눈에 힘주고, 자유롭게 살아오셨다
그랬는데 지금은 나이 들어서(70 넘은지가 벌써 몇년전) 귀도 잘 안들리고, 녹내장도 있다고 하고, 치근이 안좋아서 그 좋아하시는 회도 잘 못드시고, 행동도 느릿느릿..
그래도 그정도인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한라산 중턱을 다른 차들은 다들 옆으로 빠져서 체인 감느라고 난리들인데 엔진브레이크를 이용해서 무사히 공항까지 운전하신 베스트 드라이버이긴 하다 ㅎㅎ..
암튼 고혈압, 당뇨 없으시고 이제껏 큰병이나 수술같은것 받으신적 한번도 없으시니.. 참 다행이다
만약 혹시라도 그런 일 생기면 병원비는 다 내 몫이다 ㅠㅠ
이만한 것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아빠를 보면, 특이 이번에 며칠 같이 지내다보니.. 아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자꾸 화가 났다
어째서 마음에 두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건지..
우리 엄마는 왜 저런 남자를 택해서 평생 고생만 한건지..
그와중에도 아빠 눈치보고, 시중들고 하는걸보니 엄마한테도 화가 났다
오래 전부터 했던 생각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그래서인지..
나는 능력없는 남자를 혐오한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도 능력없는 사람은 남편감으로 싫다
근데 내 또래에 나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available한 싱글 남자는 정말 드믈다
돌싱이라도 그정도 능력있다면 젊은 여자 데리고 살겠지.. 나 같아도 그러겠다 ㅋㅋ..
사랑도 좋지만.. 내가 데리고 살아야 하는 남자라면 노 땡큐다
지금도 혼자 충분히 잘 살고, 부모님 부양 잘하고, 노후준비도 잘 하고있다
감정에 휩쓸려서 어물게 혹(?) 하나 달고는, 이제까지 했던 고생을 또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구질구질하게.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벌벌 떨며 살기 싫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미래를 충분히 예측하고, 준비할수 있지만 남편이라는 미지수가 나타나서 나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때.. "사랑(내지는 남편이라는 존재)"과 "안정적인, 약간은 여유있는 미래"를 둘다 가질수는 없을것 같다
그러면 둘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나는 미련없이 전자를 포기하겠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공항으로 마중 나오는 사람도 없고, 불 꺼진 빈 집에 혼자 들어가야겠지만 그래도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작년에 결혼한 친구가,
너는 고양이 과니까 혼자 얼마든지 잘 살수있지만 나는 개 과라서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해..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동의한다..
이 밤은 약간 쓸쓸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기분을 간혹 느끼겠지만 그래도 나는 잘 살아갈 것이다
뜬금없이 책 제목이 생각나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내용은 기억 안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나는 그 작가를 싫어한다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것이고..(이 대사의 주인공은 좋아한다 ㅋㅋ)
신라호텔 스파는 차마 손 떨려서 지르지 못했지만 내일은 오랜만에 타이마사지나 받으러 가야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