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방콕 체류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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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방콕 체류기-3

필리핀 2 394


도시 문명은 거대한 강과 함께 번창한다. 서울이 한강을 끼고 있듯이 방콕에는 짜오프라야강이 있다. 방콕의 이태원 카오산로드에서 짜오프라야강으로 걸어가는 길에 공원이 하나 있다.

그 공원에는 작은 사당과 한때 요새로 사용했던 파수멘이 있다. 파수멘에는 구식 대포가 아직도 남아 있다. 공원 곳곳에는 반얀트리가 넓은 그늘 드리우고 있으며 그 아래 여기저기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잔디밭에서는 봉체조를 하는 현지인과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요가를 하는 서양 여행자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나는 아침마다 그 공원에서 조깅을 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원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곤 한다.

공원 한 켠은 짜오프라야강과 닿아 있다. 조깅을 하다 지치면 잠시 강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힌다. 짜오프라야강 위로는 각양각색의 배들이 수시로 오고간다. 버스처럼 운행하는 수상버스와 택시처럼 이용하는 긴꼬리배, 멀리서부터 짐을 가득 싣고 온 커다란 화물선까지. 그렇게 학꽁치처럼 날렵하게 짜오프라야강을 지나다니는 배들과 함께 나는 방콕에서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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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방콕에 머무는 동안 나는 아침마다 짜오프라야강 옆 작은 공원에서 조깅을 한다. 오늘도 일곱 시쯤 공원으로 가서 조깅을 하는데 맞은편에서 카메라를 손에 쥔 서양 할배가 걸어왔다. 그 할배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옆으로 살짝 비켜서는 순간 그 할배의 주머니에서 꽃잎 같은 종이 몇 장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순간 내 오른쪽 눈동자는 그 종이가 무엇인지 식별하기 위해서 동공을 최대한 확대했고, 왼쪽 눈동자는 그 할배의 상태와 주변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잽싸게 움직였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서만 초능력을 발휘하는 걸까?)

그 종이는 돈이었다. 1000밧짜리 너댓장은 되어보였다. 1000밧은 한화로 4만원쯤 되는 액수이지만 태국 물가를 감안하면 10만원의 위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4000~5000밧이면 나 같은 거지여행자에게는 2~3일치 숙소와 식사와 마사지와 맥주 몇 병까지 해결되는 큰 금액이다.

할배는 이국땅의 신기한 피사체를 좇느라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흘러내린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주변의 벤치에서는 노숙자 두엇이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오롯이 나 혼자만이 돈들의 탈출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속에서는 1번 마음과 2번 마음이 갈등하기 시작했다. ‘뭐해? 얼른 할배에게 알려줘야지!’ 1번 마음은 이렇게 속삭였지만 2번 마음은 달랐다. ‘서양 할배가 저 돈 없다고 죽기야 하겠어? 행운은 일단 움켜쥐고 보는 거야!’

나는 어느새 그 돈을 줍기 위해 몸을 반쯤 수그리고 있었다. 그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헤이, 미스터!”

나의 외침에 그 할배가 뒤를 돌아봤고 동시에 벤치에서 졸고 있던 두어 명의 노숙자는 화들짝 놀라며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몸을 반쯤 수그린 자세로 땅바닥에 떨어진 돈을 가리키며 유 어 머니!”라고 외쳤다. 그러자 할배는 성큼 다가와 돈을 주우며 땡큐!!”를 남발했다.

할배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깅으로 가빠진 숨을 고르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잠시나마 본능을 이기고 양심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 나의 이성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심을 지키며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편한 대로 사는데 왜 나만 원칙에 얽매여서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때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본능에 충실하는 게 더 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뱀의 언어로 온갖 유혹이 난무해도 결국은 1번이 2번을 이기고야 만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2 Comments
물에깃든달 2020.05.03 17:04  
ㅎㅎㅎ
저도 고민했을법 하네요
필리핀 2020.05.03 18:12  
그 할배가 사례금도 안 주고 그냥 가서
쪼큼 섭섭한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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