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광장을 비추는 별이 되소서...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이제 광장을 비추는 별이 되소서...

필리핀 1 406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당시 모 대학교 학보사 기자였던 고등학교 선배가

대작가 만나러 서울 가는데 같이 갈래?” 하셨다.

선배는 그 학보의 현상문예 심사를 그 대작가에게 의뢰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두 말도 않고 따라 나섰다. 그때 선생을 처음 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모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1년 만에 그 학교를 그만 두는 바람에 선생의 강의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 뒤,

모 출판사에 근무하던 나는 선생께서 신작을 쓰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원고를 따내기 위해 여러 차례 선생의 자택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 작품은 내가 다니던 신생 출판사와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당시 국내 최고의 문학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오랜 투병 끝에 선생은 이제 다시 뵐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셨다.

부디 편히 쉬세요...

----------​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46분 별세했다. 향년 84. 고인은 지난 3월 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왔다.

 

1934년(공식 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의 두만강변 국경 도시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 뒤 원산으로 이사했다. 원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6·25전쟁이 벌어지자 가족과 함께 월남해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다(2017년에 명예졸업). 1959년 <자유문학>에 단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이듬해 10월 <세대>에 <광장>을 발표했다.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의 말처럼 <광장>은 1960년 4·19 혁명의 문학적 적자(嫡子)였다. 주인공 이명준이 밀실과 광장으로 상징되는 남과 북의 정치 현실을 차례로 겪으면서 양쪽 모두에 환멸을 느끼고 제3국으로 가는 망명길에 바다에 투신해 죽는다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고발하는 한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대 이념을 상대로 한 사상적 고투를 보여주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치 않았던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서문에서 작가가 밝힌 대로 <광장>의 이념적 ‘모험’은 4·19가 열어젖힌 자유와 해방의 분위기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이 소설이 60년 가까이에 이르도록 현재적 의의를 잃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독자들에게 읽히는 까닭은 1960년 첫 발표 당시 작가를 괴롭혔던 남북 분단과 대결 구도가 여전하다는 민족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첫 발표와 단행본 출간(1961년) 이후 적어도 일곱번 이상의 크고작은 개작을 가한 것은 <광장>이 지닌 문학사적·시대적 의미를 자각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은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총독의 소리> 같은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등을 꾸준히 발표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4년간 머문다. 1977년 귀국한 그는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숱한 문인 제자를 배출했다.

 

최인훈 작가. 연합뉴스
최인훈 작가. 연합뉴스

 

1970년 신문에 연재한 장편 <태풍>, 그리고 1984년에 발표한 짧은 단편 ‘달과 소년병’ 이후 오랜 침묵을 지키던 그는 1994년 두권짜리 두툼한 장편 <화두>를 전작으로 내놓으며 극적으로 ‘컴백’했다.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나’의 고백체로 된 이 소설은 해방 뒤 북한에서 다녔던 중고교 시절, 전쟁 중 남으로 피난 와서 대학에 들어가고 군에 복무하다가 소설가로 등단한 과정, 세계 문명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변방의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왜소한 자의식, 옛 소련의 허무한 몰락을 바라보는 반성적 지식인의 사유,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소설을 쓰기까지의 고뇌와 모색을 담은 작가의 육체적·정신적 편력기라 할 만하다. 책을 내고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훗날의 한국 문학사에 작가 최인훈이 젊어서는 <광장>을, 나이 들어서는 <화두>를 썼다고 요약된대도 그다지 불만이 없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과 자부심은 <광장>에 못지않았다.

 

<화두>에서 절정에 이른바, 최인훈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도저한 사유와 지성의 깊이라 할 수 있다. <광장>에서 <화두>에 이르는 소설들에서 최인훈은 조국의 분단 현실과 그 배경을 이루는 이념 대립, 그리고 그런 현실과 이념 지형 속 지식인의 역할 등에 관한 지적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화두> 이후 다시 오랜 침묵에 들었던 그는 2003년 <황해문화>에 단편 ‘바다의 편지’를 발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 단편은 백골이 된 채 바닷속에 누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으로 짐작되는 인물의 독백을 통해 민족사와 인류사의 기억과 전망을 한데 버무린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것이 결국 작가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는데, 2008년 기자들과 만난 그는 “단행본 한 권 분량이 될 만한 미발표 단편 원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말을 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한번 시도해 본, 매우 전위적인 작품들”이라는 작가의 말은 이 미발표 소설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2012년 2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최인훈은 “역사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예술은 예술로서 쉽사리 변하지 않는 시원성(始原性)을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나 하는 게 데뷔 이래의 화두였다”며 “결국 평생 한 가지 노래를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2차 한국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며 “어떤 유행이나 서양식 철학보다 앞서는 한국의 소박한 토착 철학이 바로 이것이다. 그 결론이 먼저 있고, 그걸 어떻게 명제화하느냐는 학자나 예술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광장>에서 ‘바다의 편지’에 이르는 소설을 통해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는 셈이다. 

1 Comments
뽀뽀송 2018.07.23 17:00  
대학 입시 때문이긴 하나, 논술 문제집서 구절로 읽은 후로 좋아서 서점서 책 사다가 자주 읽었었는데..
오늘 큰 별이 너무 많이 졌네요.
타고르 호, 영면의 바다로 평안히 가셨기를...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