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니어스>를 봤다.
<지니어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을 상대했던 편집자 맥스 퍼킨스와
38세에 요절한 작가 토마스 울프와의 실제 사연을 다룬 영화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작가가 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그때 이미 작가로는 밥벌이를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나? ^^;;)
‘고세준’이라는 필명과 ‘완두콩출판사’라는 이름도 미리 지어놓았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실제로 사용해보지는 못했다. ㅠㅠ)
1980년대의 어느 무렵, 나는 강제징집 당한 친구의 대타로 사회과학출판사에 취직을 했다.
첫 직장이었다. 드디어 꿈 하나를 이룬 것이다! ^^
당시 사회과학출판사는 불온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던 곳이었다.
내가 일하던 출판사에도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 직원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한번은 사장과 편집장이 동시에 끌려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피라미여서 끌려가지 않았다. 국립대를 체험할 좋은 기회였는데... ㅠㅠ)
편집자가 누리는 최고의 즐거움은 한 인간의 지적 엑기스를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원고를 교정하는 일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 손을 거쳐 간 책만으로도 아마 작은 도서관 하나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년 가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사건 이후 출판 경기가 최악이다.
IMF도 겪고 월드컵도 겪고 올림픽도 여러 번 겪어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만원 어치 팔던 서점이 3~5만원 어치를 팔고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기분이다. 절망적이다.
출판문화는 한 사회의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출판이 불황이다, 인문학이 망했다, 이런 말들은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어느 하나만 잘 되도 문제이고 어느 하나가 못 되어도 문제이다.
모든 게 고루 잘 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이다.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보니 이명박근혜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미국이 트럼프를 대통령을 뽑았듯이 말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발 문화를 좀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4대강 개발한답시고 멀쩡한 국토를 마구 파헤쳐서 엉망으로 만들어놓거나
블랙리스트 따위로 국민들 편 가르기를 하는 대통령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정책을 뚜렷하게 내세우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문재인 후보가 출판문화 정책을 몇 가지 내놓았는데
출판“사”를 위한 내용만 있고 출판“인”을 위한 내용은 부족해보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의 학력 수준에 비해 가장 열악한 대접을 받고 있는 집단은
대학교 시간강사와 출판편집자일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이 두 집단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결사단체도 갖고 있지 못하다.
모든 이들이 골고루 존중받고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
모든 분야가 골고루 잘 되고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나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과연 누가 그런 사람일까? 그런 사람을 제대로 가려낼 안목을 나는 갖고 있는 걸까?
<지니어스>를 보고나서 문득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한 단상이 떠올라서 주절거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