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산이를 잊지않습니다.
이 아이는 양산 물금의 재활원 아이.
중증 간질환자이고 경도 정신지체에 경도 자폐 증상을 보이는 아이입니다. 물론 간염 보균은 기본사항이고요.
아이라 하지만 20여년전 그 때 18살 정도의 키가 멀쑥한 녀석입니다. 양산시장에서 데려왔다 해서 이름을 양산이라합니다.
덩치도 있고 지능도 좀 나으니 왕초처럼 굽니다. 대부분 온순한데 얘는 욕설을 곧잘 합니다. 뒤통수에다 전도사새끼...주절대기도 합니다.
이 애는 간질을 할 때 먼저 소발작을 실실합니다. 식은 땀을 흘리면서 실실 손끝부터 떨면서 눈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보통 이삼일...길면은 일 주일을 계속 발작을 이어갑니다. 대발작을 중간중간하면서 말입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아이는 소발작이 시작되면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지고 공포감에 빠져듭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증상이 무서워서 쩔쩔 매는 것이죠.
간호사가 상주하지만...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냥 이마에 땀을 닦아내고 대발작으로 쇼크가 생기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이죠.
그곳에 이제 막 결혼해 돌 지난 아이 하나 딸린 전도사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래도 목회자인데...뭔가 사람이 못하는 것...어떤 영빨을 사람들은 기대합니다.
특히 보육사들은 통제할 수없는 상황이 오면 목회자를 찾습니다. 대개 한 밤중에 돌발상황이 잘 찾아옵니다.
어느 월요일, 그 주간 송도에 있는 대학원에 나서려하는데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양산이가 발작을 시작하는 것같다합니다. 가방을 들고 아이에게 갔습니다. 경련이 조금씩 보입니다.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깊은 한숨처럼 하나님, 하나님...중얼거립니다. 양산아, 사랑한다. 아이는 떨며 전도사님하며...손을 꼭 잡습니다.
금요일입니다. 대학원 한 주간을 마치자 주말이 되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아이에게 갔습니다. 아이가 그때까지 발작을 하고 있습니다. 소란한 이들을 다 나가라 말합니다. 그리고 대발작을 반복하고 있는 아이를 부둥켜 안았습니다.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립니다.
하나님, 하나님, 왜, 왜 이러십니까? 왜 이 아이를 이렇게 놓아두십니까?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립니다. 아이의 뺨에 얼굴을 부비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뿐입니다. 하나님, 하나님...내 하나님, 이 아이의 하나님...
아이가 깊은 한숨을 쉬며 안겨듭니다. 전도사님...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사람을 사랑한다한들... 우리가 진작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보일 것은 무엇이며 보이라고 요구함은 무엇입니까? 님들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보일 수 있습니까?
자기 한 몸 가눌 수 없는 병든 저같은 인간은 이제 양산이에게 지연이에게...아니 날마다 지천으로 만나는 아프리카며 아프간이며 이라크의 난민들에게 죽은 자이겠습니까? 아니 언제는 슬픔과 고난의 사람들에게 살아있었습니까?
님들은 그런 삶을 알고있는겁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아니던가요? 그이가 아니라면 다 헛된 자랑이거나 아니면 헛된 미망인 것을...그이가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돌지난 내 아이에게 그가 가진 작은 나무조각을 사랑을 담뿍 담고 건네는 것을 나는 눈여겨 보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가장 큰 보답인 것을...나는 기뻐하였습니다.
님들은 무엇을 날마다 하시는가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정말 나는 알 수 없답니다. 눈물이 내가 가진 가장 큰 행동인 것을...
다만 지금도 내가 사랑한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그것이 나의 삶이라는 것을... 다만 말할 수 있을 뿐.
나는 항상 위선자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말로만 사랑을 뇌까린답니다
중증 간질환자이고 경도 정신지체에 경도 자폐 증상을 보이는 아이입니다. 물론 간염 보균은 기본사항이고요.
아이라 하지만 20여년전 그 때 18살 정도의 키가 멀쑥한 녀석입니다. 양산시장에서 데려왔다 해서 이름을 양산이라합니다.
덩치도 있고 지능도 좀 나으니 왕초처럼 굽니다. 대부분 온순한데 얘는 욕설을 곧잘 합니다. 뒤통수에다 전도사새끼...주절대기도 합니다.
이 애는 간질을 할 때 먼저 소발작을 실실합니다. 식은 땀을 흘리면서 실실 손끝부터 떨면서 눈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보통 이삼일...길면은 일 주일을 계속 발작을 이어갑니다. 대발작을 중간중간하면서 말입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아이는 소발작이 시작되면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지고 공포감에 빠져듭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증상이 무서워서 쩔쩔 매는 것이죠.
간호사가 상주하지만...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냥 이마에 땀을 닦아내고 대발작으로 쇼크가 생기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이죠.
그곳에 이제 막 결혼해 돌 지난 아이 하나 딸린 전도사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래도 목회자인데...뭔가 사람이 못하는 것...어떤 영빨을 사람들은 기대합니다.
특히 보육사들은 통제할 수없는 상황이 오면 목회자를 찾습니다. 대개 한 밤중에 돌발상황이 잘 찾아옵니다.
어느 월요일, 그 주간 송도에 있는 대학원에 나서려하는데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양산이가 발작을 시작하는 것같다합니다. 가방을 들고 아이에게 갔습니다. 경련이 조금씩 보입니다.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깊은 한숨처럼 하나님, 하나님...중얼거립니다. 양산아, 사랑한다. 아이는 떨며 전도사님하며...손을 꼭 잡습니다.
금요일입니다. 대학원 한 주간을 마치자 주말이 되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아이에게 갔습니다. 아이가 그때까지 발작을 하고 있습니다. 소란한 이들을 다 나가라 말합니다. 그리고 대발작을 반복하고 있는 아이를 부둥켜 안았습니다.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립니다.
하나님, 하나님, 왜, 왜 이러십니까? 왜 이 아이를 이렇게 놓아두십니까?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립니다. 아이의 뺨에 얼굴을 부비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뿐입니다. 하나님, 하나님...내 하나님, 이 아이의 하나님...
아이가 깊은 한숨을 쉬며 안겨듭니다. 전도사님...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사람을 사랑한다한들... 우리가 진작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보일 것은 무엇이며 보이라고 요구함은 무엇입니까? 님들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보일 수 있습니까?
자기 한 몸 가눌 수 없는 병든 저같은 인간은 이제 양산이에게 지연이에게...아니 날마다 지천으로 만나는 아프리카며 아프간이며 이라크의 난민들에게 죽은 자이겠습니까? 아니 언제는 슬픔과 고난의 사람들에게 살아있었습니까?
님들은 그런 삶을 알고있는겁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아니던가요? 그이가 아니라면 다 헛된 자랑이거나 아니면 헛된 미망인 것을...그이가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돌지난 내 아이에게 그가 가진 작은 나무조각을 사랑을 담뿍 담고 건네는 것을 나는 눈여겨 보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가장 큰 보답인 것을...나는 기뻐하였습니다.
님들은 무엇을 날마다 하시는가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정말 나는 알 수 없답니다. 눈물이 내가 가진 가장 큰 행동인 것을...
다만 지금도 내가 사랑한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그것이 나의 삶이라는 것을... 다만 말할 수 있을 뿐.
나는 항상 위선자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말로만 사랑을 뇌까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