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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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친구

조화나라 1 504

여행자의 친구 <by 첫 휴가, 동남아아시아>

 

루앙프라방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내 뒤에 혼자 여행을 온 듯한 여자가 서성인다. 살짝 눈인사를 하고는 그녀에게 시내로 들어가느냐 물었다. 진한 녹색의 여권을 손에 쥐고 있어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타이완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쉐리. 루앙프라방으로 짧은 휴가를 왔단다. 우리는 함께 택시를 나눠 타기로 했다. 택시에서 우리는 같은 색깔의 여권을 손에 쥐고 오랜 친구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굴었다. 그녀의 숙소 근처에서 내렸고, 두 시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연락처는 주고받지 않았다. 혹시 어긋나더라도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마을이었으니까.

그녀와 헤어진 나는 잘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휘적휘적 동네를 거닐며 여유롭게 이 집 저 집 방이 있는지 물어보고 구경했다. 서너 군데 방을 둘러본 뒤 작은 마당을 가진 가정집 민박에 머물기로 했다. 하루에 7만 5천 킵. 대충 10달러가 조금 안 되는 가격이다. 일단 처음 부른 값에서 깎고 보는 게 버릇이 된 나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7만 킵에 안 되겠냐고 물었다. 주인아저씨는 내 머리 꼭대기에 앉은 사람처럼 웃으면서 안 된다고 한다. 사실 5천 킵은 우리 돈으로 1천 원도 안 되니까 내게 그리 아쉬운 돈은 아니다. 다만 숫자가 커서 큰돈처럼 느껴질 뿐.

방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멍하니 누웠다. 네모난듯한 창문으로 조각난 하늘이 액자처럼 걸려 있다.하루가 평온하게 저물고 있다. 잠이 건듯건듯 밀려온다. 쉐리와 만나기로 한 시간도 다가온다. 잠이 들락 말락 흩어진 정신과 늘어진 팔 다리를 주섬주섬 챙겨 밖으로 나왔다.

길가에서 어슬렁거리다보니 골목에서 쉐리가 활짝 웃으며 걸어온다. 그녀와 나는 식당이 늘어진 시사방봉 거리를 걸었다. 루앙프라방의 메인 거리는 달랑 하나이고, 그 길조차 넓지도 길지도 않다. 우리는 라오스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택시도 나눠 타고 음식도 나눠먹는 사이. 오래 알던 사이는 아니지만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기하다. 여행을 하며 누군가를 만나 이렇게 쉽게 어울린다는 것이. 어릴 적에는 동네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잘도 친구가 되어 놀았는데,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주어진 환경이 아니고는 친구를 사귀는 일 서먹해진 것이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울타리인 소속감이 필요했다. 친구는 언제나 분류되었다. 고등학교 친구인지, 대학교 친구인지, 동아리 친구인지, 회사 친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친구인지가 꼬리표처럼 늘 따라붙어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나는 존재에 대한 하찮고도 비장한 고민에 빠져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소속감이란 곧 존재감이기도 하니까. 자발적으로 울타리를 걸어 나와 먼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고, 꽤 오랫동안 여행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규칙적으로 만나는 회사 동료도 없고, 주말에 불쑥 전화를 걸어 불러낼 친구도 없다. 때로 쓸쓸하지만, 그 자리가 항상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사랑7080

1 Comments
아프로벨 2016.07.04 11:36  
길 위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 우연한 기회에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건, 행운이지요.

학연, 지연, 사회적 신분, 하다못해 경제적 평행 까지도 묻고 따지고 저울질 하는 일상을 벗어나
낯선 이국의 길에서 똑같은 여행자의 신분으로 만나는 벗.
그게 바로 여행의 로망 중 하나겠죠~

어느 길 위에서나 행복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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