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만난 러시아 여인(인증샷 있음!)
bonviv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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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11:30
저는 방콕에 가면 주로 카오산에 묵습니다...
이제 방콕은 제게 관광지로서의 의미는 없고
그저 다음 여행지로 가기 위한 경유지에 불과하므로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대체로 잘 구비되어 있는
카오산을 선호하게 되더라구요...
이번 여행에서도 갈때 2박, 올때 2박...
총 4박을 카오산에서 했는데요...
카오산에서 있으면서 주로 하는 일은
아침에 파쑤멘 공원 산책 및 방람푸 시장 구경,
낮에는 새로 생긴 숙소 및 유흥업소 정탐...
저녁에는 낮에 봐둔 카페나 바나 클럽 순찰...입니다... ^^
아, 가끔 맛난 게 먹고 싶을 땐
싸얌이나 스쿰빗으로 마실을 나가기도 하지요...
그날도 싸얌에 점심 먹으러 가려고
복권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지요...
제가 카오산에서 싸얌이나 스쿰빗을 다녀올 때 선호하는 방법은
갈 때는 버스+BTS(스쿰빗의 경우)이고
올 때는 BTS+수상버스...입니다...
방콕의 지옥 같은 교통 체증을 고려한다면,
이 방법이 가격 대비 효율이 뛰어난 방법이더라구요~
암튼 그날도 복권청 앞에서 79번 버스를 타고 싸얌으로 가는데...
(여기서 한 가지 팁!
카오산 복권청 앞에서 79번 버스를 타면 싸얌 센터 앞에 서는데요...
에어컨 버스인데다가 손님이 별로 없어서
앉아서 갈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요금은 13밧!
만약 돌아올 때도 이 버스를 타려면
내린 자리에서 타야 합니다... 순환버스거든요... )
오호! 방콕의 명물 버스 차장을 만났습니다...
이분을 내가 처음 본 건 7~8년 전이에요...
그날도 79번 버스를 타고 싸얌으로 마실 나가는데
정류장과 정류장의 간격이 쫌 되는 구간을 지날 때
차장이 버스 가운데에 서더니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태국어로 몇 마디 말을 한 다음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미자 풍의 노래를 한 곡 부르더니
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구석으로 사라지더군요...
그 이후로 이 노래하는 버스 차장분을
너댓 번은 목격한 것 같네요...
방콕의 명물... 79번 버스의 노래하는 버스 차장...
가사를 적어놓았는지 노트 같은 걸 보면서 노래를 한다...
어쩌면 혹시 자작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확인은 못했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나타나주시는 분인데
그날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사진기를 휴대하던 참이라서
(방콕에서는 사진기를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찍을만한 건 다 찍었기 때문에...)
얼른 두어 장을 찍은 후에
느긋하게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데
버스 승강구쪽이 시끄럽더군요...
웬 서양 여인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님이 분명한 영어 발음으로 뭐라고 떠들고 있더군요...
이런 경우, 대학생이나 고등교육을 받은 태국인이 나서서
그 여인의 하소연을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 따라 차안에는 영어를 알아듣는 태국인이 없었는지
다들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바라만 보고 있더군요...
그 여인의 문제도 해결해주고
약간 소란스러운 버스도 진정시킬 겸
그 여인의 곁으로 다가가 무슨 하소연인지 들어보니...
자기가 지금 미팅이 있어서 게이손플라자에 가야 하는데
얼마나 걸리느냐... 이 소리였습니다...
제가 30분은 잡아야 한다...고 했더니
오 마이 갓! 이러더군요...
약속시간이 몇 시냐고 물었더니
10시라고 하더군요... ㅡ,.ㅡ
(그때가 오전 10시가 갓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빨리 가려면 오토바이 택시를 타라고 했더니
그렇잖아도 어제 눈앞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목격한지라
절대로 안 타겠다고 하더군요... ^^;;;
그러면서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기다려줄 거라고 하더군요...
마침 빈자리가 둘 생겨서 그녀와 나란히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내 국적은 러시아인데 지금은 싱가폴에 살고 있다."
"싱가폴에서 모하냐?"
"나는 음악가이다. 플룻과 피아노 연주자인데 싱가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근데 너는 어느나라 사람이냐?"
"나는 한국인이다."
"여기 사냐?
"아니, 여행자다."
"근데 어떻게 방콕 지리를 잘 아냐?"
"자주 오거든."
그때 버스가 싸얌센터에 도착했습니다...
게이손을 가려면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지만,
그 한 구간이 무지 막히는 구간이라서
여기서 내려 걸어가는 게 좋다고 권하자
그 러시아 여인은 "오케이!"하더니 저를 따라 내리더군요...
근데, 싸얌센터에서 게이손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진 않지만
거리가 쫌 되는데다 부근에 비슷한 건물이 많아서
이 여인이 헤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선뜻 그 자리를 떠나기가 망설여지더군요...
그래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싸얌센터에 볼일 보러 왔는데
11시부터 문을 열기 땜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때가 10시 40분쯤 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10시부터 문을 열더군요... ^^;;;)
그래서 아직 시간이 좀 있으므로
게이손까지 너를 에스코트해주겠다..."
(절대로 그녀에게 흑심이 있어서 이런 제의를 한 건 아닙니다!
오로지 꼬레안의 친절을 이방인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러시아 여인은 연신 땡큐를 외치며 함박웃음을 짓더군요...
그렇게 그녀와 다시 나란히 게이손을 향해 걸으며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되었습니다...
"방콕에는 왜 왔냐?"
"음악학원을 세워볼까 한다.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과 그걸 상의할 거다."
"싱가폴에는 언제 돌아가냐?"
"내일 간다."
"그럼 오늘이 방콕의 마지막 밤이네?"
"그럼 오늘이 방콕의 마지막 밤이네?"
"그렇다!"
그 순간, 그녀에게 이따 만나서 저녁이나 할래...라는 제안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습니다...
(절대로 그녀에게 흑심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닙니다!
아름다운 방콕의 밤을 홀로 보낼 그녀가 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게이손 앞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길을 건너는 방법과
카오산으로 돌아갈 때 버스 타는 방법을 설명해준 뒤
"굿럭!"이라고 멋지게 한 마디 외쳐주고 돌아서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녀가 "잠깐만!"이라고 외치더니
핸드백을 주섬주섬 뒤지면서 뭔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몰까? 오늘 저녁에 자기 호텔로 오라고 명함이라도 주려는 걸까?'
오! 제 예상은 50% 적중했습니다...
자신의 명함을 한 장 주긴 주더군요...
근데 오늘밤이 아니라
나중에 싱가폴 오면 연락하라고 싱가폴 주소가 적힌 명함을... ^^;;;
명함을 받고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 준 러시아 여인...
음악을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당당하고 쾌활한 느낌의 여인이었습니다...
(제가 이날 저녁 이 여인과의 데이트에 목을 매지 않은 건
그녀가 나이가 쫌 들었거나 인물이 뛰어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여행 막바지이다보니 자금의 압박이... 순전히 그 이유 때문입니다!)
뱀꼬리 : 반응이 좋으면 방콕에서 만난 젊고 어여쁜(!) 수리남 여인편도 올라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