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라파엘 이야기...3
씨엠립에서 황제와 같은 나날을 보내다가
프놈펜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프놈펜에도 2년 정도 산 적이 있는 라파엘이
업무 차 가는데 따라 가게 되었습니다...
(씨엠립에서 프놈펜까지 가는데 이용한 미니버스...
여행자는 10불, 현지 거주인은 8불...
라파엘이 표를 끊어서 8불에 타고 갔다... ^^*)
프놈펜 가는 왕복 2차선 길은
승용차, 버스, 오토바이, 자전거, 가축이
모두 함께 다니느라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프놈펜에 도착하여
똔레삽 강변의 깔끔한 숙소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프놈펜 가는 길...
그래도 여기는 시내라서 여유가 있다...
교외로 나가면 노견도 좁고
큰차들이 빨리 가려고 난폭운전을 일삼아서 꽤 살벌하다...)
(똔레삽 강변에 있는 깔끔한 숙소...
창문 없는 방이 15불...)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본 강변 풍경...
아침마다 저 강변을 따라 많은 프놈펜 시민들이
조깅을 하거나 에어로빅을 하거나 태극권을 한다...)
숙소에 짐을 푼 뒤... 라파엘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인
뚜얼 슬렝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뚜얼 슬렝 박물관은
이른바 킬링 필드(1975년~1979년) 때에
크메르 루즈에 반대한다고 의심(!)되는 사람들,
일테면 영어를 할 줄 안다거나
노동을 하지 않아서 손이 고운 사람들을
체포하여 감금하고 고문하고 처형한 장소입니다...
(뚜얼 슬렝 박물관 입구...
똔레삽 강변의 숙소에서 살살 걸어가니 30분 정도 걸렸다...
돌아올 때는 오토바이 택시를 탔는데
1불에 흥정을 했다... 2인 이상이면 둑뚝을 타는 게 좋다...
뚝뚝 요금은 2불이면 무난하다...)
뚜얼 슬렝은 원래 고등학교 캠퍼스였는데
수용소로 개조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실에서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지요...
그러한 장소에서, 그러한 일을 하기로
결정한 이의 뇌구조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교정...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게 스러져 갔다... ㅠ.ㅠ)
교실로 쓰이던 4개의 건물에
크메르 루즈가 저질렀던 온갖 악행이
각종 고문도구 및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쓰인 고문도구들...
도대체 저걸로 무엇을 했을까 싶은 도구들이 많다...)
(사람을 묶어놓고 고문하던 침대...
썰렁했지만, 당시의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라파엘은 뚜얼 슬렝을 2번이나 갔는데
갈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면서
이번에는 나 혼자 다녀오라고 하더군요...
가서 둘러보고 나니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희생자들의 사진...
이렇게 앳되고 어여쁜 여성들이
도대체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렇게 어린아이들도
부지기수였다... ㅠ.ㅠ)
박물관을 돌아보는 내내,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제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킬링 필드 기간 동안 희생된 사람은
무려 3백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뚜얼 슬렝에서 희생된 사람만도
1만여 명이라고 합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을 이처럼 무참하게 학살하다니...
20세기 문명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당시 사람들의 발목에 채웠던 족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그린 당시의 수용소 풍경...
족쇄를 채운 채 이렇게 한방에 가두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광주에서도
1980년 봄 수백 명의 무고한 국민이
당시 정부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했지요...
캄보디아는 잘못된 역사를
이렇게 보존하면서 교훈으로 삼고 있는데,
우리는 박종철 씨가 물고문으로 희생된 남영동 안가를 비롯하여
독재시절 온갖 악행이 저질러졌던 흔적들을
말끔히 없애버렸지요...
과연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일까요???
독재시절의 주역들이
아직도 권력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자
마음이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희생자들의 유골로 만든 캄보디아 지도...)
뜨얼 슬렝에 다녀온 그날 저녁...
라파엘과 함께 간 파티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심각한 우울증을
한동안 앓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파티는 라파엘이 프놈펜에 살 때 알던
프랑스 친구가 연 환영파티였습니다...
(현관으로 들어서니 2층집이었는데
거실 한가운데가 탁 트여서 천장이 굉장히 높았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식탁에는
이미 기본 셋팅이 되어 있었다...)
(한쪽에 마련된 미니 바...
식사 전에 꼭 몇 잔 들이키는 게 프렌취들의 관습이라고 했지... ^^;;;)
(안주인이 와인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서
와인냉장고가 여러 대였다...
물론 이날 온갖 종류의 와인을 무제한으로 시음했다... ㅎㅎ)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친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는
그의 와이프인 일본인,
와이프의 캐나디언 친구,
남편의 러시안 친구,
그리고 두 명의 프렌취와
한국인이 저까지,
5개국의 사람이 모인 인터내셔널 파티였습니다...
(탁 트인 집 구조가 너무너무 맘에 들었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2층에서 바라본 모습...
이런 집이 한 달에 1000불이라니...
캄보디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
이날 느낀 건데,
이국땅을 떠도는 사람들은
공통점 같은 게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인간에 대한 평등 정신 같은 것...
아마 그게 없다면
태를 묻은 나라를 떠나
이국땅에서 살아간다는 게
쉽지가 않겠지요...
(이날 파티에 참석한 분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러시안 치과의사, 주인장의 친구인 프렌취, 주인장,
안주인의 친구인 캐나디언, 치과의사의 남편인 러시안, 안주인인 일본인,
내 친구 라파엘,,,)
비록 국적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다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뚜얼 슬렝에서 받았던 충격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결국... 사람에 의해 받은 상처는,
사람에 의해 치유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