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의 추억
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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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8 00:13
피씨 통신 시절이 저물고 인터넷이 각광받던 무렵 외국의 포탈 사이트와 국내 포탈 사이트가 마구 세워지던 춘추전국시대.
처음 가입했던 사이트가 인티즌이었다. 사장이 수퍼맨 복장으로 모델을 하고 있던.
근데 볼게 없었던지 그냥저냥..그러다가 이메일이란걸 사용한답시고 가입했던게 네띠앙이었다.
이리저리 신문기사나 클릭하다가 우연히도 자유토론광장 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뭐, 조회수가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고(아마도 태사랑 그냥 암꺼나 정도 조회수), 또 글의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어서 맘 편하게 글을 쓰기도 쉬웠다.
글을 쓰기 전에 내 나름의 원칙이 있다면, 어느 곳이던 좌판 벌이기 전에 적어도 한달은 두고 본다.
게시판의 주요 이슈나 흐름, 주요 활동 인물과 성향등을 차분히 지켜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야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수 있고, 원활하게 어울려 돌아갈수 있기 때문이다.
암만 기득권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신참은 신참이니까.
당시에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면, azazel 이란 아이디를 쓰는 이민수란 사람이 있다.
당시에는 홈페이지라는 것은 상당히 고수들만 사용할수 있을 정도로 어려웠는데, 그 사람은 개인 홈페이지도 있었다.
이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한 단어의 정의와 선정, 그리고 논리 전개였다.
사실, 우리가 말할때 대충 단어를 사용하지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쓰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게시판에서 소소한 신변 잡기를 논할대 논리 전개라는건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정치나 종교라는 게시판 논쟁의 2대 떡밥을 던지는 순간, 단어의 정의와 선정, 그리고 논리 전개는 무척 중요해진다.
그 사람 글을 읽다보면 등에 땀이 주르르 흐를 정도였다.
말꼬리 잡기조차도 힘이 들었다.
물론 얼굴에 철판깔고 우기기 신공을 펼치면 못할 것도 없으나, 그건 지켜보는 관중들 앞에서 추해지기 딱 알맞을 뿐이다. 자신도 비참해진다.
요즘은 정치판 닮아서 부끄러움이나 염치는 접어두고 설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순수해서 논쟁에서 몰리면 인정하는 정도의 예의는 있었다.
심약한 이들은 그 칼날이 논쟁 상대방을 베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벨까 두렵다는 토로를 할 정도였다.
지켜보는 3자가 그럴진데, 당하는 상대방은 오죽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그 사람과 나는 종교적 성향이 비슷했다. 그 사람은 정치에 대해선 별반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한번도 부딪히지 않았다.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이후 그 정도 고수(?)는 보지 못했다.
내가 글을 쓸때, 단어의 선정에 고심하고, 글을 올리고 나서도 약간씩 단어를 계속 바꾸는 것은(눈치 챈 분 있었을까?) 그 사람에게 배운바 크다. 물론 흉내내기 수준이지 그 사람만큼은 발끝만치도 못된다.
그 후 아이러브스쿨이 대히트를 친다.
난 아이러브스쿨을 애용한게 아니라 그 부속 메뉴에 있던 퀴즈 천하란 퀴즈 게임에 푹 빠졌다.
퀴즈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퀴즈를 풀면서 다른 이들과 잡담을 하는-채팅-의 재미에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결혼을 할뻔한 여인을 만나기도 했는데...차후 '부산의 추억'이란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퀴즈천하가 수익성으로 망하고 대안으로 찾은 곳이 야후 퀴즈.
이곳에선 대구 사람들을 꽤 알게 되었는데, 대구 방문했다가 그 접대(?)에 꽤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야후 퀴즈도 수익성으로 망하고...네띠앙도 수익성으로 거의 망해가고...IT버블이 꺼져가느라 정신없었던 시기였나보다.
퀴즈 사이트는 계속 망해 나가고, 이제 놀기도 지겨워질 무렵, 본격적인 정치 사이트가 떠올랐으니 '서프라이즈'
아시는 분은 아실거다.
업계 최초로 정치가 주재료이며, 노골적인 정치 편향성을 드러낸 곳이다. 그리고 강호의 숨은 고수들이 집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글을 쓰기가 두려웠다.
용담호혈. 고수들이 날고 기는데, 나같은 피래미는 낄 틈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우째저째 낑겨는 보았다.
앞선 사이트들에서도 오프라인 모임이 가진 경험이 꽤 되었지만, 이곳만큼 많지는 않았다.
당시는 회사탓에 인천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금요일 번개라도 있으면 토요일 새벽에 귀가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결혼과 동시에 이런 오프 라인 모임에 거의 나가지질 않더라.
마눌 각하의 강력한 탄압 탓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나가고 싶은 마음에 나가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재미가 없었다.
혹자는 '너 여자 꼬실라고 나간거지?'라고 할 분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보통 사이트 자체를 한 달을 두고 보는 신중한 사람이, 오프 나가서 인물 좀 있다 싶은 분에게 들이밀기 하는 성격이겠나?
이미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통해 다 스캔이 끝나고, 이성으로서 흥미를 끌었던 사람은 퀴즈천하에서 만났던 '결혼할뻔 했던 여자' 한 명 뿐이었다.
인간적으로 괜찮었던 분이야 꽤 있었다.
아, 이성으로서 흥미를 끌만한 여성이 몇 분 있었는데, 죄다 유부녀더라. 확실히 내가 좋은건 남도 좋게 느낀다는걸 그때 깨달았다.
노무현 퇴임과 함께 서프라이즈도 망조가 들더니...박근혜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드디어 망해 버렸다.
이명박 오년을 힘겹게 버티었지만...사실 정치를 전면에 내세운만큼 그 탄압도 엄청났음을 짐작할수 있으리라.
태사랑을 안건 아주 오래전이지만, 관심을 가진건 이 모든 사이트가 역사 저편으로 넘어가버린 다음인 것 같다.
아마도 직장 생활에 치이고, 정치 꼬라지가 맘에 안들어서 개인적으로 힐링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미 태국에 6개월 정도 파견을 나가 경험을 하고, 개인 경험의 한계라는 틀을 깨기 힘들었다고 느끼고, 태사랑에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했던 것 같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그래도 오프 모임도 보이고, 아옹다옹하는 모습도 보인다.
여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방에서 두 명과 티격태격을 했는데, 사실 다른 분들에게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었을거다.
그냥 이미지 관리만 했으면 족했을거다 라는 후회도 들지만, 내 성향-정치와 종교-에 대한 관심은 나이가 들어도 정도만 덜할 뿐이지 식지는 않는듯 하다.
또한 남의 글에 관해서였으면 모를까 내 글에 똥을 싸놓는 것에 대해 참을수도 없었다.
분명히 말한다. 반론이나 논쟁이 아니었다 '똥' 이었다.
사실 왜곡이란 똥과 뻘소리 똥이었다. 거기에 열을 받은 거다.
더 나이가 들면 그조차도 넘어갈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직이다.
불쾌한 기억은 이쯤에서 치우고...
태사랑 오프 모임 글을 몇 번 보면서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냥 접는다.
여행을 주제로 이야기하기엔 난 종교와 정치에 비해 여행엔 깊은 관심이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이미 너무 많이 경험해서 별반 자극을 주지 못한다.
곰같은 마눌 각하와 귀염귀염한 자식 둘을 두고, 이쁜 아가씨 없나?하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 궁금하고 뭔가 기대되는 기분이 전혀 없다 말하진 못할 것이다.
과연 태사랑이 망하는 날이 먼저 올지...아니면 내가 오프 모임에 나가는 일이 먼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내가 애착을 가지고 활동한 사이트는 모두 망했다.
아이러브스쿨도, 네띠앙도, 야후도, 서프라이즈도...갑자기 ㄷㄷㄷㄷㄷ
요왕님이나 고구마님이 보면 당장 회원강퇴 할것 같아 두렵다. 괜한 뻘소리 한것 같아 후회막급이다.
쓴 글이 아까워 남겨두기 하지만...다른 분들 너무 맘에 담아두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