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보셨나요???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아버지의 나라...보셨나요???

bonvivant 4 563
현충일에 방영한 프로그램인데
오늘 재방송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운명이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더군요...
 
특히 세 살 된 딸과 만삭의 아내를 남겨놓고 떠나왔다가
63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된 채 생이별 중이신
김운태 어르신께서 인터뷰 도중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는 대목에서는... ㅠㅠ
 
 
 
KBS 파노라마 현충일기획
아버지의 나라
재일동포 청년들의 선택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나자
재일동포 청년들은 앞 다투어 전쟁에 자원했다.
청년들이 청춘과 바꿔 선택한 것은 지옥과도 같은 전쟁터였고,
가본적도 없는 '아버지의 나라'였다.

'아버지의 나라'를 선택한 642명의 청년들
그들의 인생을 바꾼 선택의 의미는 무엇일까? 

■ 청춘시절 선택한 ‘아버지의 나라’

징용 온 아버지를 따라 세 살 때 일본으로 간 이선욱씨. 일본의 철도학교를 졸업하고 철도 선로설계사로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한다. 결혼한 지 9년이 되던 해, 이선욱씨는 아내와 아이를 남겨놓고 28살의 나이로 기억에도 없는 조국의 전쟁터를 선택했다.
이선욱씨뿐만이 아니었다. 642명의 재일동포 청년들이 학업, 직업, 가정을 포기한 채 현해탄을 건넜다. 대부분은 전쟁과 무관하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던 명문대 학생들과 엘리트 청년들이었다. 안정된 현재와 보장된 미래를 버린 그들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버지의 나라'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 출정 기념사진
■ 생존의 갈림길
1950년 9월, 재일동포 청년들은 현해탄을 건너 인천에 상륙했다. 일본의 미군기지에서 군번도 계급도 없이 단 삼일간의 훈련만을 받고 참전한 청년들에게 전쟁터는 지옥이었다. 특히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들에게 언어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였다.
“후퇴하라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전방으로 돌격하는 식으로...
전투에 참가해서 조국을 위해서 한번 하겠다는 것 까진 좋았는데,
그렇게 희생당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억울하게 희생당했다.”
-  조승배 인터뷰 中
한국어라고는 ‘아버지’, ‘어머니’ 정도밖에 하지 못했던 청년들이 대다수였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나섰지만, 퇴각명령을 알아듣지 못하고 전투에 임하다가 죽어간 청년도 있었다. 결국 153명의 재일동포 청년이 ‘아버지의 나라’에서 전사했다.
 
               ▲ 전사자 명단 기념비                   ▲ 전사한 최해몽(사진)여동생 최명자씨
■ 남겨진 사람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청년들에게는 또 다른 운명의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주권을 회복한 일본이 허가 없이 떠난 청년들의 재입국을 거부한 것이다. 242명의 청년들이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겨졌다.

         ▲ 민단으로 보내진 한국에 남겨진 가족들의 귀환을 촉구하는 편지들
1952년 4월에 제대한 조승배씨도 며칠차이로 일본에 돌아가지 못했다. 메이지 대학교를 다니던 엘리트였지만 학업을 포기하고 최연소로 전쟁에 참전한 그였다. 일본에는 그가 다니던 학교와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다. 한국에 남겨진 청년들과 함께 부산에서 입국허가를 기다렸지만 끝내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부모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애국이다 뭐다 이전에 불효막심한 놈이지”
-  조승배 인터뷰 中
 
              ▲ 참전 당시 조승배씨                           ▲ 일본을 방문한 조승배씨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김운태씨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청년 중 한명이다. 일본을 떠나올 때 그에게는 세 살배기의 어린 딸과 만삭의 일본인 아내가 있었다. 참전당시, 가족들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돌아가지 못한 채 한국에 정착해야했던 그는 지금까지 63년 동안 가족의 행방도 알지 못하고 있다. 참전 전에 찍은 딸 미요코의 낡은 사진 한 장만이 그가 기억하는 가족의 마지막 모습이다.
 
  ▲ 63년 만에 일본을 다시 찾은 김운태씨                  ▲ 딸 미요코의 사진
■ 젊음과 맞바꾼 선택의 의미
꽃보다 아름다웠던 청춘, 642명 중에 3/1은 임무를 완수하고 일본의 가족 품으로 돌아갔지만, 3/1은 죽고, 3/1은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참전하지 않았다면,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서 다니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청춘의 선택은 그들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연고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 홀로 남겨진 이들.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켰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의 나라'에서의 가혹한 삶이었다. 살아남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불행이었다.
일본이 주권을 회복하기 전에 제대해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이선욱씨.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받는 보훈연금 88만원을 매달 통영의 고아원에 기부한다. 전쟁 때 만났던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죽어서도 한국땅에 묻히는 것이다. 세 살 때 일본으로 이주해 기억에도 없는 나라를 위해서 평화로운 청춘시절을 포기했고, 그 보상까지도 한국을 위해서 사용하는 그에게, ‘아버지의 나라’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조승배씨와, 63년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김운태씨, 그리고 수많은 재일 동포 청년들이 젊음과 맞바꾼 선택의 의미는 무엇일까? KBS 파노라마 <아버지의 나라>에서 그들의 선택과 희생 통해 '아버지의 나라'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 이선욱씨와 딸 이여순씨                        ▲ 통영 모자원에서 보낸 선물
 
4 Comments
어랍쇼 2013.06.09 03:20  
한국전쟁때 재일동포들까지 자진참전 했다는사실은 몰랐었네요.
이토록 뜻있는 젊은이들이 죽기도하고 살아서도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는건 정말 참담한 비극이네요ㅜㅜ
지금 군대  안가려고 해외로 나르는 그런뜻(?)있는 사람들이 한번 보고 느꼈으면 합니다.
bonvivant 2013.06.09 10:39  
일본에서 얼마나 차별대우 받았으면... ㅠㅠ

근데 푸켓은 잘 즐기고 계시나요??? ^^*
AseanBae 2013.06.14 20:54  
차별 대우 받아서 죽을려고 자진 입대 한 것으로 생각하는 데 , 공산세력으로 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입대한 숭고함을 깍이 내리면 안 되죠
bonvivant 2013.06.15 07:24  
님도 프로그램 보셨나요???
제 말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그런 대목이 나오던데요~ ^^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