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경 씨와의 비대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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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경 씨와의 비대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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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현경 이야기를 담은 ‘원더플라이프’를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게 된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을 들으면서 마치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공유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우 오현경은 서울야곡 ‘맹식이’와 TV손자병법 ‘이장수 과장’으로 유명한 남자원로배우 오현경을 말한다.

미스코리아 출신 여자중년배우 오현경과 다른 인물이니 혼동하면 안 된다.

 

배우 오현경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안국동 95 번지는 내가 태어나 자란 ‘생가’와 불과 다섯 집 떨어져 있었다.

초등학교도 같은 학교(재동초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실제로 그 동네에서 오현경을 본 적은 없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석 달 후인 서울수복 때 까지만 안국동에 살았다고 하니까 나와 마주칠 기회는 없었다.   

 

생년월일을 보니 오현경 씨는 나보다 26 살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어린시절 목격한 동네풍경과 내가 기억하는 그 동네풍경이 별 차이가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동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별로 없다.

지금 가 봐도 내가 기억하는 50 년 전 옛날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0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적어도 서울 북촌 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오현경이 기억하는 북촌풍경과 내가 기억하는 북촌풍경이 비슷할 수 밖에 없다. 

 

북촌이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율곡로 북쪽에 있는 주택가를 말한다.

삼청동 팔판동 소격동 사간동 안국동 계동 원서동 재동 가회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상가가 아닌 주택가인데도 외국인 여행자들이 이 동네에 가장 많이 몰려드는 이유는 아기자기하면서도 특색있는 거리풍경이 제공하는 ‘경험의 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았을 당시 이 동네에는 아이들과 여학생들이 많았다.

아이들이란 초등학생을 의미하고 여학생들이란 교복을 입은 여자중고등학생을 말한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갔지만 경기여고가 안국동에 있었고 재동에 창덕여고가 있었다.

안국동 네거리 인사동 입구 북쪽 맞은편에 있던 풍문여고도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

안국동에 여전히 남아있는 여학교는 덕성여고와 덕성여중 뿐이다.

 

호기심에 재동초등학교 사이트에 들어가 학교현황을 보다가 현재 학생수가 209 명에 불과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그 학교에는 한 반에 60 명 씩 열 반 정도가 있었고, 그것도 저학년은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교생 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2 천 명이 훨씬 넘었을 것이다.

 

배우 오현경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중에는 연예인과 작가가 많았다.

배우 오현경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작가 유호가 재동출신이다.

오현경과 유호는 작가와 배우 사이 이전에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던 것이다.

 

가수 김민기, 양희은, 서태지, 조관우, 이상은, 전인권, 장욱조, 소설가 최인호, 영화감독 이장호가 재동출신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배우 김을동도 재동출신인데, 내가 알기로 그의 아버지 김두한은 교동초등학교를 다녔다.

경운동에 있는 교동초등학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된 학교다. (교동은 1894 년, 재동은 1895 년 각각 개교).

김을동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주소지가 북촌이 아닌 종로였으므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는 재동이 아니라 교동이었다.

종로와 재동이 차를 타고 다녀야 할만큼 먼 거리는 아니지만 초등학생이 걸어서 등하교하기에는 제법 먼 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을동이 재동에 간 이유는, 아마도 김두한이 자기를 낙제시킨 교동을 괘씸하게 생각한 나머지 자기 딸을 재동에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의 추론이다.

 

연예인이나 작가는 아니지만, 손혜원이 재동출신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분의 고향이 서울이 아닌 전라남도 목포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재동초등학교를 나왔다길래 이상해서 위키를 검색해 보니 서울 북촌 출신이었다.

심지어 그의 선친(손용우)도 재동초등학교를 나왔다.

 

서울 북촌이 고향이면서도 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나뿐 아니라 대부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조선 개국 초기 정도전과 박자초(승려 무학의 세속명)가 3 월 잔설이 덮혀있는 북악산 인왕산 도봉산 관악산 등에 둘러싸인 풍경을 묘사한 ‘눈 울타리(설울)’ 라는 뜻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서울이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또 다른 설도 있지만, 그건 좀 이상하다. 서라벌은 경상북도 경주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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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현경 어린시절 회고담을 들은 탓도 있지만,

요즘 서울이 많이 아프다고 하니 마음도 좀 안 좋고 해서 북촌 이야기를 오랜만에 해 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서울 확진자 수 18,638 명, 전사자 수 172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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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촌은 북촌이 아닌 경복궁 서쪽 체부동에 있다.

서울사람들은 고사하고 종로구민들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많을 체부동은 과거에는 엉뚱한 사유로 유명한 동네였다. 

배화여고를 다녔던 육영수 씨가  자기 아버지가 사귀었던 여섯 명의 걸프랜드 중 다섯 번 째 걸프랜드 집에 기거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집이 서촌 체부동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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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동은 지금 다른 한자齋洞으로 표기하지만 원래 이름은 다른 의미의 재동(灰(회)洞) 이었다.

안국동과 가회동 사이에 있는 이 동네이름 재동은 말 그대로 피비린내를 덮기 위한 재(灰-회-)에서 유래되었다.

재동은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주도한 계유정란 당시 하룻밤 새 수 십 명이 참살되었던 곳이다.

새로 지은 한자이름 齋洞 역시 죽은 자의 넋을 기린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최고의 흉가체험 적격지는 곤지암이 아니라 재동에 있다.

그 흉가터가 과거에는 창덕여고에 있었다가 지금은 헌법재판소에 귀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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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윤보선 고택이고 오른쪽이 안동교회다. 외국인 선교사 개입없이 1909 년 개업한 최초의 자립교회다.

안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겠으나 경상북도 안동과 관계없는 이름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경상북도 안동은 安東이고 안동교회의 안동은 安洞이다.

한자어를 보면 교회가 소재한 안국동(교회개업당시 이름은 안국방)의 준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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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가는 몇 년 전 카페였는데 그 후 식당으로 변했다.

기본골조는 변한 게 없는데 실외장식이 조금 변해 있었다.  

선친이 1950 년대 지었다는 이 집이 70 년 가까이 철거되거나 재건축되지 않고 옛날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북촌이니까 가능한 일이었을 듯..

북촌에는 70 년 아니라 100 년이 훨씬 넘은 고가들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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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지점표시가 되어있는 집이 옛날 우리집이고, 왼쪽 '서울이야기 한옥게스트하우스' 옆 집이 배우 오현경이 살았다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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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6 Comments
비육지탄 2020.12.31 09:37  
서태지는 그 초등학교가 마지막 학력인데 마치 학교를 빛낸이의 대우를 받나봅니다ㅎ
김대중도 박정희 앞에서 못참겠다,갈아치자는 표현을 서슴없이 했다니 ㅎㅎ
암살기도에 납치에 쫓겨다닐만도 했네요
선거포스터 캐치프레이즈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건 모니모니해도
"불심으로 대동단결 "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sarnia 2020.12.31 09:54  
저 학교는 연배가 올라갈수록 출신 유명인사들이 많아 딱히 학교를 빛낸이를 내세우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저 학교가 좋아서가 아니라 옛날에는 저 학교밖에 갈데가 없어서 다들 그리로 간 바람에 그랬을 겁니다.

올해는 비행기도 한 번 못 타보고 마스크나 쓰고다닌 최악의 한 해로 기억남을 수도 있지만, 제게는 기쁜  일이 생기기도 했던, 좀 특이한 해 였습니다.
그래도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한 해임에는 분명합니다.

2021 년은 (소띠해 인가요?),, 비육지탄 님에게 행운이 곱으로 되돌아오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태국짱조하 2020.12.31 11:40  
재동초 출신들이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군요, 하하,,
그 중 심도 깊고 예리한 시선으로 태사랑에 많은 글들을 올려주시는 sarnia님도 해당이 되는군요.
서울의 모습을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늘 보던것도 좀 새롭고 좋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정확하고 바른 소식 내년에도 볼수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sarnia 2020.12.31 12:40  
내년에는 다시 자유롭게 한국에 방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울에는 세계적인 국보급 맛집들이 많은데 팬데믹 때문에 그런 집들이 사라질까봐 정말 걱정입니다.
저 삼계탕집도 그렇고 저 부근에 알짜배기 맛집들이 많습니다.
대북특별대표하다 지금 국무부 부장관하는 스티브 비건이라는 사람은 광화문에 있는 무슨 닭한마리 칼국수집을 그렇게 좋아한다는데, 심지어 이번 달(12 월) 초 한국에 간 목적이 다른 이유는 다 핑계고 그 칼국수 먹으려고 한국에 갔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사실인 것 같습니다.
폴란드계인 자기 어머니가 만들어주곤 했던 닭고기 스프와 깊은 옛맛이 같아서라는군요.

안전하고 행복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다람쥐 2021.01.02 10:42  
88-92년까지
저 안국역을 이용했었죠.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오는 중간 계단에,
파리바게트 빵집이 있었는데,
제 입맛에 안맞아 딱한번 사먹었었죠.
현대 계동본사 바로옆 안치과 2층에 있던 현대 호프를 매일 퇴근길에 들렸던 기억도...
현대 스포츠센터의 이발관도, 면도까지 다해주고도 동내 이발소 반값뿐이 안했고...

사르니아님 어릴적 동내에서 현대 본사쪽 방향으로
수 많은 주택들이 식당으로 운영이 되었고,
김밥 반줄에 라면 반개를 아침에 팔았던 기억도...

현대 본사 지하에
축구장 반만한 구내식당이 있었는데,
신문이나 기타 등등 방문자들을 위해
하루 1만명분 식사를
1만3천명분으로 올리고,
식권없이 모두 밥먹게 하라는 왕회장의 지시로
근처 재동 초딩들도 밥먹으로 왔던 기억이...

토요일이면, 종로까지 걸어가서
낙원상가니 파고다 공원이니 세운상가등을 구경했던...
종로 뒷골목 시민호프집에서
아무거나 안주 1만원짜리 시키면,
통닭한마리에 과일과 기타 안주를 듬뿍주던....

크리스마스 이브날 울 부서 단체 회식을 어디서 할까 고민하며,
단체로 종로로 걸어가다가,
중간에 있는 덕성여대 생활관에서 예절 교육 받고 나오던
여대생 16명을 가장 나이가 어렸던 제가
단체로 꼬셔서,
여대생들과 노땅포함(부서장인 이사님 나이가 41) 단체로
종로에 있는 나이트로 간 기억도...
(여대생들은 공짜로 나이트가서 신나게 놀고,
여직원들도 신나하고,
남직원들은 보통 술만 퍼 마시고 일이야기 하다 꽐라되는 연말을
줄겁게 보내고도 부서회식비 반이 남는 기적이 일어났죠.)

그시절이 생생이 기억나는게
늙어가는가 봅니다.
sarnia 2021.01.02 11:18  
제가 초딩시절에는 현대본사 자리에 휘문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현대본사가 언제 저기 들어왔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건물에서 정몽헌 씨가 투신자살했지요.
본문에서 이야기했지만 저 동네일대가 터가 셉니다.
현대본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흉가터(재동)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 건물을 지었어요.
교동초에서 종로쪽으로 내려가면 낙원상가 나오지요.
그 낙원상가 지하에 낙원시장이 있습니다.
종로구 노인네들이 저기 다 모이는지 노인들로 와글와글한데 관광객들이 꽤 많습니다.
들어가는 입구가 지하주차장처럼 생겨서 모르는 사람은 찾아가기 어려워요.
거기 먹을게 무지하게 많아요.
50 년 이상된 맛집들이 즐비한데 가격도 싸요. 4 천 원 짜리 탕수육도 있고 1 만 5 천 원 짜리 홍어회도 있는데 퀄러티도 좋아요.
한국에 가실 일 있으면 꼭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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