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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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 감상하세요...

필리핀 20 402
 
 
 
신월동의 눈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있다
 
이곳은 강서의 끝, 몇 대의 버스 종점과
 
번지수보다 더 많은 가구들이 사는 곳
 
날마다 불도우저 삽질 소리 요란하게
 
남부순환도로의 한 끝이 파헤쳐지고
 
확인할 수 없는 서울의 한 끝이 허물어지고 있다
 
누구인가, 오랜 친구처럼
 
내 어깨 위에 쌓이는 이 눈은
 
또 어느 슬픈 죽음이 삐라처럼 휘날리고 있는가
 
언제부터인지 가난한 이웃은
 
도시의 외곽으로만 밀려다니고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땅을 위하여
 
이곳의 아이들은 종이배를 접지만
 
그들이 가닿을 꿈의 항구는 눈발에 가려 아득하고
 
밤이면 저 먼 샛강 위로
 
휘황한 서울의 생애가 떠내려 간다
 
오늘 하루 눈이 내려
 
강남과 강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히고
 
우리들 삶의 귀가길도 아득한데
 
지친 하루를 살고 돌아오는 젊은 가장이여
 
이제 당신들의 서울은
 
어디로 시린 발목 뻗을 것인가
 
인간이 사는 마지막 동네를 찾아 떠나온
 
집배원 우편낭 속으로 눈발이 날려
 
기억할 수 없는 몇몇의 주소가 지워지고
 
매운 바람에 코를 씻으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한쪽 어깨가 젖고 있다
20 Comments
필리핀 2014.02.24 08:42  
제가 글 쓰는 학과를 나왔는데요...
후배들이 선배들 데뷔작을 모은다고 보내달라 해서
오랫만에 꺼내 타이핑한 김에
감히,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위 시는 198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이구요...
아래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신경림 시인의 심사평입니다...

"「신월동의 눈」은 표현이 간절하고, 전혀 말의 낭비가 없다. 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의 시 같다. 특히 변두리 사람들의 가난하면서도 따스한 삶의 모습이 어떤 대목에서는 구체적으로, 또 어떤 대목에서는 상징적으로 형상화돼 있어서 시종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른 신문의 당선작에 결코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아침에 일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타이핑을 하다보니
어언 30년이 다 되어가는 저 먼 뒤안길의
어떤 풍경들이, 어떤 얼굴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마구마구 떠올라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들과
그 시절의 추억을 곱씹어보기 위해
부끄러움과 뻔뻔함을 무릅 쓰고 올려보았어요... ^^;;;
다마추쿠리 2014.02.24 12:37  
감사합니다. 이런 뻔뻔함 사랑합니다. 시의 이미지와 함께 개발전의 마포종점,,, 여의도 쓰레기처리장 등도 떠오르네요. ㅎ 저는 마포종점이란 노래도 아주 좋아해요...^^
필리핀 2014.02.24 13:33  
마포종점... 저도 좋아라 하는 노래인데요...

은방울 자매가 부른 아주 오래된 노래죠~ ㅎㅎ
jindalrea 2014.02.24 10:03  
필리핀님..아..요즘..저를 너무도 괴롭히십니다..ㅎㅎ
전심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해 지는 이른 저녁..눈 나리는 좁은 골목, 낮은 지붕 어딘가..인적이 있고, 없고..삭막하지만 사람이 사는 여린 정이 가득한..그 곳에..제가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용인..골리앗 위에서, 아이들과 주운 녹두로 녹두전 해 먹던 날이 떠오르네요. 그 날의 난로에서 타던 장작의 냄새가 잊을 수가 없는데..그 아이들이 엄마를 잃던 날..많이도 울었지요. 그런데, 이제 그 아이들 중 누구는 30대에 들어섰겠네요..
필리핀 2014.02.24 13:35  
진달래님도 감성이 풍부하신 분 같아요...

골리앗... 없는 자들의 분노와 절망을 상징하는 존재였지요... ㅠㅠ
필리핀 2014.02.24 13:35  
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sarnia 2014.02.24 10:50  
서교동 토박이신 줄 알았는데, 신월동에도 사셨군요.
전 신월동이 확실하게 어딘지 감이 오질 않아요. 화곡동 근처일 것 같고, 제가 운전면허를 딴 강서면허시험장에서도 가까울 것 같긴한데,,,,,,

저도 그 시절은 기억합니다.
1986 년이 벌써 28 년 전이네요. 신춘문예.. 그 해 봄이면 개헌추진위가 발족했을 무렵.
가을에는 아시안게임, 임춘애 선수가 트랙을 돌던 모습도 기억나고,
갑자기 인도로 사라져서 온 가족을 놀라게 한 첫조카가 태어난 해도 그 해였고,
참, 저는 그 해에 개금동이라는 부산의 듣도보도 못한 동네에서 있었어요.
그 때는 거기 백병원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필리핀 2014.02.24 13:38  
저는 신촌 홍대 언저리에서 산지는 20년쯤 됐구요...

신월동은 당시 취재(?) 차 함 가보았어요...

그때에는 이주민 철거민 문제가 심각했었잖아요...

그러고 보면 1986년에서 1987년을 거쳐 1988년에 이르는 시기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참 드라마틱한 시대였던 것 같아요...
fisherman 2014.02.24 10:52  
아~ 필리핀님은 신춘문예로 등단하신 문인이셨군요.

신춘문예 당선작이시라면......
문인으로서 처녀작이신데,
그런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또한...
시인의 글에 댓글을 달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태사랑은 역시,,,훌륭하신 분들이 많은, 훌륭한 커뮤니티 인것 같군요.

건필하십시요~
필리핀 2014.02.24 13:38  
데뷔한지 30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 시집 한권도 못 가진 엉터리랍니다~ ^^;;;

암튼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국산흑표범 2014.02.24 11:13  
역시 범인은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은 시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필리핀님보다 연배는 훨씬 어리지만 저도 한때 국문학과를 꿈꾸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하신 오세영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해서 고등학교때 끄적였던 시를 메일로 보낸적도 있었지요, 고2때 IMF가 오면서 소명의식보다는 취직잘되고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의대에 진학해서 안과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서도 항상 아련하게 그 때 생각이 납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마음입니다. 항상 필리핀님 글 잘 챙겨보고 있습니다. 다음에 한번 방콕도 좋고 치앙칸도 좋고 치앙마이도 좋으니 한번 뵙고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리핀 2014.02.24 13:41  
IMF 때 부모의 절망을 목격하고

자신의 진로를 바꾼 젊은이들이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의학은 사람의 몸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디 어느 자리에 있든, 좋은 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킁타이 2014.02.24 11:14  
"시"를 잘알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뭔가가 "싸아 "해지는군요
좋은시 잘읽었읍니다
필리핀 2014.02.24 13:42  
저도 시는 잘 모릅니다...

그저 제가 느끼는 걸 끄적거렸을 뿐입니다... ^^;;;
세일러 2014.02.24 12:26  
시에는 문외한인데 이 시는 동시대 감성을 자극해서인지 딱 와 닿네요~
필리핀 2014.02.24 13:43  
386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정서가 깃들어 있다고 봐야겠죠???

게다가 제가 솜씨가 부족한 탓에 그리 어려운 내용은 없잖아요~ ^^
세일러 2014.02.24 14:09  
아까 운전중 잠깐들린 휴게소에서 스머프로 휙~봤는데요, 차분히 다시 읽어보니 정말 좋은걸요.
그때 시대정신을 잘 잡아냈다고 느껴지고, 지금 읽어보니 마치 예언인듯 느껴지는...
신경림시인의 평이 오히려 많이 절제되었네요.
시는 문외한이지만 친분있는 시인은 좀 있어서 장석남시인과 놀러가는데, 필리핀님 시평 좀 해달라고 할까요...? ㅎㅎ
필리핀 2014.02.24 14:25  
헐~ 장 시인... 후배라서 가끔 보는데요??? 

연초 모임에서 만나서 술 한잔 했어요~ ㅎㅎ

세상 참 좁군요... ^^
세일러 2014.02.24 14:46  
헐~ 세상 정말 좁군요~
장시인 인천이라 잘알아요~
주말에 교토 같이 놀러가요~
ㅋ 필리핀님 물어봐야겠다~
참, 성함 쪽지 주셔요~
필리핀님이라고하면 모르겠지...요?
필리핀 2014.02.24 15:12  
교토... 좋은데 가시는군요...

즐건 시간 보내다 오세요...

저는 주말에 꼬 쑤린 원정대 출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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