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에게도 힘든 겨울 - 봄을 기다리며
매년 겨울이면 부엌 창가에 작은 새모이통을 달아둡니다
예전에는 뒷뜰 덤불숲 깊이 달아두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새모이값도 만만찮은데...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먹이값을 하려면 예쁜 먹는 모습이라도 보여다오...
라는 작은 심술로
모이통을 부엌 창가 앞에 달아맸습니다
처음에는 사람 그림자만 얼씬해도
도망치기 바쁘던 야생 새들이
인기척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요즘은 이웃동네 참새무리들까지
시간대 별로 돌아가면서 몰려듭니다
유독 춥고 눈이 많은 이곳 겨울나기가
작은 새들이라고 쉬울까요
그저 작은 동정심으로
힘든 겨울을 지내는 새들에게
배고픔을 달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한동안은 카르디날 같은 색상 이쁜새도 오고
다양한 핀치종류가 오더니
요즘은 아예 이동네 양아치 참새패들이 이 식당을 접수해버렸네요
그래도 이른 아침에 참새들이 떼로 와서
모이를 먹는 모습을 가까이 볼수있어서
좋았습니다
재잘 재잘 떠드는 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겨울 날 아침
막 계단을 내려와
아무생각없이 부엌 베란다(테라스)를 바라 보는데
아주 커다란 이상한 그림자가... 순간 놀랐습니다..
웬... 새가 이렇게 큰가?
가만 보니 큰 매 한마리가 바로 베란다 창가에 앉아 있습니다
둘다 순간 얼음...
잠시 동안 눈싸움...
제 바로 옆 1미터 지점에는 카메라가 놓여있습니다
이놈을 이순간을 찍어야 하는데...
제 눈은 마치 서부의 총잡이가 상대와 기싸움을 하는 순간처럼
카메라(총)가 적(매)를 번갈아 봅니다
침 꿀꺽
떨리는 손으로 살금 살금 카메라에 손을 뻗어서
카메라를 낚아채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매는 커다란 날개를 훌쩍이더니
너무도 가볍게 담장너머 하늘로 사라집니다..
아 ... 놓쳤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큰 야생매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도 처음이고 놀라운 일입니다
야생의 매가 이런 도심 가까운 주택가 까지 내려와
한입거리도 안될 작은 참새를 노릴 정도면
매도 무척 먹을것이 부족한가 봅니다
그 이후로 매는 제 집 주변을 돌면서
방심한 참새들을 노립니다
배고픈 참새들 역시 매가 무섭기는 하지만
먹이에 대한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목숨을 걸고 주변에서 맴돕니다
매에게나 참새에게나 참 혹독하고 배고픈 겨울입니다
이제 곧 봄이 오면 먹을거리도 많아지고
매나 참새들도 더이상 이곳에 올 필요가 없어 질테지요
어서 봄이 와서 다들 자유롭게
각자의 삶터로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봄은 이제 어디쯤 왔을까요...
유독 긴 겨울에 봄이 더욱 그리워지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