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중년 그리고 목련.
토요일 아침 포근한 이불 속에서 일어나기가 싫어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핸드폰에
저장된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 카톡 울림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광고는 아닐테고 이 시간에 누구지? 하고 약간의 궁금증이 일었지만
나중에 확인해볼까 하다가 그냥 누운 채로 폰을 열어 봤더니 음원 파일과 함께
장문의 톡이 와있었다.
톡을 보내주신 분께 온라인에 올려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고 내용을 옮겨본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청승맞게 왠 이런 노래? 하고 핀잔받을 것 같지만 나윤선의
'초우'를 들어보라고 보낸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만나면 자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밤새워 바라보았던
그 사람이 있었다.
'초우'를 들으면 그 생각이 나서....
내 나이에 무슨 청춘이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응답하라 '청춘'을 생각나게 한다.
아침부터 촉촉한 감성은 좋지 않을런지 모른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어디선가, 나를 기다려줄 것만 같은 감성은 착각이라도
행복한 감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에 거의 톡을 하지 않는 편인데 이른 아침부터 내게 저런 톡을 보내셨을 땐
그분 말씀대로 감성적인 기분에 잠시 빠지신 것 같았다.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잠이 번쩍 깨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청춘, 중년, 노년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고보니 속절없이 세월은 흘러 어느덧 나도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바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나이가 되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얼마 전 어느 분에게 이제는 태곳적이라 말할 수 있는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이 군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다가 돌아가는 날에 얼마나 가기 싫은
마음이 들었던지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는 말을 들으며
웃었다.
이제 노년에 이르는 문턱을 넘으셨지만 여전히 섬세하고 고운 그분만의 특별한
"감성능력"을 갖고 계셔서 부럽기도 하다.
왜 지나간 시절들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분 말씀대로 너무나 힘들고 쓰라린 기억조차도 세월이라는 체를 통과하면서 추억
으로 미화되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지난 시절이 그립더라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NO'라고 대답을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나간 일들은 존재 의미를 잃고 현재의 시간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을 왜 아름답다 하는 것일까?
가장 역동적이면서 건강한 아름다움과 꿈과 낭만이 있고, 역설적으로는 고뇌와 번민이 공존하기 때문일 거다.
또 애써 감정을 숨기려하지 않고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것을 보면 쉽게 감동하고 슬픈 것을 보면 눈물 흘릴 줄 아는 감성이 있다.
비록 청춘의 싱그러움과 풋풋함은 없지만 중년과 노년도 얼마든지 중후한 멋이 있고
청춘이 흉내낼 수 없는 삶의 연륜과 깊이를 가질 수 있으니 이 또한 중년과 노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 믿는다.
겨울이지만 봄에 피는 목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3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목련을 수십 년 동안 보면서도 꽃이 피어나는 순서가 여느
꽃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몇 년 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또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배웠던 '사월의 노래'에 나오는 너무나 낭만적인 가삿말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는 순전히 작가가 만들어낸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을 말이다.
목련은 꽃이 먼저 피어나고 완전히 지고 난 후에야 이파리가 나온다.
집 근처에 심겨져 있는 목련나무를 보며 알게 된 것이다.
목련꽃만 있을 때는 암만 봐도 그늘이 생길 수가 없고 여름이 되면서 이파리가 무성
하게 나오는데 혹시 그땐 그늘이 생길런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와서는 목련나무 가지에서 움이 트고 있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한겨울부터 미리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말이다.
하도 신기해서 움이 트고 있는 가지를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누군가 내게 목련은 중년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여 하는 말이 2월에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는 20대를 상징
하고 살구꽃, 복숭아꽃, 벚꽃은 30대를 대변한다고 했다.
목련의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12월부터 꽃봉오리가 만들어지면서 추운 겨울을 버텨
내고 3~4월에 피어나는데 처음엔 한송이만 피었다가 한꺼번에 개화한다.
이는 인생을 어느정도 살아온 중년들에게 나타나는 신중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또 질때는 다른 꽃처럼 가지에 매달린 채 시들어서 떨어지지 않고 생화의 상태로 떨어지기 때문에 거무스름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즉 20대와 3,40대를 거치며 기다림을 배우고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고 세상과 싸우며
꿈을 실현하려고 도전했지만 살아있는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는 마지막 중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목련은 꽃잎은 물론이고 이파리, 뿌리, 가지 전부 약재나 공예품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이는데 이는 자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목련의 이야기는 한 때 꽃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려고 했었다는 상상력 풍부한 어느
공학도가 전해준 것이어서 솔직히 나도 어디까지 믿어야할진 모르겠으나 상당히 설득력있는 것이라 생각되어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올리게 되었다.
올해처럼 한 해가 어영부영 빨리 지나간 적은 없었던 듯 싶다.
마땅하게 여기던 것들을 빼앗긴 채 1년을 보냈지만 이젠 그 당연한 일상도 다시 되찾을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인내와 기다림의 계절인 겨울을 부디 잘 보내고 모든 이가 희망과 부활의 봄을 기쁨
으로 맞이할 수 있기만을 기대해본다.
Happy New Ye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