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죽음
작년 크리스마스에 친하게 지내던 대학 친구가 세상을 떠났네요.
물론 훨씬 이전에도 세상을 뜬 친구가 있긴 했지만, 그냥 친구였을뿐, 재학 중에도 함께 했고, 졸업 후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던 친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건 처음입니다.
한밤중에 전화가 와서 저를 찾고 박**씨를 아느냐고 물어서 대학 친구라고 대답하며 불길한 느낌이 들더니만, 울면서 죽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어찌나 슬피 우는지 유족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회사 부하 직원이더군요. 상사가 죽었다고 그렇게 울다니(그래서 상황 파악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지요.) 친구 녀석 직장생활을 헛되이 하진 않은 모양입니다.
하여지간 평택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니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유족들과 인사하고 영정을 바라보니 믿기지 않더군요.
마치 몸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듯한 느낌. 선친께서 가실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유족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참 어이없는 죽음이더군요.
Y자 갈림길에서 좌로 갈까 우로 갈까 하다가 도로 구조물에 박았는데(블랙박스 속도는 시속 60km)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게 치명상이 되었더군요.
내출혈이 있어서, 사고 당시 교통 경찰관에게 상황 설명하고 자기 발로 병원까지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크리스 마스라 당직 의사는 초짜 레지던트.
경험있는 의사라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는 진술에서 타격 부위인 복부나 흉부의 내출혈을 의심해볼만 하겠지만, 초짜 의사는 그저 엑스레이만 찍고 뼈에 이상이 없으니 별일 없을거라 여겼고, 이후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내출혈로 피가 다 빠진 후에) 입원을 했고, 개복하고 출혈부위 대충 꼬매고...그리고 유족들에게 마지막일지 모르니 얘기하라며 자리를 피해서 유족들은 설마하며 이야기 나누고 이후 혼수상태에서 사망.
많이 아쉬운 경우가 겹친 경우입니다.
안전벨트를 했더라면....
경험 있는 의사가 있었더라면...
차라리 어디가 부러지는 중상이었더라면...
무엇보다 회사 잘릴까 두려워 크리스마스에 임원들 모시고 필드에 나가지 않았으면...(출세를 위한 적극적 처세가 아니라 잘리지 않기 위한 소극적 처세였습니다. 추석때 만난 다른 친구가 그 친구가 회사에서 눈치보느라 힘들어 하더란 이야기를 전해주더군요.)
무엇보다 비자발적(?)인 유흥에도 불구하고 휴일날 골프 친 행위는 업무상 재해로도 해석되지 않아서, 유족들의 경제적 고통도 더해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그날 이후 만사가 귀찮아지며, 쓰던 여행기도 중단하고, 그냥 막연히 잠수를 탔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을 보면서 죽음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이 새삼 대단하단 생각이 듧니다.
친구의 죽음에 무기력증에 빠져버리는 자신의 모습과 대비가 되더라구요.
정말 그 상황이 되어보아야 상대방의 처신을 이해할수 있을거란 생각이 새삼 들더라구요.
이제 그 친구가 간지 넉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 가슴 속의 상처도 옅어지고 있습니다.
죽음이란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다들 건강하시고 후회없는 나날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