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싼의 역사 2 - 명이의 태국 이야기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이싼 이야기!
좀 쉬다보니 그만 글쓰는 버릇을 놓쳐버렸습니다. 다시 쓰자고들면 너무 많은 자료를 첨부터 읽어야하니 계속 늦어졌습니다. 무슨 논문 쓰는 것도 아닌데 자꾸 자료에 매달리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자료가 많다고 써지진 않습니다. 그래서 걍 쓰기로 했습니다.
재미보다는 지식으로 갑니다. 그래도 잘 따라와 주시면 좋겠네요
(사실 재미있게 쓰는 게 너무 어려워요. 압박감도 심하고 해서 걍 논문 쓰듯 달립니다)
<크메르제국의 최대 영역>
위 지도는 크메르의 '위대한 정복자' 수르야바르만 2세(1113~1150) 시절입니다. 동남아는 사실상 크메르의 땅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렇게 온통 붉은 색으로 크메르의 영역이 표시되어 있다고해서 크메르의 땅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만달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만달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동심원을 뜻합니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쓰는 용어인데 이것을 올리버 월터스라는 학자가 정치 모델로 제시했습니다.
정치적인 중심지역(도시)이 있고 그 영향력이 동심원처럼 주변으로 미친다는 이론입니다. 이 영향력은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후원-피후원의 관계입니다. 내가 너를 돌봐주면 너는 나에게 보답하라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영토의 개념이 없고 국경의 개념이 없습니다. 이 만달라 체계는 유럽이나 동북아의 피라미드체제(만달라 체제에 대응되는 지배-피지배 관계의 정치체제)와는 명확히 다릅니다.
강한 두 만달라의 동심원이 만나는 경계에 걸쳐있는 지역은 동시에 양쪽 만달라와 후견-피후견의 관계를 맺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러한 느슨한 형태의 동남아시아의 정치체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만달라 체제입니다. 동남아 역사를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이론입니다.
이제 진도나갑니다.
이싼 이야기의 주인공은 따이 민족입니다. 따이 민족은 중국 귀주성의 장족, 운남성의 따이족, 버마의 샨족, 베트남의 눙족 등이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따이족은 중국 남부와 미얀마 북부, 베트남 북부에 걸친 지역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따이족이 남하하기 시작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12세기 초반 몽골의 침입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도 중국 남부에는 많은 따이족이 있습니다만 일부 따이 민족이 지금의 라오스와 태국 지역으로 밀려들어와 므앙(작은 도시 국가)을 이루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쑤코타이 건국
최초의 따이족의 국가는 쑤코타이였습니다. 따이(Tai)족의 한 갈래인 타이(Thai)족은 세력이 약화된 크메르 세력을 몰아내고 최초의 왕국을 세웁니다. 람캉행(1279~1298)대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쑤코타이는 제국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람캉행은 동쪽으로는 메콩강 유역, 서쪽으로는 버마 지역, 남쪽으로는 말레이 반도, 북쪽으로는 윈난 지방까지 이르는 지역까지 만달라를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람캄행은 불교(상좌부불교, 소승불교)를 국가의 종교로 확립하고 왕권의 배경으로 삼으면서 불교 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람캉행의 무엇보다 가장 큰 업적은 타이 민족에게 글자를 가져다 준 것이었습니다. 람캄행이 크메르를 거쳐 들어온 인도의 팔리 알파벳을 바탕으로 타이 알파벳을 창제합니다. 한글 창제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왕실에서 타이 민족에게 맞는 문자를 창제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해서 람캄행은 대왕의 명칭을 얻게 됩니다.
란나 건국
백만경작지를 뜻하는 란나 왕국은 하리푼자야의 크메르족을 몰아내고 치앙마이를 수도로 세운 왕국입니다. 란나는 실론(스리랑카)으로부터 직접 불교를 받아들여 이 종교(상좌부 불교가 아닌 대승불교)를 전파하면서 타이유안(북부 타이)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란나 왕국은 쑤코타이 아유타야와는 다른 언어, 문자를 사용한 반면 이웃 국가인 란쌍 왕국과 긴밀한 교류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주변국가 특히 버마의 침입으로 16세기 멸망한 후 200년간 버마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됩니다.
아유타야 건국
람캄행 사후 쑤코타이는 급속히 약화되는 가운데 짜오프라야강 하류 지역에 아유타야가 개국되었습니다. 아유타야 왕국은 태국 역사상 최장수 왕국(1351~1767)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14세기에 들어 쑤코타이와 앙코르의 몰락으로 동남아에 세력 공백이 생겼고 지형적으로 해상 무역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던 점과 농사에 적합한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었던 점 등이 어우러져 4세기 동안 동남아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아유타야 또한 버마의 침략에 시달렸지만 쑤코타이를 병합하고 앙코르와 란쌍을 자신의 영역에 두기도 하는 등 강한 국력을 자랑했습니다.
란쌍 건국
드디어 이싼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메르의 앙코르제국이 전성기를 지나면서 메콩강 상류(루앙프라방-위앙짠-짬빠삭) 지역에 따이(Tai)족의 한 갈래인 라오(Lao)족이 나라를 건설하게 됩니다. 아유타야 건국(1351)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쌍동쌍통(지금의 루앙프라방)에 화훔(파 응움Fa Ngum,재위1353~1373)의 란쌍왕국이 태어났습니다.
란쌍은 '백만 마리 코끼리'란 뜻입니다. 당시 코끼리가 주요 군사력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백만 마리의 코끼리를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나라"란 뜻으로 군사력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훔은 당시 므엉(지방 소도시)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앙코르 왕국의 보호하에 있다가 크메르인 공주와 결혼하고 앙코르의 후원을 받으면서 란쌍을 개국했습니다. 크메르가 란쌍을 지원한 이유가 아유타야의 타이족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라오스 역사학자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훔 시대부터 라오족은 반타이족의 정서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게 정설이건 아니건 란쌍은 아유타야와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북부의 란나왕국과는 형제국으로 지낼만큼 가까웠고 종족이 다른 크메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같은 따이족인 타이족(시암족)과는 경쟁관계에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란쌍왕국은 크메르를 통해서 불교(상좌부 불교, 소승불교)를 받아들입니다. 이때 실론으로부터 프라방 불상을 들여와 당시 수도인 쌍동쌍통에 안치하게 되고 따라서 수도의 이름도 불상(프라방)이 안치된 방(루앙)이란 뜻의 루앙프라방으로 바뀌게 됩니다.
란쌍왕국의 개국으로 이싼 지방은 란쌍의 일부가 됩니다. 18세기가 되면 북부의 루앙프라방, 중부의 위앙짠, 남부의 짬빠삭, 세 왕국으로 분열되고 이싼 지방은 위앙짠과 짬빠삭이 나누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에는 위 세 왕국 모두가 시암 왕조(딱신의 톤부리왕조와 그 뒤를 이은 짜끄리 왕조)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라오족이 살지만 타이족 만달라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줄 요약
1. 11세기 경 따이족이 중국 남부에서 동남아로 남하해 왔다.
2. 따이족 중 타이족이 쑤코타이(13세기), 아유타야 왕국(14세기)을 세웠다.
3. 따이족 중 라오족 또한 14세기에 란쌍을 건국했고 이싼 지방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