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손님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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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손님 이야기 3

cafelao 14 1239

제 가게가 있는 곳의 입지여건은

큰사거리에 M사와 S사가 서로 마주보고 있고

가게 건너편에 옛날건물의 구청이 있고

고깃집과 술집들이 있는 먹자 골목 뒤쪽으로

작은 사무실들이 있고

그리고 오래된 아파트, 빌라, 다가구들이 섞여 있는

옛날냄새 물씬 풍기는 동네입니다.


 

전철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오면

입구에 10년 넘게 토스트를 하는 아주머니가

새벽 6시쯤 골목의 아침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침 7시 반이 되면

로스팅을 시작하면서 잠이 덜 깬 골목을 깨웁니다.


 

토스트의 고소한 마아가린 냄새와

커피의 뇌쇄적인 향기는 지난밤 골목을 가득 채웠던

광란의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맞이 합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잠이 덜 깬 듯한 표정의 사람들은

토스트하나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기도 하고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합니다.


그녀도 아침 손님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녀는 골목안쪽 어딘가 살고 있었고

제가 커피콩을 볶고 있을 때

그녀는 전철을 타러 가기 위해 커피집을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특별히 이쁜 얼굴은 아니었고

턱선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를 굵게 웨이브파마를 하고

얼굴은 좀 까무잡잡한 작은 체구의

중학생 아들을 둔 직장맘이었습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언제나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느린걸음으로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음...오늘은 뭐가 맛있을까...

메뉴판을 올려다 보며 그녀는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로스팅에 온통 집중하고 있는 저는 그녀가 빨리 주문하길 기다리지만

그녀는 제 마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메뉴를 고르는 여유를 최대한 누리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한참씩 메뉴를 고르던 그녀는

대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그녀는 우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맛있는 아메리카노 주세요

좀 진하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면 저는

네...맛있게 뽑아드릴게요.

그리곤

그녀가 주문한 진한커피가 아닌

25초동안 1온스를 황금색의 풍부한 크레마가 있는

완벽한 샷을 뽑아 아메리카노를 주면서 말하곤 합니다.

진~~하게 맛있게 뽑았어요.

 

그러면

그녀는 크레마가 살아있는 아메리카노 한모금을 마시면서

얼굴가득 미소지으며 행복해 하곤 했습니다.


 

어느날

그녀가

아메리카노 두잔을 주문하길래

저는 그녀에게 물어 봤습니다.

오늘은 두잔? 왜요?

궁금해 하는 제게 그녀는

아...

사무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 한잔 줄려구요.

그럼 커피 받은 사람이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하지 않을까요...


 

아..

그녀는 온화한 표정 만큼이나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이 부자인,

아니 부자로 살 줄 아는 진정 참부자였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다른손님은

너무 괜찬다며 자기도 두잔 사서 사무실에 자기보다 먼저 출근한

다른 사람에게 한잔 나누겠다며 좋아라 했습니다.


요즘도 어김없이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커피를 사러 옵니다.

그리고 두 번중 한번은 누군가를 위한 커피한잔을 더 사갑니다.

 


제 가게 가득 그녀만의 향기를 남긴채.......

 

 



 

14 Comments
로우지 2015.09.16 14:37  
님의 글을 읽고 있는 중에
상쾌한 아침의 햇살과 구수한 마아가린 냄새와
향긋한 커피향이 느겨지네요.

멋집니다.~~~!
cafelao 2015.09.17 09:15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면 토스트 냄새가 넘 맛있게 나요.
요즘 같은 날씨엔 더더욱 토스트에 아메한잔이 땡기지요.

마음이 이쁜 손님들 보면서 저도 배워야겠다 맨날 생각만 한답니다.
Robbine 2015.09.16 15:55  
카라멜마끼아또나 카페모카 같은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칼로리를 생각해서 차마 주문하지 못하고 아메리카노를 사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거든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서 비뚤어지고 싶을 때에만 주문하는 달달이 커피..
cafelao 2015.09.17 09:24  
음~~ 살찌는것을 걱정하시는걸 보니 아마도 로빈님은 여자분이신가 봅니다.
스트레쓰 받을땐 달달구리가 답이지요.

개인차긴 한데 저는 손님들이 뭐가 젤 맛있냐고 물어보시면
아메드시라 해요.
왜냐하면 순수자연 식품이거든요.
저는 좋은생두 선택하고 결점두(썩은콩, 곰팡이핀콩, 쪼개진콩, 엄청 작은콩 등등 로스팅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콩들) 다 골라내고 로스팅해요.
아침에 볶아서 그날 하루 쓰거든요.
때문에 신선하고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순수자연 식품이라 말해요.
맛있게 로스팅한 커피는 커피 본연의 향미가 있답니다.
입안 가득 커피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것은 정말 정말 좋거든요.

좋은 커피맛은 사람 마다 다른 이론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커피란
일단 맑은 커피에요.
맑고 부드럽고 향미가 풍부한...
그럼 나쁜 커피맛은 뭘까요...
맛없는 커피는
텁텁하고 목이 칼칼하고 떫고 짜고 풋내나고 아린맛 나고  나쁜 쓴맛나고 ...등등
커피얘기는 석달 열흘을 얘기해도 다 못할거 같아요 ㅎㅎㅎ
Robbine 2015.09.17 11:25  
대표적 나쁜커피, 앤젤리너스 아메리.. 재떨이 씻은 물..이라고 생각해요;;

제법 괜찮아보이는 커피숍도 원두 로스팅 하는 곳 잘 없고,
좋은 로스팅 원두 사다 쓰는 집도 보통 잘 없더라고요.
대부분 저렴한 믹스원두 사다 쓰던데 카페라오님처럼 커피 만드시는 집이면 진짜 단골하고 싶어요. 매일매일 로스팅을 하신다니, 부지런쟁이!!!!!
세상만사 2015.09.24 07:35  
2013년 서울에서 6개월을 지낸 태국여인 Nui(2015년 4월 태국여행시 온가족이 동원되어 내 여행을 돌봐주었었음)는 한국에서 커피점에 갔을 때 언제나 카라멜마끼아또를 주문했고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나는 단순한 커피향이 퍼지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기에 카라멜마끼아또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Nui에게 그거 한모금 마셔보자 할 수는 없었네요. 맛이 달달한가 보네요.
Robbine 2015.09.24 23:17  
카페라떼에 카라멜시럽 들어간 맛이에요. 정확한 레시피는 잘 모르지만..ㅋ
하루 18시간 일할 때 라든지, 밤새서 일하고 난 다음 날 점심때 꼭 먹어요.
특별히 부탁드려서 (필요하다면 추가금을 내고), 오늘 일이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기분 전환해야 하니 카라멜 시럽을 아주아주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듬뿍 넣어주세요 해서 사먹어요. 그럼 또 순간적으로 힘이 생겨요. 슈가 크러쉬~
참새하루 2015.09.16 17:20  
가슴이 아련한 글이네요
힘든 하루를 보낸후 집에 와서
이글이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되네요
아마 이런게 해피 바이러스가 아닌가합니다
cafelao 2015.09.17 09:28  
오늘 아침에도 그녀가 커피를 사러 왔군요.
저혼자 웃으니까 왜 웃냐고 ㅎㅎㅎ

언제 봐도 기분 좋은 손님이에요.
이열리 2015.09.16 22:28  
보통 카드 할부나 헬스장 6개월..1년 이런거
결제하고 분명히 홧병 날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지난달에 1년치 그것도 3개씩이나 ㅋㅋㅋ
결제했어요.

하나는 내꺼.
하나는...재수씨.
하나는...두달에 한번..컨디션 좋을때 발빨래 하러 가는 고아원으로..

좋은생각.

좋은생각에 나올 글이네요.
cafelao 2015.09.17 09:31  
이열리님도 마음이 넉넉하신 분이시군요.
선물 받으신분들도 행복하시겠고
선물하신 이열리님도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보이네요.
Robbine 2015.09.17 11:27  
헬스장 3개월은 마음의 평화를 위해 끊어두는거지요.
3개월 끊어두면 반은 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반 못가도 그 만큼 간게 어디냐, 안끊었으면 그 정도 운동도 안했을거다.. 하는 마음으로..
젤 최근에 3개월 끊어서 하루 가고 33일 후에 환불 받은건 비밀;
잡초야 2015.09.18 22:32  
참 글솜씨가  좋으신것 같네요~~~
 근데 그녀를  좋아하시는 같군요 ㅎㅎㅎ
아프로벨 2015.09.20 13:31  
해피 바이러스를 가진사람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좋겠어요.
그런 바이러스 가진 사람과 매일 마주하는것도 큰 복이겠지요.
더러  그 해피바이러스 보균자를 보고  뭐지? 왜그러지?? 하는 사람들은
냉소, 냉담, 거부 같은 인자의 면역이 워낙 강해서 감염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카페라오님네는 참 멋진 손님이 많네요.
쥔냥반 성품에 따라 손님의 성품도 다른건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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