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한 맛이 없어, 뭔 인생이......
어떠한 해답도 선언할 수 없던 날들이었다.
작업실 문을 닫고 어스름 저녁으로 던져지면 막막한 불안이 새카만 수렁으로 안내했다. 습지를 걷는 걸음은 질척거려 어느 때 무릎이 꺾여도 하나 이상할 것 없었다. 폐가에 다름 아닌 흉참한 거처도 돌아가는 거리엔 소주병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담배곽이 버석거렸다. 간간히 고개 돌려 석양의 마지막 흔적을 무망히 쫒기도 했다. 상황은 전에 없이 처절했다.
음주 더하기, 무면허 플러스, 차량 완파 사고는 고스란한 마이너스로 기록되었다. 2년이 남은 자동차 할부는 일단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벌금을 마련할 길이 난망했다. 그와 더불어 달뜬 구상은 채 시작을 이루지도 못했다. 인생 한번 아니더냐 하며 무리해 밀어붙였던 전환에 대한 열망은 스물여섯 청년의 치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단호하게 등 돌렸다. 곡예와도 같은 상태에서 한 걸음 아래계단은 곧장 나락이었다. 그렇게 암흑을 걷던 날들이었다.
헌데 우습지, 때에 생애 가장 심각히 결혼에 대해 고민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처지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앞날을 상상했다. 이유라면 단 하나, 그 나락의 결정적 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핸들은 잡은 것은 내가 아니었기 때문, 그렇다고 책임을 나누자고 말할 배짱도 없었던 까닭이었다. 대신 나는 시답잖은 농담을 지껄였다. 당신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니까 내가 더 어쩔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불안에 나는 농담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거라나 뭐라나 하는 능청을 가장했다.
단지 가장한 것이었다, 고로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후 헤어졌다. 왜?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그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역시 그렇게 검은 봉지에 세 병의 소주와 두 갑의 담배를 들고 털레털레 귀가하는 길이었다. 소주와 담배는 현금에 다름 아니기에 형편에 관여 없이 넉넉히 쟁여둔다던 자에게 그 조촐한 모양새는 처해진 입장을 대변하기에 더없이 적절했다. 그날 또한 혼백이 달아난 양 맥 빠진 몸이 저주처럼 무거웠다. 짙어져가는 어둠 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 슬픔......
아, 이러다 죽겠네.
저승처럼 아득한 장탄식...... 그때였다. 어라? 가만...... 잠시만 가만, 돌연 걸음을 멈추고 희롱하듯 설핏 스쳐가려던 사유 하나를 낚아챘다. 무엇이 도약이었는지 금세 사그라질 것처럼 미미했던 어떤 가능성은 이내 역동성을 띠며 혈관을 타고 도는 혈액이 되어 체내에 적극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쉬이 확신으로 치달았다. 그랬다,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내 엄마 놔두고 어떻게 죽나, 겨우 스물여섯에! 그렇다면?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뭐 당연지사 나아지겠지.
고통의 날들이 축조한 그 저물녘의 짧은 자각 이후 나의 슬픔이 장난처럼 끝났다...... 면 좋았겠지만 현실이란 게 어디 그렇게 녹록한 것이던가. 육체는 생활의 숨을 삼키고 또 뱉느라 적잖은 시간 볼모로 구금되었지만 등짐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사실, 결국 늪지를 벗어나 대지를 밟는 일은 예견처럼 자연스레 진행되었다. 그렇게 수렁을 벗어나고자했던 몸부림이 후일 더 큰 수렁으로 인계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게 이 요망한 생의 난감한 블랙코미디지만 어쨌거나,
모든 것은 끝난다. 고통 또한 그렇다는 루이제 진저의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단언을 접하고서 나름 체험으로 관통했다 믿던 내게 그 문장이 주는 감흥은 작지 않았다. 더불어 고통이란 어떠한 것으로 인한 실패의 결과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을 향하고자 하는 응전의 과정임을, 하여 고통이 지속되는 한 완전한 절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이따금씩 그날을 생각한다.
무겁게 내려앉았던 서른여덟의 이 가을 요 며칠이 그러했다. 거기에 이견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저 바다 건너 거기에 계신 그대가 자주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