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경고: 생일축하음악 auto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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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경고: 생일축하음악 auto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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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arnia 입니다^^

 

크리스마스네요.

 

예수 선생님 생신 축하 드리고요. 카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태사랑 회원님들께 각별한 축하말씀을 드립니다.

 

수유에 가면 화계사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이 서로 이웃하고 있습니다.

 

화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고 한신대 신학대학원은 김재준 안병무 문익환 등 한국 진보신학의 거장들의 숨결이 배어있는 theology school 입니다.

 

이 불교사찰과 신학대학원 사이에는 아름다운 전통이 하나 있습니다. 

화계사는 예수 탄신일에, 한신대 신학대학원은 부처님 오신 날에 각각 탄신 축하 펼침막을 정문 앞에 걸어 놓는 것 입니다. 몇 년 전부터 늘 화제가 됐던 이 나이스한 이야기를 아시는 분은 알고 계실 것 입니다.

 

저는 종교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부처 선생님이 예수 선생님보다 약 620 년 정도 형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요. 이 두 분의 생애나 사상이 참 비슷하다는 것 입니다.

 

그나마 기독교 서적은 이것 저것 읽은 게 좀 있지만 불교에 관한 책은 거의 읽어본 일이 없는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주제넘지만 말이죠^^

 

암튼 제가 느낀 것은 그렇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출생신화가 특이하고 초자연적인 것이야 사람들에 의해 나중에 만들어진 동화 같은 이야기니까 별로 신기할 것은 없습니다.

 

설화 또는 신화를 역사적 사실과 구분한다고 해서 기독교나 불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동정녀 탄생이나 육체적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인의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코끼리 이야기나 마야부인 옆구리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불교신자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듯 이요. 

 

예수 선생님과 부처 선생님 두 분은 모두 그 분들 시대를 짓누르고 있었던 지배이데올로기나 상식, 종교적 교리 같은 것들에 복종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난 상상력과 착한 품성을 가졌던 분들 같습니다.

 

두 분 다 비슷한 나이에 출가를 해서 사서 고생들을 하셨구요. 비슷한 나이에 어떤 깨달음을 얻고 그 분들 동시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앞 선 생각들을 거침없이 이야기함으로써 그 시대의 보수적인 어른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예수 선생님은 몇 차례나 맞아 죽을 뻔 하다가 결국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저는 성경을 잘 모르지만 기독교인들은 아마 예수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 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불경을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싯다르타 선생님의 이런 선언은 기억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어느 종교학자는 이 두 분이 각각 한 이 말을 같은 의미로 해석합니다.

 

두 분이 말한 라는 개념은 그 분들 자신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아(自我)로서의 인간 일반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인간의 운명은 하늘의 명령, 유대교의 율법, 운명 따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는 당시의 일반적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 결정된다는 선언을 했다는 것 입니다.

 

그 시대에 이런 말들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각각 2000 년 전과 2600 년 전이니 어떤 시대였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신학자들이나 종교학자들이 이런 추측을 하기는 합니다.

 

그 시대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그 두 분이 도대체 무슨 똥밟은 개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저는 잘 모르고, 그냥 종교와 그 당시의 역사를 많이 공부한 분들이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것 입니다.

 

물론 어떤 기독교인들은 요한복음 (14 12 )에 나와 있는 예수 선생님의 저 말씀을 엉뚱하게 해석을 한 나머지 예수를 거치지않으면 무조건 지옥이라는 황당한 신념아래 남들 지옥 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결심을 하시고 오늘도 남의 집 초인종을 열심히 누르다가 sarnia 같은 마귀 집주인을 만나면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십니다.

 

(이 기회에 저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나신 교회 전도자 여러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어쨌든 저는 작년에 우연히 원저자로부터 얻은 도마복음강해를 모두 읽어보고 나서야 성서 정경에 채택된 4 복음서가 예수 선생을 설명하는 자료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었답니다.

 

, 도마복음이란 도마-식칼 할 때 그 도마가 아니구요.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그 도마를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Thomas 라고 부릅니다. 제자들 중 가장 똑똑했고 그런 만큼 여러 가지 의심과 딴지가 많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복음이라는 말도 볶음 (pan-fried) 하고는 발음도 의미도 다릅니다. 영어로 gospel 이라고도 하는데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의 기독교 용어입니다.

 

도마복음이란 예수 선생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하나인 그 도마가 쓴 기록을 말 합니다.

도마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세계사 시간에 졸지 않으신 분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가 콘스탄티누스 시대인 기원후 313 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12 년 후인 325 년에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기독교를 아예 로마의 공식 국교로 정한 사실을 기억하실 것 입니다.

 

이 시기에 로마제국을 통일한 황제권력은 제국과 식민지를 포함한 거대한 지역을 통치할 지배이념을 확립하는데 그 지배이념의 핵심을 기독교의 유일신사상으로 정하게 됩니다.

 

황제권력의 단일성과 기독교의 유일신을 결합시킨 새 지배이념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요.

 

니케아 공의회는 새 지배이념을 종교적인 교리로 확립하기 위해 마련된 종교지도자 모임이었습니다.

 

공의회의 토론과 결정에 따라 그때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떠돌던 예수 선생의 자료들이 수집되고 그 자료들 중 예수의 신성-유일성이 강조된 스물 일곱 가지 문헌을 선별적으로 채택해서 성서를 편집하게 됩니다.

 

스물 일곱 가지 문헌이 성서로 선포된 이후 이 문헌에 기초해 확립된 종교적 교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머지 모든 문헌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소각 작전이 전개됐고, 딴 소리를 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됐습니다.

 

로마 권력에 의한 진짜 기독교 박해란 사실 밀라노 칙령 선포와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저질러 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입니다

 

적어도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로마는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관대한 체제였다고 합니다. 오히려 순교하겠다고 달려드는 광신자들이 귀찮아 로마 관리가 도망 다닌 적도 있고, 죽여달라고 하는 순교희망자들을 향해 ‘나는 너를 죽일 이유가 없지만 자살하는 것은 자유’ 라고 얼렁뚱땅 피해버린 로마 황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날조된 것들이 많다고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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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년엔가 영어책으로 읽기를 시작하다가 짜증나서 집어치운 뒤, 몇 년 전에 번역본을 이용해 읽기를 마친 ‘The Jesus Mysteries’ 는 책 전체 분량의 3 분의 1에 달하는 엄청난 주석이 귀중한 자료 같습니다. 그 주석 자료는 필자가 인용한 책을 다 읽을 것도 없이 해당분야만 검색을 하던지 아니면 도서관에 갈 기회가 있을 때 찾아서 확인만 하면 되니까 참 편리하지요.

 

한국에서 종교에 관한 훌륭한 책을 고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기총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그 단체가 정해 놓은 금서목록 중에서 고르면 보석같은 자료들을 많이 건질 수 있습니다. The Jesus Mysteries'도 그 보석 중의 하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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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Shelby Spong 의 Jesus for the Non Religious 는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는 책 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성공회 (The Englican Church) 의 주교입니다. 

이 chapter 의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예수 선생님은 배들레헴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는 지혜를 성직자로부터 들을 수 있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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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예수 선생님은 유대교의 하나님을 그리 신통치 않게 생각했던 분 같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이나 종교지도자 (당시는 제정일치시대였으므로 종교지도자는 곧 권력자) 들이 들으면 잡혀서 맞아 죽을 소리만 골라서 했으니까요. 도마북음에 관한 해설서는 이 책과 도올 김용옥 아저씨가 엮은 책이 있는데 후자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한국 나가면 구해 올 생각이구요.

 

아무튼 이 유대인 사나이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약 성서의 테두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기독교 경전 (신약) 의 얼굴마담인 사도바울이란 분은 예수 선생을 단 한 번도 만난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마복음이란 그 당시 로마권력과 그 권력에 협조하는 문자주의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수색과 살육을 피해 토기 속에 밀봉돼 숨겨져 오다가 약 60 여 년 전에 이집트의 한 농촌에서 발견된 문서 중 하나입니다.

 

그 문서가 발견된 지역의 이름이 나그함마디인데 그래서 이 문서들을 나그함마디 문서라고 부릅니다.

 

, 참 로마종교권력이 파견한 추적자들을 비해 도망다닌 문서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마리아복음서도 포함돼 있습니다. 

 

마리아복음서의 마리아란 예수 선생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고 예수 선생님의 유일하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Magdalena 출신의 예쁘고 귀엽고 지혜로웠던 완소녀, 그 마리아를 말합니다.

 

각설하고, 로마 종교권력에 의해 쫓겨 다녔던 그 문서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왜 이 문서들이 당시 권력의 추적을 피해 항아리 속에 들어가 숨어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도마복음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목사님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어 온 부활이라든가 종말, 심판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내 안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무엇인가 초월적인 진리 또는 ‘나의 의미’를 깨닫는 것…… 뭐,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뭔 소린지 잘 이해도 할 수 없었고 뜬구름 잡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얼토당토하지 않은 스토리에 대한 '역사적 사실성' '믿음'을 강조하는 수상쩍은 설교보다는 훨씬 종교다운 깊이가 있는 이야기들 같습니다.

 

부활이야기를 하더라도 공관복음에 나오는 의미와는 전혀 다릅니다.

공관복음이 초자연적인 육제적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도록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데 반해 도마복음에서는 ‘깨닫는 자로서의 새로운 삶’의 의미로 그리고 있다는 것 입니다.

저는 공부시간에 졸지 않은 수제자는 배드로가 아니라 아무래도 도마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그함마디 문서에서의 예수 선생님은 부처 선생님과 아주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아주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와 문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고 기독교와 불교도 그런 주고받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예수 선생님과 부처 선생님 사이에 어떤 교류와 영향이 있었다면 당연히 예수 선생님이 약 620 년 형님 되시는 부처 선생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압도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부처 선생님이 예수 선생님의 사상적 형님이 아닐까 생각하는 저는 불교신자 절대 아니고요. 보수적인 교단의 꽤 알려진 목사님의 외손자이고 그런 기독교 가풍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말하자면 기독교 클럽 멤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선생님 생일 축하 메시지,

 

나름대로 진솔하면서도 착하게 썼으니까요. 또 혼내지 마시구요. 34.gif

 

그냥 sarnia 식으로 예수 선생님 생일 축하한다고 생각해 주세요.

 

저는 평소에 술을 잘 안 마시는데 크리스마스 즈음해서는 모임에 나갈 때 자동차를 집에 놓고 나간답니다.

 

예수 선생님 생일 축하주 하러요.  

 

Happy birthday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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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 한국에서는 교회 다니면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이 이야기를 약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예수 선생님은 술을 즐겨 마시는 애주가였던 것 같거든요.

 

그거 아세요.

 

예수 선생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는데, 그 기록된 기적들 중 제일 먼저 행한 기적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술이 떨어지자 손님들을 위해 신속하게 술을 조달한 기적이었답니다. (요한복음 2 1 ~ 12 ) 42.gif

 

11 Comments
나마스테지 2010.12.16 16:22  
s님, 한국 돌아오셔서 시사프로나 뭐 그런 거 진행자 해주세요.
딴지일보 어준아제 보다 재밌을 거 같은데요 쿄쿄~
간큰초짜 2010.12.16 17:47  
솔직히...사니아님 이런글 읽을때마다...혼란스럽습니다.
혼란스러워질까봐 다빈치코드 책도 안읽었고, 영화도 안봤는데...

애주가, 애연가 였던 제가 단칼에 둘 다를 끊은것도 신앙생활 때문이고..
나름대로 성실한 가장으로 자녀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도 신앙생활이고..
주위에 깊은 친분으로 만나는 분들도 모두 신앙생활과 관련된 분들입니다...

나름대로 신앙의 틀을 잡았고, 개념이 잡혀간다고 생각해서 세상의 많은 크리스쳔들의
행태(?)에 대해 저 역시도 꽤나 비판적인데, 그런 비판적인 제 생각도
사니아님 글처럼 관점만 좀 바꾸면...모든게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럽군요.

저는 아주 심각한 유교+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입학 후 스스로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주변 거의 모든 식구를 전도해서 집안 전체를 기독교집안으로 바꾸었습니다.
교회는 너무 세속적이라 교회는 주일성수를 위한 목적 외에는 모든 신앙생활을 해외선교를
위한 선교단체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도 신앙생활중 마음속에 불합리하다고 생각되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의심(?)스러운
성경의 내용을 볼때마다 사니아님처럼 그런 냉철하고 객관적이고 자료에 근거한 생각보다는
제 심령을 느닷없이 침범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세력을 몰아내려는 노력만 했습니다.

아...암튼...혼란스럽습니다. 10여년전 외경 읽을려다가 선배님께 심하게 야단맞은 후
지금까지 성경에 반하는 책은 한번도 보지 않았는데...
나마스테지 2010.12.17 21:43  
간초아우님. 출장 안와요? 자갈치서 회 고래고기 마구로 먹으면서 담소를~~
저는 불교 원불교 거쳐 지나온 사람^^아우님 건승!
간큰초짜 2010.12.18 08:07  
그러게요 누님, 요새 부산출장 안간지 꽤 됐네요. 태국 중국은 한번씩 짧게 다녀왔어요.
고래고기 만땅으로 땡깁니다. ^^
이제 다 끝나가십니까?
건강 챙기시고,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조만간 내려가서 연락드릴게요~
나마스테지 2010.12.18 16:04  
아즉아즉 멀었어염. 8월의 크리스마스엔 끝나야 해~~~~~기필코.
아우님도 즐 연말년시^^1월 중순엔 부재합니다.
plantubig 2010.12.16 21:46  
제가  자주 가는 조계종단의 파주 보광사는 벌써 13년째 종로구 모 성당과 끈끈한 교류를 맺고 있읍니다.

사월 초파일이나 백중날, 또는 사찰의 여러 행사 때에 
수녀님과 사제님들 또 신자님들도 오셔서 같이 축하 해 주시고, 바라춤등 승무 하시는것도 관람 하시고,

또,,,스님들이나 신도들도  블랙 나사렛 성 금요일이나  견진세례일,
또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미사때  같이 동참하며 서로를 축하 드리고 경배 합니다.

참 아름다운 정경이지요.

저도 가끔  벽안의 친구들과 디보셔날 합니다~
sarnia 2010.12.17 14:12  
안녕하세요. 우선 나마스테지 님과 플랜뚜빅 님 말씀 고맙습니다^^ 특히 간큰초짜님께서 제게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화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론 같은 것을 하려고 본문을 쓴 게 아니므로 이번에는 덧글을 달지 않을까 하다가 그건 좀 무책임한 것 같아 덧글을 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신 분들은 이 긴 덧글을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옛날에 그러니까 20 대 때 저는 무신론자/유물론자 이런 이야기 쉽게 했는데요. 이제 누가 저보고 당신은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묻는다면 제 대답은 ‘모른다’가 될 것 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유신론이건 무신론이건 둘 다 반증 불가능한 것이고 반증 불가능한 주제를 붙잡고 고민을 하는 것처럼 무모한 짓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4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의 행적을 역사적 사실로 믿느냐는 질문에는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반하는’ 이라는 표현을 하셨지만 제 글 주제인 예수탄생 이야기만 해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이런 의문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과연 예수라는 분이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인가 하는 것 입니다.

막대한 분량의 면밀한 자료인용으로 유명한 The Jesus Mysteries (제가 읽었던 가장 흥미로웠던 책들 중 하나) 같은 책들은 예수가 날조된 인물이라는 정황증거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저는 예수라는 인물이 이유 없이 날조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예수 탄생 스토리와 공생애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면 민담설화에 불과한 것이냐 하는 것을 따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주제를 가지고 문제 제기하는 것은 제 능력 밖의 일 입니다.

다만 한국 기독교인들이 예수에 대해 아주 잘못 알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입니다.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사실기록과 ‘ 신앙의 고백 이야기들을 혼동하고 있는데, 이런 잘못된 혼동에서 야기된 잘못된 신념이 ‘미얀마 땅밟기 사건’ 같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예수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사료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 많은 주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 같습니다. 예수에 대한 기록은 성경의 4 복음서가 거의 전부인데 이 4 복음서라는 것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문서라기보다는 이리 저리 떠 도는 소문과 구전들을 몇 십 년 이상 지난 뒤에 기록한 일종의 ‘전설의 고향’ 이나 흥부전 수준의 민간설화 같은 것 입니다.

당연히 이 4 복음서에 나와있는 예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4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신학은 이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민간설화에 논리적인 의미부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머리가 커서 성경을 자세히 읽고 성서와 관련된 비평서들을 읽으면서 예수탄생과 죽음에 대한 의혹들을 저 나름대로 정리해서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제 본문주제가 예수탄생 이야기니까 예수 탄생에 관련된 의혹들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누가복음 기자와 마태복음 기자는 서로 전혀 다른 소리를 두 복음서에 각각 써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희랍어로 된 이사야서를 誤讀하는 바람에 예수를 일단 나자렛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나 봅니다.

아울러 예수가 나자렛 사람이면서 다윗왕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야 하는 두 가지 필요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데도 의견을 같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바람에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들의 이력은 물론이고 4 복음서 등장인물들의 행적조차 다음과 같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습니다.

첫째, 퀴리노 (구렛뇨)는 실제 부임년도 보다 적어도 6 년 일찍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해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의 명령을 수행, 호구조사를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세원파악을 위한 이 호구조사를 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이 본적지로 돌아가 호구조사를 받으라는 하등에 쓸데없는 행정명령을 발해야 했습니다.

둘째, 그 바람에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나자렛에서 무려 1 백 60 km나 떨어진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습니다. (요셉-마리아 부부뿐 아니라 호적지와 거주지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런 씨잘떼기 없는 대이동을 해야 했을 것 입니다. 말이 좀 안 되지요?)

셋째, 예수가 태어나기 4 년 전쯤 죽은 유대왕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했습니다. (예수의 탄생설화가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가 부활하기 전에 유대왕 헤로데부터 부활해야 합니다) 

냇째, 그 바람에 옛날 선지자인 예레미야는 하늘에서 라마에서 들려오는 통곡을 노래한 자신의 시가 마태복음 기자에 의해 엉뚱하게 인용되는 것을 내려다 보면서 펄펄 뛰어야 했습니다.(마태복음 2 장 18 절을 보면 예언자 예레미아가 라마의 통곡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마치 배들레헴의 아기학살사건을 예언한 것이라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잘못 인용한 것 입니다. 의도적으로 전혀 상관이 없는 예레미아서 사건을 베들레헴 아기학살사건과 연결시킨 것 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떠 도는 이야기들을 신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헛점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런 비슷한 신화들이 나중에 다른 종교를 갈라져서 서로 반목하는 그 다양한 종교들 사이에 공통점을 가지고 등장한다는 것이죠.

이런 점은 각기 종교 안에 매몰된 신학자들보다는 좀 더 자유로은 연구공간을 가지고 있는 종교학자나 고고학자 고대사학자들에 의해 그 진상(?)이 밝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야기의 방향을 좀 돌리고 싶습니다.

혹시 기독교인들이라면 당연히 이스라엘민족이 바빌론의 침공을 받아 포로생활을 한 역사를 성경에서 읽은 적이 있을 것 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이 바빌론 포로생활을 겪은 이후에 유대교의 하나님이 완전히 다른 분으로 변했다는 점을 발견했을 것 입니다.

즉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해 다른 민족을 개 취급하고 함부로 죽이고 멸절마저 서슴지 않았던 유대인 골목대장 하나님이 바빌론 포로생활을 통해 반성을 했는지 조금 착하고 보편적인 시각을 가진 철이 든 하나님으로 변화했다는 것 이지요. 유대교 하나님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하나님에게 한 수 배웠다고나 할까요? 

댓글에서 길게 설명하긴 뭐하니까……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한 종교 안에서 확립된 교리를 기준으로 그 종교 안에만 머물기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다른 종교나 문화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들의 생각이 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외부의 어느 고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종교인가를 알아보면 참 재미있고도 폭넓은 새로운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잇지 않을까요?.불교 역시 기독교의 변화에 영향을 준 종교 아닐까 이런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본문에는 ‘예수의 선배님은 부처님”같은, 읽는 분에 따라서는 다소 거북한 표현도 한 것이구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자유일 텐데요.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상상력과 자유를 억압하는 어떤 교리나 이념도 거부합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기독교를 비롯한 기성종교가 인류문화사에 끼친 가장 나쁜 영향을 딱 하나만 들라고 하면 ‘심판과 지옥’ 개념을 만들어 인간의 영혼을 협박하고 상상력과 자유를 위축시킨 행위라고 말 하겠습니다.

다만 제 생각일 뿐 이니까요.

그냥 ‘이런 시선도 있구나’ ......이렇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마스테지 2010.12.17 21:59  
예수의 초상을 만들 때 (한 사료에 의하면 예수는 곱슬머리였다고 함),
그 당시 유명했던 화가인지 음각가인지 기억에 없지만 대중에 어필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 인기가 너무 높아서 예수 초상을 생머리 긴머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NGC에서 봤는지 기억은 안납니다.
김정환 시인의 황색예수를 읽은 기억도 나네요.
sarnia 2010.12.18 11:18  
본문에서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는 문장 몇 개를 검색을 통해 확인한 후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별로 중요한 대목이 아니라 서술은 생략합니다.
또무하니 2010.12.18 12:16  
sania 님의 글들 보면 늘 불쾌하지만 님 말대로 그냥 이런 시선도 있구나 라는 하고 넘어 갑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라는 예수의 기도가 생각나는 군요.
sarnia 2010.12.18 12:34  
실시간인 것 같군요^^

지난 번에 대한민국방에서 맞춤법 시비건 거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또무하니 님의 마음에 100 % 들지는 않더라도 덜 불쾌한 표현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적해 주신 관심도 고맙고 넘어가 주시는 아량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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