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소소한
(작년 봄 어느 날, 낯짝을 보아하니 아주 얼큰하다. 돈도 빌려주는 좋은 친구 J에 의해)
홀연히 돌아와 어느덧 한 달여,
살이 급격히 찌고 있다. 자그마치 이 키에(그게 몇인데?) 52kg으로 복귀한 나는 이를 두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급 몸매라 자평했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여동생은 그런 나를 빌어 무슨 난민이냐! 타박했다. 하여 엄마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동생 또한 마치 사명인 양 틈만 나면 내게 무언가를 먹이려 한다. 주로 여동생은 사먹이고 엄마는 해먹이고.
생존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애써 부여잡아야 했던 이국의 양식, 또는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유사 한식들과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전라도 음식의 가열찬 퍼레이드로 말미암아 그사이 살집은 눈에 띄게 부풀었다. 이를 보아, 보름의 공백을 두었다 만난 여동생은 잘라 말했다. 확실히 살이 빠지긴 어려워도 찌기는 쉽네.
내말이!
(소주를 즐겨하여 국물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조준해 모처럼 여동생이 안주 겸 간식 겸 조리한 국물떡볶이).
(1212에 태어난 여동생의 아들, 예정대로라면 일간 419를 맞아 녀석 또한 여동생을 맞이하게 될 터이다. 재미있는 조합이다, 1212와 419)
(뭔가를 사먹일 뿐 아니라 몇몇 추리닝을 필두로 자꾸 뭔가를 사입히기도 하는 여동생이 카카오톡을 통해 전송한 사진. 이거 어떠냐? 묻기에 일단 사지마! 라고 답하려던 차, 이미 샀으니까 그냥 신어! 그래서 닥치고 신기로)
(위는 내가 태국에서 들어올 때 손수 사온 꽤나 저렴한 아이리시 위스키, 아래는 매제가 필리핀 출장 갔다 어제 건네준 나름 고급한 스카치 위스키. 현시점 발렌타인을 마시며 하루키를 읽다 이렇게 끼적이고 있다)
어쨌거나 꽃 틔우고 비 나리는 천우사화의 계절,
돌아온 형편이 몹시 척박하고 또 위독하여 양파를 캐든, 등짐을 지든, 장기를 팔든 뭐라도 해야 할 판이다. 셈해보자니 재재작년 여름 이후 노동을 통해 재화를 창출하는 일에 일절 복무해본 적이 없다. 재해석의 어떠한 여지도 없이 그저 놀고먹는 백수건달의 날들은 4월 이달까지 임시 제한하기로 한다.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그 섬을 염두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