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청년 '수디어'의 한국어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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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청년 '수디어'의 한국어 사춘기.

돋을별 8 852

 

완연한 가을이다.

하늘은 더 파랗고 햇살도 더 투명해지고 살갗에 닿는 바람은 끈적이지 않고 고슬고슬하다.

 

지독하게 더운 여름이 오기 전 미풍이 너무나도 행복한 6월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저녁마다 산책을 가는 공원에 나갔더니 마침 아름다운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석양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서서 핸드폰 카메라에 사진을 담았다.

갤러리에 담긴 사진을 다시 확인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다시 걸으려고 뒤를 돌아섰는데

어느 외국인 청년이 내가 선 자리보다 약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처럼 지는 석양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손짓을 하며 내 자리에 와서 찍을 것을 권하였다.

서로 말은 안했지만 눈빛을 교환하며 그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노을이 가장 잘 보일 수 있게 그의 핸드폰을 같이 들어주었다.

그가 내게 고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를 하길래

나도 눈으로 인사를 해주었다.

매일 저녁 공원을 산책하면서 나는 그를 이미 익숙하게 보았던 터여서

아주 낯설게 여겨지지 않았던 듯 싶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그 청년을 보면서 공원으로 산책을 나오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자신이 이방인이란 사실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눈인사를 했고

나도 반가운 마음으로 눈으로 웃으며 인사를 교환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참을 걷고 있는데 그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How are you?' 하고 말을 거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당황하면서 그냥 우리말로 '아,,, 네, 어디서 오셨어요?' 물었더니

그도 우리말로 '인도!!'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난 그를 멀찌감치에서 바라볼 적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인가 보다 하고 막연하게 짐작을 했었다.

그의 얼굴을 한 번도 자세히 본 적이 없었으므로 단지 피부가 좀 가무잡잡하고

약간 이국적으로 생긴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보니 눈도 크고 속눈썹이 까맣고 길어서 눈을 껌벅일 땐 마치 인형 눈썹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는 한국에 온지 4년이 넘었으며

자신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현재 IT회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잘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건 4년이 넘어가도록

어떻게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어도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가 말하길 회사 직원들도 거의 외국인이고 전부 영어를 쓰고 있어서 한국어를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그렇게 그 청년과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공원에서 마주칠 적마다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영어 단어를 써 본지가 수십 년이 돼가는 나는 기억나는 것도 그나마 별로 없어서

구글이나 파파고 번역을 찾아가며 그와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문법은 중요치 않으니

내게 단어만 말해도 상관이 없다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한국어를 배울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젓는 것이 아닌가.

 

그러던 그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얼마 전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게 한국어를 지난주 토욜부터 배우기로 했다며

내게 핸드폰에 나온 톡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6명이 전부 외국인인데 그들과 같이 줌으로 한국어를 배울 것이라고.

난 그에게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처음 배우던 날 내게 배운 것을 사진으로 보내면서 너무 어렵다고 찡그린 표정의 이모티콘을 함께 보내왔다.

웃음이 나왔지만 난 처음엔 어려워도 차츰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제 2 외국어는 다 어렵겠지만 한국어도 정말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든다.

표현에 있어서 너무나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장을 표현함에 있어서 훨씬 더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무척 힘든 과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었다.

한국어를 배우던 첫 날 그는 내게 "
I REALLY WANT TO LEARN KOREAN NOW" 하고

일부러 강조를 한 문장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내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한국인 친구이기 때문에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란 말도 덧붙였다.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올 때쯤 그 청년에게 한국어가 얼마나 늘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이제 그가 한국어를 배우는 걸음마를 떼었으니 부디 끝까지 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혼자서 멀고 먼 한국에 건너와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그를 보면서

충분히 할 수 있을거란 믿음이 생긴다.

한 번은 자신의 폰 갤러리에 있는 인도의 유명 배우 사진을 보여주며 그 배우처럼 

수염도 기르고 헤어스타일도 따라했다고 말해서 정말 크게 웃었다.

음, 생각해보니 그는 지금 이십 대의 청년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인도 청년 '수디어' 가 다가올 한국어 사춘기란 허들을 잘 뛰어넘기만을 나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 수디어!! 힘내세요, 이제 시작입니다~~ " 

 

 

 

 

 

 

 

 

 

 

 

 

 

 

 

 

 

 

 

 

 

 

 

 

8 Comments
비육지탄 2021.09.09 12:04  
그러면서 데이트 신청은 안하던가요?
제 안에 마귀가 있나봐요 ㅠㅠ
돋을별 2021.09.09 13:11  
헉!! 송곳질문을 하시다니 역시 비육지탄님은 예리하시군요.
ㅎㅎ. 농담이고요, 비 오는 날엔 거의 저 혼자 걸었는데 며칠 전엔 백신 맞아서 휴가를 받았다며
우산 들고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친구도 안 만나고 거의 회사, 집만 왔다갔다 한대서 좀 안쓰럽기도요.
쓸데없는 오지랖이겠죠?
그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잘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비육지탄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추석 명절 잘 보내셔요. 감사합니다~^^
2021.09.09 13:23  
한편의 드라마 같은 아름다운 글입니다.

한국어 선생을 하는 입장에서 수디어가 금방 한국어를 잘할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돋을별님이 한국어로 많이 얘기하시면 금방 늘 거예요.
돋을별 2021.09.09 13:29  
명님, 안녕하세요?
오늘 첨으로 인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명님이 한국어를 가르치시는군요. 앞으론 만날 적마다 제가 한국어를 자꾸 써야 되겠네요.
좋은 조언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태국짱조하 2021.09.09 18:07  
실생활에서 일어난 일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쓰셨는데  읽고 있는 제가 맘이 설렙니다,
가을날 한편의 에세이를 보는것처럼  글이 참 예뻐요.
수디어군은 운이 좋은 사람 같군요,  돋을별님한테도 한국어를 배운다면 말이죠.
제2 외국어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꾸준히해야 잊어버리지 않는다고합니다.
내년쯤엔 한국어가 많이 늘었단 소식을 기다려봅니다!!
돋을별 2021.09.09 20:48  
태국짱조하님, 항상 좋은 말씀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일교차가 심해서인지 저는 감기 기운이 있어요. 환절기인데 특별히 감기 조심하시고요.
수디어의 첫 수업을 보니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이었어요. 너무 어려워하는데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답니다. 그저껜 요일을 알려줬는데 너무 웃어서 기운이 다 빠지더라구요.ㅎㅎ.
정말 유아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미리 추석 명절 잘 보내시길 바라고 늘 건강하셔요~^^
멋당 2021.09.12 11:04  
돋은별님!!!
좋은것을 나누고자하는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수디어에게 우리의 좋은글 따뜻한글 많이 알려 주셔요~~^^
돋을별 2021.09.12 15:48  
멋당님.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햇볕이 무척 눈부시고 덥지요?
낮에 두 남자가 그리스여행을 하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지중해가 정말 아름다운 배경이었어요.
멋당 님 말씀처럼 욕심이겠지만 저도 수디어가 나중에 우리말의 진수를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 글에 늘 관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게 추석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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