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말에 대한 어떤 생각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몇몇 지자체가 주관하는 행사의 용어가 화제에 올랐다. “런택트” “씽 어게인” 등이 그것이다. 나는 이 용어들을 처음 봤을 때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런택트는 ‘UNTACT+RUN’으로 ‘비대면 달리기’라는 뜻이고, “씽 어게인”은 ‘다시 노래하기’라는 뜻의 ‘SING AGAIN’이 아니라 ‘THINK AGAIN’ 즉 ‘다시 생각하기’란다.
내가 이런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분은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므로 이런 용어도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조차도 어리둥절할 신조어까지 무턱대고 수용해야 하는 걸까? ‘알바’나 ‘혼밥’ 같은 신조어는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있지만, ‘런택트’나 ‘씽 어게인’은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부수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불과 서너 글자의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그보다 긴 해설이 뒤따라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게다가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이런 해괴한 용어를 생산해낸다는 건 문제가 있다.
한때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바꾸려다 실패한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콩글리시라고 무시하던 ‘화이팅’은 이제 외국인도 서슴없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적지 않은 예산과 논의과정을 거쳐 탄생한 ‘I SEOUL YOU’는 얼마나 많은 논란을 낳았는가.
당연히,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정착하는 것이지 어떤 특정집단이 억지로 만들어 보급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국적불명의 용어는 거부감만 주고 그걸 사용하는 집단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아래에 링크한 기사에 의하면 프랑스는 1994년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법’을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단다. 이 법은 모든 광고와 상표에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하고 외국어를 과다하게 사용하면 벌금도 부과한단다. 정부 총리실 산하에 신조어 및 전문용어 전문실을 두고 신조어를 프랑스어로 바꾸는 작업도 하고 있단다.
미국은 2010년 ‘쉬운 글쓰기 법(Plain Writing Act)’을 제정해서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공공언어로 정부 문서를 작성하고 있단다. 이 법은 미국 행정기관이 발행하는 모든 문서에 적용되고 있으며, 매년 각 행정기관의 수장이 법률 준수사항을 보고하고 있단다.
미국과 프랑스에 비하면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언어 사대주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누구보다도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우리말을 망치는데 앞장서고 있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해당 업무의 담당자나 책임자들은 무조건 튀어야 한다는 식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다양한 계층이 부담 없이 공감할 수 있는지를 보다 신중하게 모색했으면 좋겠다.